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도시-특별인터뷰] 유현준 "공간의 집적도 높이면 새로운 경제적 기회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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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0-08-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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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여 살아야 부동산도, 상업도, 도시도 더 번성"

  • "고층 건물의 저층과 고층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문제 해결"

유현준 건축사사무소 소장이 최근 아주경제와 세로도시-고밀개발의 방향에 대한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도시 밀도가 높아질수록 상업행위가 늘고 경제활동하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돈을 벌 기회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1970년대 아파트, 1990년대 주상복합은 철근·콘크리트 기술로 새로운 부를 창출한 일종의 건축혁명이다. 2020년에는 기존 고층건축의 단점을 개선한 새로운 유형의 고밀도시개발 모델이 필요하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건축가)는 최근 아주경제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도시의 밀도와 경제발전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제대로 된 고밀개발의 실패가 지금의 부동산 폭등 문제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70~1980년대 아파트 개발 이후 1990년대 주상복합건물이 등장하면서 도시가 한 단계 고밀화 됐지만 그 이후부터 균형발전이라고 하면서 강남 개발은 막고, 서울과 지방의 고밀도시를 해체했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지금이라도 도시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개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 뒤쳐진 역사, 고밀도시 혁명에 실패했기 때문

그는 "고밀화 된 공간구조를 만들면 단위면적 당 인구가 늘고, 장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내 물건을 사줄 사람들이 근거리에 많아진다"며 "상업활동과 화폐통화량이 늘면 평범한 사람들이 부를 축적할 기회가 생기고 사회 계층간의 사다리가 하나씩 늘면서 사회가 더 유연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고밀개발이 국가의 명운도 좌우한다고 했다. 그 예로 한국과 일본의 난방구조를 들었다. 유 교수는 "한국은 주거난방시스템이 온돌이기 때문에 건물을 높게 올릴 수 없는 구조"라면서 "전통적으로 단층 건물이 많아 도시가 넓게 흩어져있었고, 대표적인 예가 5일장, 7일장처럼 며칠에 한 번씩 열리는 장 문화"라고 말했다.

반면 "일본은 지진이 빈번해 온돌대신 다다미방에 화로를 놓는 식으로 발전했고, 교토를 보면 수백년 전 지어졌지만 2층, 3층짜리 도시형 주택이 가능했다"면서 "그런 밀도 높은 도시들은 장이 매일매일 형성돼 상업이 융성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목조양식이어도 경복궁은 1층이지만 오사카성은 5층인데, 일본과 한국 통화량이 5배 이상 차이가 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경제적인 부를 축적할 기회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권력의 이동이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전통적으로 상업이 발달한 도시에선 상인이 부르주아로 떠오르고, 이들이 신흥 세력으로 부상해 왕의 권력을 빼앗아 밑으로 내려오면서 시민혁명이 가능했다"면서 "한국은 건축양식만봐도 그런 매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았다. 조선시대부터 고밀화된 도시에 대한 관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철근과 콘크리트, 엘리베이터를 통해 고층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남의 것을 빼앗아서 나눠준 혁명이 아닌 기존에 없던 기술을 통해 자산을 나눠쓰게 한 진짜 혁명"이라면서 "대한민국의 발전은 고밀도시로 많은 중산층(경제적 기회 획득+부동산을 소유한 지주)이 생겼고, 이들이 위기 때마다 국가를 버티는 중추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무조건 높게 쌓아올린 도시를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유 교수는 "단순히 밀도를 높여서는 안되고 고밀도시의 새로운 공간구조와 룰(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밀도는 높이되 저층 그라운드 레벨에서는 도서관, 공원, 벤치 등 무료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도시의 수직화가 불러오는 필연적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그는 "평평한 땅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소셜믹스가 이뤄져야 고밀도시로 인한 사람들간의 단절을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세로(수직)도시'의 바람직한 해법으로 저층부의 개방감을 강조하는 이유는 공간의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필연적으로 빈부격차, 심리적 단절, 사회적 약자 소외 문제 등 갈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홍콩 등이 겪고 있다.

실제 아파트, 주상복합 등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고층 건물은 비용을 지불해야 누릴 수 있는 콘텐츠들이 대부분이다. 도곡동 타워펠리스,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트리마제 등 50층 아파트들의 저층은 커피숍, 명품 편집숍, 고급 베이커리 등으로 이뤄졌다. 고층 건물의 비싼 임대료를 부담할 수 있는 업종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주상복합건물의 MD구성이 대부분 비싼 돈을 내야 접근 가능한 것들이어서, 일반 시민들이 접근 불가능하다"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한 개선 없이 무조건 건물을 높이 쌓기만 한 게 지금의 도시문제인 계층갈등, 도시분화, 세대단절 등의 문제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면 가장 먼저 친해지는 친구들이 일본 친구들인데, 그 이유는 언어 장벽과 상관없이 그들(일본인)과는 마징가Z, 드래곤볼 등 유년기의 공통된 추억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라운드 레벨 접근성을 높인다는 것은 타워펠리스를 소유하지 않아도,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갖고 있지 않아도 그 동네의 인프라를 누리고, 즐기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통된 추억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압구정 주민은 노원구에 가서 즐길수 있어야 하고, 성동구, 광진구 주민들은 강서구에 가서도 자유롭게 즐길 거리가 있어야 한다"면서 "지금 고층 건물은 돈을 내고 들어갈 공간밖에 없어서 다른 지역 주민들이 그곳에 갈일 자체가 없는 게 문제"라고 했다.

또 "사람들간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늘어나야 사회계층간의 갈등이 줄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많아질 수 있다"면서 "건물을 아무리 아름답고 높게 올려도, 단지를 개방하지 않고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드는 건 사회 전체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그는 건전한 세로도시를 위해서는 건물을 최대한 개방하고, 평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가구수를 늘리며, 집집마다 발코니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건축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 교수는 "도시가 수직화, 세로화될수록 실내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마당있는 집'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본성과는 점점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각 가구마다 하늘을 보고 비를 맞을 수 있을 정도의 발코니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윗집이 발코니를 가리는 구조가 아닌 윗집 발코니가 적어도 2개층 위에 있어서 충분히 개방감있게 하늘을 볼 수 있도록 건축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현준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세로도시는 더 많은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고, 계층사다리를 만들어 사회를 더 유연하게 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월세·임대난민 부르는 부동산 정책은 수백년 실패의 데자뷰

유 교수는 세로도시를 통한 또 한 번의 도시혁명이 가능하려면 더 많은 청년들이 집을 살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동산을 소유한다는 건 땅을 소유한다는 의미니까 조선시대로 치면 소작농에서 지주로 바뀌는 것"이라며 "조금만 노력하면 집을 살 수 있는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 '내 집'을 소유해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지금처럼 월세와 임대를 양산하는 방법은 수많은 청년들을 월세 소작농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임대료에 개입하고, 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늘려 2030세대를 공공주택시장으로 유입시킨다는 의미는 뭘까. 유 교수는  "국가와 자본가만 부동산을 소유하면 권력과 부가 특정 계층에게만 집중되고, 일반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면서 "국민들이 월세와 임대로 산다는 건 점점 더 많은 권력을 정치가에게 넘겨주는 것이고, 그런 정치가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지주가 된다"고 했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대한 해법으로 그는 고밀개발과 평형 줄이기를 제안했다. 유 교수는 "주택 수요는 인구보다 세대수가 결정한다"면서 "현재 1인 가구 비중은 30%, 1인 가구와 2인 가구를 합치면 60%에 육박하는데 5000만 인구를 4인 가족으로 나누면 필요한 집은 1250만 채지만 1인 가구를 포함하면 1500만 채가 되고, 2인 가구까지 합치면 3000만 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대충 계산해도 4배의 집이 더 필요한데 집값이 4배로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99㎡(30평) 아파트 2채를 3채를 만들고 용적률도 올려서 집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그린벨트와 도시가 만나는 접경의 좁은 면적은 고밀도로 개발해 그린벨트 내 주거를 이전하고 짜투리 땅은 과감하게 녹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은 집단에 속해 적절한 익명성에 있을 때 안전함을 느낀다"면서 "모여살아야 상업도, 부동산도 더 번성한다"고 했다. 또 "대한민국은 도시화 비율이 91%를 넘어 이미 도시로 인구이동이 끝난 나라"라며 "도시화 비율은 한국이 일본, 홍콩보다 이미 압도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심부를 벗어난 지역에 주택을 짓고, 수도를 세종시로 옮긴다고 해서 서울 집값이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이러한 정책이 오히려 서울의 국제적 경쟁력만 약화시킨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LH, SH도 과거에는 녹지를 택지로 만드는 일을 했다면 이제는 반대로 택지를 녹지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면서 "인구노령화로 소멸하는 시골 마을을 아파트 단지로 바꾸는 대신 콤팩트시티를 만들고, 그린벨트 보존 가치가 없어진 땅을 자연녹지로 회복시킬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권력은 분산할수록 좋은 것이고, 현대사회에서 부동산 자산은 곧 권력"이라며 "부동산이 정부나 대자본가에 집중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나누어서 소유할 수 있는 곳이 정의로운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고밀도시 개발의 룰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20년 후 완전히 다른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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