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피크(정점) 한국’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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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입력 2020-07-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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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는 일본, 그들의 경험과 자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가문이나 기업, 그리고 국가에도 흥망성쇠가 있다. 예로부터 부자 3대 못 간다고 할 정도로 흔치 않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도 당대에 자수성가한 재력가들이 대부분이다. 지난 30년간 30대 대기업 순위 변동을 보더라도 20여 개 기업들이 진퇴의 곡절을 겪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사태 등으로 향후 더 큰 지각 변동이 예고되고 있기도 하다. 국가의 운명도 이와 유사하다. 글로벌 패권을 두고 다투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지역의 맹주가 되기 위해 힘을 키워가고 국가가 있기도 하다. 이런 위치에 있지 않은 국가들은 힘을 가진 국가들에 이익을 훼손당하지 않으려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런 과정에서 국력이 상승하는 국가가 있고, 이와 반대편에 속한 국가로 구분이 되기도 한다.

국력이 상승하거나 추락하는 궤적의 이면에는 외부적 혹은 내부적 환경이 병존한다. 이에 적응하고 변신하는 리더십과 국민성에 따라 결과는 판이해진다. 국력이 정점(Peak)까지 도달하는 국가도 있지만 중도에 하차하는 국가도 수두룩하다. 결국, 경제력이 국력의 평가 결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가 이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의 방향과 목표를 어디에 두고 구성원들의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상당수의 국가가 잘못된 선택으로 리더십이 결정되고, 거기에 함몰된 절대다수가 국가를 수렁에 빠져들게 한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지만, 더 많은 성공을 만들어내는 국가가 궁극적으로 우위에 서게 된다.


최근 국내 서점에도 소개된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일본, 피크 재팬’이라는 책의 내용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인 브래드 글로서먼이 27년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제삼자적 관점으로 일본의 부침(浮沈)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하였다는 점에서 공감이 가는 점이 많다. 전적으로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대 일본의 고민을 객관적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 국력의 피크가 거품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한 지난 1990년대 초가 아니고 오히려 지금이라는 보는 관점이 특이하다. 두 번의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일본이 근자에 다소 회복력을 보이긴 했지만 화려했던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내부 반발이 있긴 하지만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국력이 정점을 찍고 있다면 더 이상 올라가기보다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려가야 현명한 것인가로 초점이 모인다. 최근 일본인들이 이에 대한 냉철한 자성과 판단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다시는 ‘세계 1등 국가 일본’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편협한 극우 민주족주의 대신 보편적 개방형 국가로의 전환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일본처럼 20세기 전 기간을 포함하여 지난 약 150년간 세계 1등을 오르내리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국가도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외부적으론 중국 등 잠재적 경쟁자가 더 크게 두드러지고, 내부에서는 저출산·고령화와 성장동력의 고갈 등으로 팽창하기보다 수축에 대한 우려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지금이 우리 국력 정점이면 너무 억울, 정치 정상화와 시대정신에 민감한 국민 자각 필요

일본의 국력이 후퇴하면서 그들이 경험한 내우외환을 정리해 보자. 우선으로 지적되는 것은 고질적인 정치 후진성이다. 잃어버린 20년의 고비마다 정치적 리더십이 실종하면서 방황과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1993년, 2009년 약 4년간 야당의 집권이 있었지만, 자민당 1당 혹은 1.5당 독주 체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의 일본을 만든 장본인들이 자민당과 이를 지지한 유권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굴곡의 터널을 벗어나 일본 재건에 대한 책임까지도 이들에게 맡겼다. 일시적으로 경제가 살아나기도 했지만 완벽한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겹친 코로나 사태는 다시 정치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 현 집권 세력의 보수 우경화에 대한 혐오가 다시 꿈틀거리고, 큰 국가보다 보통 국가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출현하는 강력한 경쟁자들의 부상이다. 중국의 급부상은 일본의 부활을 좌절시키는 결정타가 되었다. 2010년 경제력에서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주고, 이후 그 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는 판이다. 일본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잦은 분쟁은 자존심에 그치지 않고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시아 시장 지배력도 예전과 같지 않다. 반도체, 조선, 가전, 스마트폰 등 일부 산업 분야에서는 한국에 1위 자리를 내주는 수모도 당했다. 삼중재난(지진+쓰나미+원전사고)이라고 불리는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국민에겐 좌절과 절망을 안기면서 미래에 대한 좌표를 수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 국력의 피크는 언제인가? 단군 이래 이만큼 잘살아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앞만 보고 달리면서 국력이 계속 상승해왔다. 하지만 근자에 성장동력이 상실하면서 가진 파이를 놓고 서로 차지하려는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자중지란이다. 미래는 안중(眼中)에도 없다. 일본과는 다르게 역동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생산적인 결과로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른 이야기다. 일본은 정점까지 가본 국가이고, 내려온다고 그들은 여전히 3등이다. 그 위상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아직은 우리는 정점에 와 있지 않으며, 여기서 주저앉는다면 실로 억울하다. 지금까지 축적해 놓은 많은 것들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정치의 정상적 작동과 국민이 시대정신을 자각해야 그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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