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이 흘러 알리바바의 금융지주사인 글로벌 1위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사) 앤트그룹은 상하이·홍콩 증시 동시 상장을 선언했다.
미·중 갈등 격화의 여파라는 분석과 함께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본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앤트그룹의 중국 내 상장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야심작인 상하이 증시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의 인지도를 높이고 홍콩의 금융허브 위기설을 불식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앤트그룹은 상장 작업에 시동을 건 2015년부터 중국 연기금과 국유기업에 지분을 넘겨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는 등 줄곧 친(親)정권 행보를 걸어왔다.
마윈은 "알리바바 상장 후 내 삶이 너무 피곤해졌다"고 토로한 바 있다. 중국에 '민간은 관료와 다투지 못한다(民不與官鬪)'는 말이 있다.
마윈과 앤트그룹은 어른거리는 관치의 그림자를 떨쳐낼 수 있을까.
◆마윈의 앤트그룹, 역대급 IPO 기대
2014년 알리바바는 13억명(2019년 말 기준)의 사용자를 보유한 모바일 결제 서비스 즈푸바오(支付寶·알리페이)와 머니마켓펀드(MMF) 위어바오(餘額寶), 재무관리 서비스 마이차이푸(螞蟻財付), 인터넷 은행 마이뱅크 등의 금융 사업을 총괄하는 앤트파이낸셜을 설립했다.
알리바바 내 금융지주사 격인 앤트그룹은 마윈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알리바바가 3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이어 투자전문회사인 쥔한(君澣)과 쥔아오(君澳)가 합쳐서 약 50%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쥔한과 쥔아오는 마윈과 알리바바 이사 및 주요 임원, 앤트그룹 임직원 등이 출자해 만든 회사다. 마윈은 앤트그룹에 대해 50% 이상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 앤트파이낸셜은 앤트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금융' 꼬리표를 떼고 신기술 산업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인데,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지난 20일 앤트그룹은 상하이거래소 커촹반과 홍콩거래소 동시 상장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추산하는 앤트그룹의 기업가치는 2000억 달러(약 239조원) 안팎. 세계 최대 유니콘으로 불리는 이유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는데, 주식의 15% 정도를 공모한다면 알리바바(250억 달러)와 아람코(256억 달러)를 제치고 역대 최대 규모의 IPO로 기록될 수 있다.
앤트그룹 상장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당초 뉴욕 증시 상장을 노리던 앤트그룹이 중국으로 선회한 배경으로 미·중 갈등 격화에 따른 규제 강화가 거론된다.
최근 중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을 규제하고 중국 공산당원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마윈은 공산당원이다.
이 같은 변수 외에도 중국 당국의 입김이 앤트그룹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관치의 그림자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중국 증시 쾌거, 선전에 열 올려
징셴둥(井賢棟) 앤트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상장 계획 발표 뒤 "커촹반과 홍콩거래소가 추진한 일련의 개혁과 혁신 조치를 지켜봐 왔다"며 "그렇게 형성된 양호한 조건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게 된 게 기쁘다"고 언급했다.
징 CEO는 "상장을 통해 뜻이 같은 동반자를 모으고 우리의 성과와 미래를 사회 전체와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공식 출범한 커촹반은 '중국판 나스닥'으로, 첨단기술 기업의 자금 조달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시진핑 주석이 2018년 상하이 수입박람회 기조연설 때 설립을 공언했으며, 중국 정부가 자본시장 개혁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플랫폼이다.
출범 후 1년간 상장사가 133개로 늘었고, 시가총액은 2조5000억 위안(약 427조원)에 달한다.
상하이거래소는 "앤트그룹의 상장은 커촹반의 흡인력과 국제적 경쟁력을 보여준다"며 "더 많은 우수 기업의 커촹반 상장을 지원해 중국 경제의 고품질 발전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금융시보는 "알리바바 등 거대 기업의 미국 상장은 중국 경제 발전 추세에 걸맞지 않은 것으로 중국 증시의 한(恨)이었다"며 "앤트그룹의 중국 상장으로 국면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홍콩거래소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시장에서는 앤트그룹이 커촹반에 앞서 연내 홍콩에 먼저 상장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리샤오자(李小加) 홍콩거래소 행정 총재는 "앤트그룹이 홍콩을 선택하면서 상장 기업이 모이는 글로벌 선도 시장의 지위가 재확인됐다"며 "앞으로도 열린 마음으로 글로벌 기업의 홍콩 상장을 환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은 중국이 홍콩 국가안전법(일명 홍콩보안법) 시행을 강행하면서 여러 모로 궁지에 몰린 상태다. 특히 미국이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폐지하면서 아시아 금융허브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앤트그룹 유치 성공은 홍콩 증시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 홍콩 소식통은 "앤트그룹 상장은 외자 이탈과 외국계 기업 엑소더스(대탈출) 우려 속에서 오랜만에 접한 낭보"라며 "앤트그룹이 커촹반과 홍콩으로 향하는 데 중국 당국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5년 전 상장 첫발부터 '관치' 냄새
앤트그룹은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중국 연기금과 국유기업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준 효자였다. 그 유래로 마윈과 중국 지도부 간의 악연이 거론된다.
알리바바는 2014년 미국 상장 직후 시가총액에서 페이스북까지 제치는 기염을 토했지만 중국 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중국에서 엄청난 돈을 벌면서 뉴욕 증시 투자자들의 배만 불린다는 논리였다. 마윈에 대한 '괘씸죄'가 회자되던 차에 2015년 1월부터 중국 정부의 '알리바바 때리기'가 시작됐다.
당시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공상총국)은 백서를 통해 "알리바바는 저질 짝퉁 제품을 유통하고 직원들은 뇌물수수를 일삼는다"고 비난했다. 알리바바의 정품 판매율이 37%에 불과하다는 폭로는 직격탄이 됐다.
알리바바 주가는 폭락했고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일었다. 사태 초기 알리바바는 반박에 나서기도 했지만 곧 역부족을 깨달았다. 마윈이 직접 공상총국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같은 해 7월 IPO를 준비하던 앤트파이낸셜(현 앤트그룹)이 실시한 투자자 모집에 중국 연기금과 국유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재정부 산하 연기금인 전국사회보장기금(사보기금)은 78억 위안을 투자해 지분 5%를 확보했다. 시가보다 37% 이상 할인된 가격이었다.
국가개발금융, 차이나라이프, 태평양보험, 신화생명 등 국유기업도 0.5% 안팎의 지분을 챙겼다.
이듬해인 2016년 진행된 2차 투자자 모집 때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중국투자공사(CIC) 계열 중투해외(中投海外), 건설은행 계열 건신신탁(建信信托), 중국우정그룹 등 국유기업이 45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다.
왕중민(王忠民) 전 사보기금 부이사장은 2018년 한 포럼에서 "2015년 78억 위안에 산 지분 5%의 현재 가치는 500억 위안에 달한다"고 언급했다.
3년 만에 5배의 투자 수익을 거둔 셈이다. 아직도 앤트그룹 지분 2.9% 안팎을 보유 중인 사보기금은 이번 상장을 통해 또 한 번의 잭팟을 기대하고 있다.
수년간 다양한 경로로 앤트그룹 지분을 사들인 중국 내 연기금 및 국유기업도 마찬가지다. 한 중국 소식통은 "앤트그룹 지분 헐값 매각은 마윈이 중국 지도부와 관련 당국에 보낸 신호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중국경제망 등 관영 매체는 사보기금의 사례를 언급하며 "(지분 투자 때) 할인을 받은 것은 국민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며 "앤트그룹이 상장하면 사보기금 13억 가입자가 앉아서 돈을 버는 셈"이라고 강변했다.
지분 매각이나 배당을 통해 전 인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2015년 마윈은 공상총국의 공세에 혼쭐이 난 뒤 "앤트그룹은 반드시 국민 기업이 돼야 한다"며 "향후 중국 증시에 상장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앤트그룹의 커촹반·홍콩 상장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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