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업만 20년, 더는 못버팁니다"…김사장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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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0-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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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무명 넘던 직원 모두 퇴사하고 혼자만 남아

  • 밀린 세금.퇴직금 눈덩이...지원은 턱없이 부족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버티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20년 동안 경기도 용인시에서 아웃바운드(내국인 해외여행) 상품 판매 대리점을 운영해오던 김수철 A 여행사 대표(60·가명)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자 결국 휴업을 결정했다. 그에게는 매일이 '고비'였다. 스무명에 달했던 직원들은 모두 퇴사하고 혼자 남았지만, 사무실 월세 등 '고정비 지출'은 여전히 남아 그의 숨통을 죄었다. 돈을 내는 날짜는 어쩜 그렇게 총알과도 같은지,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코로나19에 위기를 겪는 업체를 지원하겠다고 내놓은 정부 대책도 그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폐부에 맞닿은 현실, 참으로 썼다.

◆"끝까지 버티려 했지만··· 승승장구하던 여행업, 코로나19에 '휘청'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해외 여행객을 송출하는 '아웃바운드' 전문 여행사는 소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김 대표도 그 즈음인 2002년 M사의 여행상품 판매 대리점을 처음 시작했다. 한 마디로 '대박'이었다. 너도나도 패키지 상품을 구매해 여행을 떠났다. 수요가 많으니 매출은 당연히 수직 상승했다. 나날이 커가는 몸집에 직원도 20명가량 채용했다.

여행업이라는 것이 본래 정치·외교·사회·환경 등 대외적인 요인에 흔들리는 산업이라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기까지 김 대표의 여행사업은 꽤 탄탄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과 중동 호흡기증후군(메르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사태 때도 여행수요가 전멸상태는 아니었던 만큼 '여행지역 다변화' 마케팅으로 선전했다.

그러다 여행에 스마트폰·태블릿·디지털카메라 등 스마트 기기를 적극 활용하는 자유여행객인 '플래시 패커(flash packer)'가 늘면서부터 여행사의 위기가 시작됐다. 항공권부터 호텔, 입장권 등을 개인의 일정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김 대표는 OTA에 물러설 수 없었다. '골프투어' 상품을 개발해 일반 상품과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고, 수입도 꽤 쏠쏠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거대 복병은 김 대표를 결국 무릎 꿇게 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하늘길이 막히면서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관광은 제로에 수렴됐다. 7월 기준으로 올해 폐업한 여행사는 450곳이 넘고, 정부에 지원금을 요청한 여행사도 6500곳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여명에 달하던 김 대표의 직원들은 코로나19 여파로 하나둘 회사를 그만뒀다. 사태가 장기화하기 전에는 프리랜서를 고용하기도 했지만, 역대급 감염 사태가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눈물을 머금고 직원들을 다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족처럼 여기던 직원들에게 퇴사를 권고했을 때 심정이 오죽했으랴.

사무실 임대료 내기도 벅찬 상황이 되니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직원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 한편이 저리지만,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실효성 없는 정부 정책에 '분통'

고용유지 지원금을 비롯해 다양하게 내놓은 정부의 지원대책도 그림의 떡이었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5000억원을 투입해 3월부터 여행업계를 비롯한 전 업종에 '고용유지지원금'을 6개월간 지원하기로 했다. 신청하면 휴업·휴직 수당의 최대 90%를 보전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영업장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직원들이 퇴사한 후에 발표된 대책이라 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었다. 각 지자체에서 내놓은 여행사 대상 지원금도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었다.

김 대표도 엄연히 여행업 종사자인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보고 있자니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여행업이 다 쓰러졌는데 규제를 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나. 차라리 직원 월급을 지원해 주든지, 사무실 월세를 지원해 주든지 여행사 전반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갑갑하기만 했다.

해외여행 상품 판매에 주력해 왔던 그의 처지에선 정부가 추진하는 '국내여행 활성화' 방안도 탐탁지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 국내관광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관광이 하루아침에 살아나겠는가. 여행업계 전체를 살리겠다고 내놓은 지원책은 꽁꽁 얼어붙은 여행시장을 녹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인력 이탈과 급변하는 여행 트렌드로 인해 '여행사'가 경쟁력을 잃게 되면서 여행산업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프다. 불빛 하나 없는 터널을 걷고 있는 기분만 든다. 늘 넘어질까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행업 자체가 회생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만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 이 힘겨운 삶을 버티기로 한다. 한 줄기 희망도 없지만, 그래도 밝아올 내일을 위해 버텨내야 하지 않겠는가.

◆'가치 있는 관광' 위해선··· 실효성 있는 정부 대책·업계 자정노력 '절실'

유례없는 감염병 확산 사태에 업계가 줄도산할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상반기 여행업계 피해 규모는 약 5조9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아낌없는 지원을 통해 업계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대체로 '융자'나 '고용지원' 같은 간접적인 지원책을 내놓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 역시 어려움에 처한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비나 임대료 등을 지원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여행업계의 절규가 지속되자 고사 직전에 놓인 관광업계를 살리고 위축된 소비심리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목표 아래 최근 'K-방역과 함께하는 숙박 대전'을 운영, 지난 14일부터 숙박 할인쿠폰 100만장을 뿌렸다. 여행 패키지 상품 선결제에 최대 30% 할인 혜택을 제공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확진자가 재차 급증하자 결국 사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고, 활기를 찾아가려던 여행업계는 또다시 급속도로 냉각됐다.

이원근 승우여행사 대표는 "고용유지지원금은 직원들에겐 좋은 제도이지만 회사 대표에 대한 지원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며 "대표도 먹고살기 힘든 국민일 뿐이다.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직원을 챙겨야 한다. 결국 대표가 힘들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 정부의 대책을 곱씹어 생각하면 앞뒤가 바뀐 대책이란 느낌도 든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사실상 여행사는 필요악이 됐다"며 "어차피 직원은 휴직 중에도 급여를 받지만, 사측은 날이 갈수록 4대 보험에다 세금과 퇴직금이 결국 늘어난다. 단기성으로는 좋은 제도임이 틀림없지만, 사업장을 이끌어가는 대표 입장에서 이 제도는 상황이 장기화하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지원하면 할수록 회사는 오히려 손해를 입는 구조라는 것이다.

관광업계에 지원하는 '특별융자' 대책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융자는 말 그대로 융자다. 신용보증재단에서 보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결국 대표의 신용과 회사의 부채 등을 따지기 때문에 사실 못 받는 곳이 많다"며 "좀 더 유연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외에 여행상품 30% 선 할인 대책도 여행사에 10%의 부담을 지우기 때문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취지는 좋으나 상품들을 좀 더 전문적으로 추리고 지원을 더 많이 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기존 해외여행 상품 판매에 의존했던 종합 여행사들을 향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가 유일한 경쟁력이었던 여행업계도 변화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훈 한양대 교수는 "관광객 수가 느는 것이 우리에게 과연 좋은 일이기만 할까 생각해봐야 할 때다. 저비용 항공사가 생겨나고 다양한 여행상품이 나오고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여행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그동안 업계에선 모든 경쟁력을 '가격'에 두었다. 이제는 여행의 빈도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 즉 행복과 가까운 여행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품질관광, 가치관광으로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업계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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