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4일 일본 방위성은 2020년판 '방위백서'를 발표했다. 전후 일본의 방위정책 기본원칙 가운데 하나가 전수방위다.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 군사 대국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 전수방위의 기저에 있으며,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방위력을 행사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일본은 자위대가 보유하는 무기와 장비를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도’로 제한해 공격용 항모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장거리 전략폭격기 등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렇지만, 전력을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도’로 국한한다는 전수방위의 원칙은 점차 형해화(形骸化)되어 이미 일본은 사실상의 ‘군사 대국’이 되었다.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정권 등장 이후 일본의 방위비는 계속 증가해 2019년 세계 8위(Military Balance 2020)였는데, 올해 방위비는 역대 최대인 5조3000억엔을 넘었다. 일본은 2018년 12월 개정한 방위대강에 따라 2020년대 후반에 대형 호위함 ‘이즈모’와 ‘카가’에 최신 스텔스전투기인 F35B를 탑재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항모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도서(島嶼)방위라는 명목 하에 항공자위대가 보유한 F15 전투기에 최대사거리 900㎞가 넘는 미사일을, F35A에는 500㎞가 넘는 미사일 보유를 추진하고 있으며,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전용할 수 있는 ‘극초음속 활공탄’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일본의 방위력 증강 구실이 된 것이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다. 2020년판 방위백서는 중국군의 동향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 지난 30년간 중국은 국방비를 44배 증가시켜 핵과 미사일, 해상·항공 전력을 중심으로 군사력의 질과 양을 광범위하고 급속하게 강화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중·일 간의 영토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 주변에서 중국이 힘을 배경으로 한 일방적인 현상변경 시도를 ‘집요하게’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으며, 코로나 19와 관련해 중국이 의료전문가 파견과 의료물자 제공만이 아니라 ‘가짜 정보의 유포 등 선전공작’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는 경계심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분량은 지난해보다 약간 줄었지만, 위기감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핵무기의 탄두화와 소형화 실현, 일본에 도달할 수 있는 수백발의 탄도미사일 실전배치, 이동식 발사대(TEL)나 잠수함을 통한 기습공격과 동시 발사 능력 보유 등을 언급하면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핵과 미사일 능력에는 본질적인 변화가 없다고 지적하는 데 그쳤다.
반면, 2020년판에서는 핵무기의 소형화·탄두화를 실현한 북한이 이를 노동이나 스커드-ER 같은 탄도미사일에 탑재해서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핵무기에 의한 북한의 일본 공격능력을 '방위백서'에 명기한 것은 처음이다. 또한, 2019년 5월 이후 북한이 발사한 세 종류의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고 기존 탄도미사일보다 낮게 변칙적으로 비행하는 특징이 있어 발사 징후나 조기 탐지가 어렵다면서, 북한의 ‘미사일 방위망 돌파’ 시도에 대한 대처가 주변국에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4일 일본 정부는 탄도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방위하는 데 필요불가결하다면서 2017년 12월 도입을 결정했던 이지스 어쇼어(지상 배치형 요격 미사일시스템)의 배치 철회를 결정했으며, 이를 계기로 ‘국가안전보장전략’, ‘방위대강’, ‘중기방위력정비계획’ 등 세 가지 중요 정책문서의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이 ‘적기지공격능력’ 보유에 대한 검토다. 이 문제는 자민당 국방부회를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던 것이지만 겉으로는 북한을, 실제로는 중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미사일방위계획 전체와 연동되어 있어 미·일동맹이나 한·미·일 안보협력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2013년 12월 처음 책정된 ‘국가안전보장전략’과 달리 ‘방위대강’과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은 개정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개정 범위나 내용에 따라서는 주변국과의 관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수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와 이로 인한 국민의 불안감, 대규모 재정지출과 경기침체 등을 고려하면, 지금은 방위정책의 대전환을 모색할 적절한 시기는 아니지만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 특히 탄도미사일의 질적·양적 능력 향상에 대해 일본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2019년 2월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사실상 난파 직전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정치와 경제, 외교와 안보 등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북한은 남북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흔적도 없이 폭파하고 남북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7월 10일자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담화를 통해 미국의 ‘불가역적인 중대조치’가 없는 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면서, 한국 정부가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연내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기대도 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나아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버리지 않으면 국익과 자주권 수호를 위한 ‘실제적인 능력’, 즉 군사력 강화 조치도 예고했다. 한·일관계는 사상 최악이라 불리지만 방치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국제정치학의 태두라 불리는 한스 모겐소는 국익 증대를 위해서는 국력이 필요하며, 지리·천연자원·산업력·군비·인구·국민성·국민의 사기·외교의 질·정부의 질 등 국력을 구성하는 9가지 요소 가운데 외교의 질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특히, 모겐소는 자국이 추구하는 다양한 목적이 다른 국가의 목적과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를 비교해서 판단해야 하며, 양립하지 않고 서로에게 사활적인 것이라면 외교를 통해 이익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쳐 고착화한 남북의 대립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하면 북한을 악마화하는 것도, 희망적 관측에 기대는 민족주의의 신화도 극복해야 하며, 강대국의 이해를 세련되게 조정하는 외교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외교의 실패는 국가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달 초 국가안보실장과 국가정보원장, 통일부 장관이 교체됐다. 한국이 처한 새로운 전략 환경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교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재구상하는 것이 새 외교안보라인이 해야 할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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