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주인공 앤드류는 주인의 딸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자신이 로봇이라는 한계를 절감하며 그녀를 떠나보낸다. [사진=바이센테니얼맨 화면 갈무리]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은 로봇공학 3원칙을 세운 아이작 아시모프의 동명 소설 원작으로 유명하다. 로봇공학 3원칙에 따르면 △로봇은 사람을 해쳐선 안 되고 △인간에 복종해야 하며 △스스로 보호하되, 앞의 두 원칙을 어겨선 안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로봇이 사람처럼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존재가 돼 법적 책임과 권리를 가진 법인격을 요구할 수 있다. 그때 인간은 이 로봇에게 ‘전자인격’을 주지 않을 명분이 있을까.
현행법상 인간 권리의 토대는 사람의 몸이다. 자율적 기술 시스템에 불과한 AI가 인격을 인정받는 방법의 하나로 법인 등록을 거론하지만, 현실성은 낮다. 여러 인간이 개입해 의사결정과 책임을 지는 법인과 달리 AI 로봇은 한 몸으로 현실을 살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법체계는 인격의 범위를 확장해왔다. 인격은 인간의 몸 자체보다는 사회적 관계와 체계, 문화 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여성과 아동, 노예의 인격은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모든 인간은 인격을 갖게 됐고 법인과 사단법인도 권리와 책임을 지는 법인격의 주체가 됐다. 이 때문에 로봇에게도 ‘전자인’을 부여해 법적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앤드류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영화는 인공 장기를 달고 사는 미래 인간이 로봇과의 차이를 부각할 근거가 희박해진 상황을 보여준다. 앤드류는 인간 유전자가 없다고 지적한 판사에게 “판사님의 신장도 제가 만들었으니, 판사님 신체 일부도 인공적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자신의 가슴을 가리켜 ‘마음’이 인간이라는 변론도 폈다. 하지만 판사는 그의 불멸성을 근거로 인간 신청을 기각한다.

앤드류는 젊음 유지 약 복용을 멈춘 포샤와 함께 생을 마치려 영생을 포기한다. 결혼 인정 재심을 신청한 그는 최후 변론을 마치고 처음으로 눈물 흘린다. [사진=바이센테니얼 맨 갈무리]

마침내 두 '사람'을 부부로 인정한 판결 직후 포샤가 남편을 바라본다. 하지만 앤드류는 이미 선고 직전 숨을 거뒀다. 포샤는 생명 유지 장치를 끄고 남편을 따라간다. [사진=바이센테니얼 맨 갈무리]
판결을 앞두고 나란히 누운 둘. 화면이 열리고 판사가 말한다. “로보틱스사의 기록에 따르면 앤드류 마틴이라는 로봇이 2005년 4월 3일 5시 15분에 가동돼 몇 시간 후면 200세가 됩니다. 이로써 앤드류 마틴은 인류 역사상 ‘최고령 인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한 선고 직후 포샤가 그를 지긋이 바라보지만 앤드류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생명유지 장치를 끈 아내는 남편과 함께 여생을 마친다.
1999년 작인 이 영화는 지금도 풀지 못한 숙제를 던진다. 학계 일각에선 AI 발전 단계나 인간형 로봇 개발 제한 등이 거론돼 왔다. 주인 잃은 AI의 자율성 인정과 제조사의 책임 회피 문제도 논쟁거리다. 향후 일자리를 잃게 될 인간들을 위해, AI가 빅데이터로 일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차가운 현실에서 공존하게 될, 기계로서의 AI를 보는 관점들이다.
그러나 바이센테니얼 맨은 묻는다. 한 여자의 남편이 되기 위해 죽음을 택한 로봇 앞에서, 무기와 인공 장기를 만드는 인간은 어떤 ‘인간성’을 차이점으로 내세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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