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익빈 부익부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큰 경제 위기가 지나갈 때마다 빈부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는 점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때에도 그랬다. 심각한 경제 불황에 빈곤층은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위협받았지만, 부유층은 경기 부양을 위해 풀린 막대한 유동성을 발판으로 빠르게 돈을 불려나갔다.
전 세계 경제에 유례없는 충격을 날린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지금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일반 물가나 임금 상승률보다 주식, 주동산, 금 등 자산 가격 상승률이 훨씬 높은 상황에서 '가진 자'들의 강점은 더 부각되기 마련이다.
이번 보고서를 지휘한 UBS의 조지프 스태들러는 "슈퍼리치는 일반 투자자와 달리 위기를 끌어안고 관리할 충분한 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면서 "슈퍼리치는 시장 변동성이 높을 때에도 계획을 추진한다. 포지션을 지키고 원칙을 지킨다"고 설명했다.
범위를 상위 0.001%로 좁히면 이들의 재산 증식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수혜주로 떠오르면서 주가가 고공행진 하는 미국 IT 공룡 창업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최고 부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아마존 주가 상승에 힘입어 보유 자산이 2000억달러(약237조원)를 넘보고 있다. 지난달 아마존 주가가 8% 급등했을 때에는 하루 새 자산이 130억달러 폭증하는 진기록을 쓰기도 했다. 장이 열린 6시간 만에 달성한 기록이니 한 시간마다 앉아서 2조5000억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이달 6일 재산이 1000억달러를 처음으로 넘어서면서, 베이조스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에 이어 세계 3대 부자에 등극했다. 저커버그의 자산은 올해 들어서만 210억달러 넘게 증가했다.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테슬라 주가가 올해에만 240% 뛴 데 힘입어 올해 자산이 396억달러 불어나 672억달러까지 늘었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가문들 역시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다. 월마트 창업주 샘 월튼의 가족인 월튼가문은 지난 1년 새 자산이 250억달러(약 29약6375억원) 불어나며 올해에도 세계 최고 부자가문의 자리를 지켰다. 총 자산이 2150억 달러에 달한다. 1년 새 자산이 10% 넘게 늘어난 셈이다.
세계 부자가문 순위 12위인 스위스 제약사 로슈의 오에리-호프만 가문은 코로나19 진단기기 판매 덕에 자산이 24%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물론 모든 부자가문들의 사정이 좋았던 건 아니다. 부자가문 순위 3위인 미국 정유·화학기업 코크인더스트리의 코크 가문은 유가 폭락에, 23위 홍콩 순훙카이 부동산그룹의 쿽 가문은 장기화한 홍콩 시위라는 악재를 맞았다.
그러나 이들 부자가문은 세대를 거치면서 위기를 기회로 삼는 법을 배우며 부의 장벽을 높이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경제 위기로 자산 가격이 폭락했을 때 자산을 대규모로 매수해 시장 반등 시 차익을 얻거나, 후손에게 보유 주식을 싼값에 넘겨 상속세를 줄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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