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지금은) 임금 가지고 싸울 때는 아니다. 코로나19로 앞이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다."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올해가 그 어느 때보다 노사 간 화합이 중요한 해라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침체하며 수출 물량이 급감하는 등 최악의 위기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윤 부회장은 올해 노사 관계의 틀은 생존을 위한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9년 입사해 40년 넘게 현대차에 몸담고 있는 윤 부회장은 그룹 내 최고 노무관리 전문가로 꼽힌다. 경륜과 실력을 갖춰 그룹의 원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올해 임단협에 대해 "집행부 내부에 반대 계파도 많은 상황인 만큼 끝까지 가봐야 안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놨다.
◆실리주의 현대차 노조…추석 전 타결 목표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강성 노동조합으로 꼽혀온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올해 들어 실리주의를 내세우며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앞다퉈 인원감축, 무급휴직, 임금삭감, 정리해고 등을 단행하고 있는 만큼 노동자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노조 스스로도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이날 임시대의원회의를 열고 총 고용 보장을 위해 연간 174만대에 이르는 국내 공장 생산량을 유지하고, 해외 공장 물량을 국내로 가져오는 안건과 임금 12만304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등의 안건을 상정했다. 당초 임금 동결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지만,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지침인 기본급 6.5% 인상 요구를 그대로 따랐다.
이외에 정년 퇴직자를 단기 고용해 활용하는 시니어 촉탁 제도 연장 확대, 퇴직자들이 당초 근무하던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나왔다. 또 자동차 박물관을 포함한 복합비전센터 건립, 고숙련 직무 교육을 위한 교육 센터 신축, 기본급 중심으로 임금 제도 개선,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중장기적 예방책 도입 등도 언급됐다.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그동안 수차례 '고객 눈높이'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노조'를 강조해온 데 이어 올해 임단협 역시 빠른 시간 내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노조 집행부는 "치열한 토론을 통해 결정하되 사안의 특수성을 감안해 가장 짧은 시간 속에 임팩트 있게 지혜를 모아 마무리하자"고 강조했다.
노조는 임금 요구안 등을 확정하는 대로 사측에 요구안을 발송하고, 다음달 13일께 사측과 교섭한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당초 공약대로 교섭 시작 후 2개월 이내인 추석 전 타결을 목표로 교섭에 나선다.
현대차 노조가 이전과 다른 기조를 보이고 있는 반면, 기아차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기아차 노조 집행부는 최근 기본급 인상과 각종 수당 지급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약 요구안 초안을 마련했다.
노조의 임단협 요구안 초안에 따르면 기본급 월 12만304원 인상에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의 30%, 약 6029억원을 전 직원에게 성과급 형태로 나눠달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해 말 기준 기아차 직원은 모두 3만5203명으로 1인당 2000만원에 해당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이 같은 요구는 향후 협상에서 상당한 진통을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기아차가 미래 성장을 위해 전기차 체제로 전환하려는 '플랜S' 전략까지도 고용안정 위협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플랜S 전략으로 생산체제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대체될 경우 부품 단순화, 공장 스마트화, 모듈화 등의 영향으로 인원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등 핵심부품의 공장 내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해외 판매량이 각각 30%, 20% 정도 줄었다"며 "주력 시장인 해외 물량이 대폭 감소하면서 노조가 요구한 임금 인상안 등을 전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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