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청와대에서 ‘한-EU 화상 정상회담’을 열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커져버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국제사회와 연대해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화상으로 대면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의 올해 첫 양자회담이다. 코로나19 국면으로 모든 순방 외교 일정들이 취소되면서 제대로 된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12월 새로 출범한 EU 지도부와는 첫 회담으로 상견례 성격도 있었다. 올해는 한-EU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출범한 지 10주년을 맞는 해라는 의미도 있다.
◆국제 사회 방역 기여 약속…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지지 재확인
특히 문 대통령은 이탈리아로부터 촉발된 ‘코로나 쇼크’로 직격탄을 맞은 EU와의 회담에서 ‘K-방역’에 대한 자부심과 방역 노하우를 한껏 어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회담에서 EU 정상들은 우리 정부가 신속하고 투명하게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점을 높이 샀다.
이에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코로나19 방역과 치유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과 임상 데이터를 활용해 국제사회의 코로나19 대응 노력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우리는 유럽의 ‘그린 딜’과 맞물려 ‘그린 뉴딜’ 정책의 중요 파트너가 돼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함께 한-EU 간 진행 중인 EU 개인정보보호(GDPR) 적정성 결정이 가속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EU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의 조속한 비준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요청했다.
한국은 지난 2017년부터 EU GDPR 적정성 평가 절차를 밟고 있다. 적정성 결정 국가로 지정되면 우리 기업들이 EU 지역 국민의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EU 정상들이 우리 측에 요청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국회 통과를 당부한 내용이다. 지난 23일 정부는 노동조합법 개정안과 교원노조법 개정안, 공무원노조법 개정안 등을 의결했다.
문 대통령은 “‘유럽 그린 딜’ 정책을 통해 글로벌 기후 환경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EU 신지도부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세계는 코로나19를 겪으며 기후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크게 각성했고, 빠르게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를 체감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와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우리 정부는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기도 했다.
양국 정상은 공동언론발표문을 통해 정상들은 한반도 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EU는 “한반도의 평화 및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 북한을 지속적으로 관여시켜 나가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EU 정상은 “이란 핵합의(JCPOA)와 동부 우크라이나 분쟁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면서 “양측 정상들은 국제법 하 기존의 국제 의무 및 공약에 기반, 세계 평화와 안정을 증진해 나가기 위해 협의하고 공조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비대면의 일상화…업그레이드된 ‘화상 정상회담장’ 눈길
청와대는 이날 본관 충무실에 마련한 ‘화상 정상회담장’을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른바 ‘비대면 정상회담’이 늘어날 것을 보고, 보다 격식을 갖춘 양자 화상 정상회담장을 설계한 것이다. 정상회담장은 해체 후에도 재활용이 가능하게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 정상회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번에 마련한 화상 정상회담장을 상대국가의 여건 등에 맞춰가며 앞으로도 계속 활용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 좌석 뒤에는 태극기와 EU 깃발이 놓였고, ‘한·EU 화상 정상회담’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대형 LED 스크린이 설치됐다.
스크린에는 EU 측 참석자가 현지에서 발언하는 화면은 물론, 회담에 필요한 시각 자료도 띄워놓고 양국 참석자가 함께 볼 수 있게 했다.
문 대통령의 자리 양옆으로는 좌우 3개씩 강경화 외교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배석자들이 앉을 총 6개 좌석도 배치됐다.
문 대통령과 배석자들 사이에는 투명 칸막이를 설치해 혹시 모를 코로나19 감염 가능성도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또한 문 대통령이 바라볼 정면에도 대형 스크린을 마련해 양측 정상이 화상으로 마주하며 대화할 수 있도록 했고, 바닥에는 카메라와 함께 카메라가 이동할 수 있는 레일을 깔았다.
지난 3월 주요 20개국(G20) 화상 정상회의, 4월 ‘아세안+3’ 화상 정상회의 때 본관 집무실 문 대통령의 책상 앞에 단지 카메라와 대형 모니터가 설치된 것과 비교할 때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이었다.
다자회의가 아닌 양자 정상회담,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열리는 양자회담이라는 점을 고려해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담 현장에서 기자와 만나 “‘언택트’이기는 하지만 대면 회담 현장과 흡사하게 구현하려고 노력했다”면서 “(비대면 정상회담 형식도) 선도하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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