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존폐론 불거진 여가부..."지난 20년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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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기자
입력 2020-07-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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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가부, 박원순 성추행 등 논란에 묵묵부답

  • '여가부 폐지' 청원에 나흘 만에 10만명 찬성

  • "예산·인력 적어"...이정옥 장관 리더십 '흔들'

  • "여가부 폐지, 해법 아냐...성찰 기회 삼아야"

여성가족부를 둘러싼 폐지 논란이 뜨겁다. 최근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여러 성범죄 이슈에 여성폭력 피해 지원 사업의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고 침묵한 데 따른 여파다.

여가부는 지난해 11월 불거진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 사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잇따라 묵묵부답했다.

지난 17일 국회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가부 폐지' 청원에는 나흘 만에 시민 10만명이 동의 의사를 밝혔다. 여가부 존재에 대한 문제 제기가 거센 셈이다.

이처럼 여가부를 두고 여론이 들썩이지만, 전문가들은 "폐지가 답은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논란을 일축했다.

다만 이를 계기로 여가부는 물론, 한국 사회가 여가부가 기능해온 지난 20년을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국회 국민청원 캡처]

 
◆"여가부 폐지" 청원에 나흘 만에 10만명 찬성

22일 국회에 따르면 17일 국회 국민청원에 게시된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한 청원'은 전날 오전 11시 30분경 국민 10만명 동의를 받아 청원이 성립됐다. 이번 청원은 같은 날 오후 5시경 소관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 및 관련위원회에 회부됐다.

청원인은 해당 글에서 "예전부터 하는 일은 없고 세금만 낭비하기로 유명했던 여가부의 폐지를 청원한다"며 "(여가부는) 원래 해야 할 일 중 하나인 여성인권 보호조차도 최근의 정의기억연대 사건과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서 수준 이하의 대처와 일 처리 능력을 보여주면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여가부 폐지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1년 설립 이후 여가부는 그간 군복무자 가산점제 폐지와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 실효성 논란 등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폐지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에도 '성 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지침으로 아이돌 외모 규제 논란에 휘말렸고, '초중고 성 평등 교수·학습 지도안 사례집'으로 성 대결을 조장한다며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여가부, 예산 적고 인력 없어"...이정옥 장관 리더십 '흔들'

거듭된 존폐 논란에 이정옥 여가부 장관의 리더십도 흔들리는 모양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이 장관은 10개월의 임기 동안 여성 이슈와 관련해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 장관은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으로 사실상 젠더 이슈와 거리가 멀다. 진선미 전 장관 후임으로 발탁된 당시 의외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번 박 전 시장 논란과 관련해서도 이 장관은 여가부 수장으로서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아 도마에 올랐다.

8일 피해자가 고소장을 접수하고 이튿날인 9일 박 전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지 일주일 이상 흐른 17일에서야 이 장관은 "최근 지자체와 공공기관 등에서 발생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지켜보며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이러한 상황에 마음이 무겁고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여가부 역할의 한계와 무력함을 여실히 드러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장관은 지난해 10월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여가부 및 산하기관 국감 당시 여가부와 관련한 각종 논란에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권한이 없다"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야권은 '최악의 국감'이라는 악평을 쏟아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학자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여성 이슈에 관심이 없는 학자 출신이 장관으로 부임해 몇 년 동안 그저 자리만 채우다가 떠나는 관행이 문제"라면서 "사회학자 출신인 이 장관 역시 본인이 여가부 장관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없고 의지, 사명감, 열정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인력을 늘리고 예산을 키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젠더마인드가 있는 사람이 수장으로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여성폭력방지위원회 긴급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장관은 이날 "최근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발생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지켜보면서 성희롱,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이러한 상황에 마음이 무겁고 깊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 "여가부 폐지, 답 아냐...성찰 기회 삼아야"

다만 이 같은 논란에도 전문가들은 여가부 폐지가 해법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 여성학자는 "여가부가 설립된 지 20여 년이 흘렀는데 때마다 폐지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간 제대로 된 역할과 기능을 못했을 수 있다. 여가부가 정책 면에서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도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여성 지위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고 우리 생활 속에서 얼마만큼 논의했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또한 "여가부가 제대로 일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게 바로 이런 여가부 폐지 주장이 불거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며 "여가부가 여성 인권과 성 평등을 위한 행보를 제대로 보이도록 문재인 정부가 의지를 더욱 굳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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