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파이브, 공간을 넘다
공유 오피스 시장에 작을 공을 쏘아 올렸던 위워크가 한국에서 ‘조용한 퇴장’을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경영진의 모럴 해저드와 무리한 기업공개(IPO) 추진 이후 아시아 시장보다 북미‧유럽 시장에 집중해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분위기도 포착된다. ‘공룡’ 위워크의 빈자리가 커지면서 토종 공유 오피스 기업 패스트파이브 주가는 높아지고 있다. 산업의 문제가 아닌 개별 기업의 문제였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면서 국내 공유 오피스 1위 기업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패스트파이브는 지난해 매출 425억원을 기록했다. 매년 2~3배의 성장세다. 패스트파이브 공간을 이용하는 회원은 1만7000여 명. 현재 운영 중인 지점은 25개다. 앞으로는 매년 약 10개 지점 오픈을 계획 중이다. 최대 경쟁자였던 위워크의 부진을 고려하면 보수적인 목표다.
김대일 패스트파이브 대표는 “공유 오피스 사업의 핵심은 공실 관리다. 패스트파이브는 모든 지점의 공실 관리가 잘 되면서 이익률이 높고, 캐시 플로우를 만들어 냈다”며 “재임대는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다. 보수적으로 운영해 손익분기점(BEP)을 유지하면서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내년 1분기면 공유 오피스의 실패 잔상도 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재구성된 공간, 이를 실행하는 경쟁력
공유 오피스의 본질은 사무 공간 재임대다. 기업 경영에 필요한 많은 고민들 중 공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서비스다. 다른 임대사업자와 차별화한 점은 세련된 디자인과 효율적으로 설계된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서울 도심지역 오피스 공실률은 10% 수준이다. 종로와 충무로의 경우 지난 6월 말 기준 각각 12.2%, 19.8%까지 올라갔다. 건물을 짓기만 하면 임차인이 들어차던 과거와는 딴판이다.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도심지 오피스에 들어갈 기업도 부족하다. 건물주는 공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해졌다. 본격적인 수요 우위 시장이 열린 셈이다. 패스트파이브는 이 지점이 공유 오피스가 부동산 시장의 헤게모니를 가져간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김 대표는 “최근 개인이 매입한 꼬마빌딩의 리모델링 및 임차 과정을 패스트파이브에 맡기기 위한 상담이 늘어나고 있다. 꼬마빌딩은 대로변과 큰 건물이 아니어도 저렴하게 이용하고 싶은 기업들에 반응이 좋다. 패스트파이브도 꼬마빌딩 공간을 층 단위로 임대하는 형태로 2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며 “빈 건물이 많아졌고, 앞으로도 늘어날 거다. 1980~90년대 지어진 낡은 건물도 많다. 빈 땅은 없고, 서울 노후 건물의 매입‧매각‧리모델링도 빈번해지고 있다. 건물 운영 업체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공유 오피스 업체 말고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회사가 없다. 우리는 이제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좋은 건물을 싸게 가져올 수 있는 노하우도 쌓였다”고 경쟁력을 설명했다.
사무공간, 콘텐츠를 얹다
패스트파이브는 재임대 노하우 이외에 회원 1만7000여 명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하나 더 있다. 플랫폼 기업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많은 사용자를 모으고, 이를 사업 확장에 활용한다. 패스트파이브는 사무공간이라는 플랫폼을 구축해 수만 명을 모았다. 머지 않아 회원 수는 2만, 3만만 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그 순간을 위해 사무 공간에 콘텐츠를 하나둘 입히고 있다.
대표적인 콘텐츠는 교육이다. 기업은 빠르게 변하는 산업 생태계에 대응하기 위해 직원 재교육이 필수적이다. 실무 지식, 마케팅, 기술의 변화 등 수 많은 영역이 있지만, 모든 분야를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패스트파이브는 실무 교육 스타트업 패스트캠퍼스를 자회사로 편입한 뒤,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입주사에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 건국대학교 등과는 패스트파이브 지점을 캠퍼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협업하고 있다. 언택트 교육이 보편화하면서 각 도심지에 캠퍼스가 필요한 대학교와 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은 입주사 회원을 연결하는 시도다.
워킹맘, 워킹대디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보육 문제도 손대고 있다. 지난 5월 역삼동에 ‘다람 패스트파이브 공동직장 어린이집’을 개원해 큰 공간에서 질 높은 보육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비영리사업인 만큼 회원사 복지 측면에서 접근해 2년이나 준비한 사업이다.
김 대표는 “공유 오피스는 임차료, 정수기 비용, 인터넷 비용 등을 대체했던 서비스다. 앞으로는 고객이 원하는 니즈에서 출발해 교육, 피트니스, 헤드헌팅, FNB 등 서비스 제공을 생각하고 있다”며 “오피스는 일하는 사람을 모으는 플랫폼이고, 이 위에 콘텐츠 얹고 있다. 주 소비층은 2030세대인데, 운영은 4050세대가 맡으면서 비효율이 많았다. 지금까지는 공간에 대한 사업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공간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패스트파이브는 IPO도 준비 중이다. 상장에 성공하면 국내 공유오피스 업체 중 첫 번째 사례다. 물론 IPO가 최종 목표가 아니다. 오피스 시장의 변화, 더 나아가 사무공간에 대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김 대표는 “IPO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큰 의미 부여는 안 하고 있다. 결국 본업이 잘돼야 한다”며 “우리는 공유 오피스 사업의 흐름을 10년 정도로 길게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내부에서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이 정도로 클 줄 몰랐다’고 말하게 될 거다. 어떤 미래를 생각하든 상상 그 이상의 결과를 낼 거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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