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뉴스인문학] 늦여름 매미소리가 주자학의 품격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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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08-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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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공맹의 유학을 집대성하고 일신하여 동아시아 사상계의 가장 강력한 흐름을 만들어낸 주자학의 주희(朱熹, 남송시대 사람, 1130~1200)는, 일곱 살 아래인 여백공(呂伯恭, 여조겸 1137~1181)을 아꼈다. 그는 태상박사, 저작랑, 국사원 편수관 같은 학식을 요하는 직책을 역임했던 남송 당대의 최고 지식인이다. 장식(張拭)과 더불어 주희-여조겸은 '3현'으로 꼽혔다.

주자학의 경전이라 할 만한 주희의 저술 121권 중에서 58권은 편지글이다. 조선의 퇴계 이황은 이 편지글을 발췌해 '주자서절요'를 만들었고, 정조는 '주자백선'을 편찬했다. 정조는 주희의 편지 중에서 여조겸에게 보낸 17자의 짧은 편지가 가장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편지다.

數日來 蟬聲益淸 每聽之 未嘗不懷高風也
수일래 선성익청 매청지 미상불회고풍야

최근 며칠 새 매미소리가 더 맑아졌습니다
언제나 들어도 아닌게 아니라 높은 뜻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미]

주희의 편지가 여조겸의 고풍(高風, 높은 풍격)을 예찬하고 있다고 그 뜻을 풀어내기도 하지만, 굳이 그렇게 풀어내는 건 글맛을 떨어뜨리는 게 아닐까. 주희는 맑은 매미소리가 고아한 경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좋아하는 여조겸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인간이 전하는 뜻도, 갈수록 깊어지고 맑아지는 매미소리의 격조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지식인의 희원을 담지 않았을까.

나는 짧은 편지에서 '미상불(未嘗不)'이란 췌사를 굳이 넣은 것을 주목해본다. 매미소리가 더 맑아졌다는 말의 의미를 증폭해놓은 것이다. 이번 여름 내내 들었으니 질릴만도 한데 '오히려' 그 반대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새로워서 좋았고 거듭 들었을 땐 시원한 맛이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 늦여름이 되어 버릇처럼 귀를 열고 그 소리를 들어보니 또 다른 맛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간절함과 무심함이 모순 없이 한 소리 속에 들어앉은 '맑음'이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글이, 우리의 생각이 이렇듯 거듭되어도 질리지 않는, 높은 풍격의 맑음에 이를 수 있을까. 이를테면 선성지도(蟬聲之道)를 말한 것이다.
 

[주돈이]



북송의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애련설(愛蓮說, 연꽃을 사랑함)'에서 말한 '향원익청(香遠益淸, 연꽃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 맑아지는구나)'의 경지와 대(對)를 이룰 만큼 깊은 사유의 향기가 난다.

함께 형식을 갖춰서 읽어보면 이렇다.

每聽之 蟬聲益淸 蓮聞之 香遠益淸
매청지 선성익청 연문지 향원익청

매미소리 늘 들을수록 더 맑아지고
연꽃향기 멀어질수록 더 맑아지는구나


주자학의 큰 스승들이 입 맞춘 듯, 이렇게 읊어낸 것이다. 매미소리는 언어이며 연꽃향기는 인격이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조속(趙涑, 1595~1668)의 죽음에 부친 만시를 이렇게 썼다.

數日蟬聲語 書之寄丈人 丈人今不在 此意竟誰陳
수일선성어 서지기장인 장인금불재 차의경수진

요며칠 매미소리 맑다는 주희선생 말씀
글로 써서 어른께 보내드렸습니다
이제 어른이 안계시니
이 뜻을 대체 누구에게 말하리오


유학자로서의 '맑음'을 교유했던 자부심을 드러낸 시였다. 주희 덕분에 매미소리는 주자학의 풍격을 표현하는 상징코드가 됐다. 조선 선비들은 여름만 되면 '선성익청'을 부채에 써서 선물했다.

지루한 장마가 살짝 멎은 어느 맑은 날, 짧은 연애시절을 다 놓치게 생긴 매미들이 새벽부터 목청껏 울어제친다. 매미소리가 더 커진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 소음이 극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성(蟬聲)의 데시벨을 재며, 소음공해를 개탄하기 전에 우선 귀를 바꿔 주희의 선성익청을 한번 들어보는 건 어떨지. 매미는 아무리 바빠도, 울음의 맑은 기풍은 생략하지 않는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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