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연안국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4일(현지시간) 대규모 폭발이 발생한 가운데 폭발 원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레바논 정부는 항구에 대규모로 보관돼 있던 폭발성 물질인 질산암모늄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폭발이 폭탄 공격에 의한 것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혼란을 더했다.
◆트럼프 "폭탄 테러 같아보여"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브리핑에서 "미국은 레바논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면서 "그것은 끔찍한 테러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테러로 보인다고 판단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나는 미군 장성들과 만났으며 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들(장성들)은 그것이 공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종의 폭탄이었다"고 부연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의 공식 입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익명의 미국 국방부 관계자 2명의 말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받았는지 불확실하며, 초기 정보들은 공격이 아니라는 데 무게를 싣는다고 전했다.
◆레바논 "폭발성 물질 때문"
레바논 당국은 이번 폭발이 항구 창고에 보관돼 있던 질산암모늄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질산암모늄 2750t이 지난 6년 동안 아무런 안전 조치 없이 항구에 방치돼 있었다"면서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책임자를 문책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항구 근로자는 AP통신에 "처음엔 폭죽처럼 작은 폭발로 시작했다"는 목격담을 전하며 레바논 정부의 관측에 무게를 실었다.
질산암모늄은 비료나 폭탄 제조에 쓰이는 물질이다. 상온에서 고체일 때는 안정된 상태이지만 가연성 물질을 빨아들이거나 밀폐된 용기 안에서 강한 열이나 충격을 받으면 폭발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2004년 4월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당시에도 질산암모늄이 유출돼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었다.
◆"폭발 충격에 몇 미터 날아갔다"
현지 주민들은 지축을 뒤흔든 이번 폭발에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졌던 내전 공포를 상기했다. 당시 15년 동안 수도 베이루트에는 폭탄 테러와 공습이 끊이지 않았다.
한 주민은 로이터에 "이번 폭발로 몸이 몇 미터나 날아갔다. 나는 기절했고 눈을 떠보니 피범벅이 됐다. 1983년 미국 대사관에서 봤던 폭발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1983년 4월 수도 베이루트에 있던 미국 대사관에 이란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 무장단체가 트럭에 폭발물을 싣고 돌진한 사건을 언급한 것. 당시 사고로 90명이 사망했고 100여명이 다쳤다.
일부 주민들은 지진인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AP통신은 이번 폭발의 충격이 규모 3.5 지진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폭발 직후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고 폭발음이 200㎞ 바다 건너에 있는 키프로스까지 가 닿았다고 한다.
거대한 폭발운이 솟아오르고 폭발 충격파로 건물 유리창이 부서지는 모습들이 담긴 영상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고 수습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사망자는 80명을 넘어섰고 부상자도 3600명에 달한다. 다친 주민들은 베이루트 시내 병원으로 실려가고 있지만 이미 수용 인원을 초과한 상황이다.
레바논 정부는 베이루트에 2주 동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레바논 정부는 베이루트에 2주 동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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