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오후.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사임을 선언하였다. 일본정계 관계자들도 놀란 전격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전조는 있었다. 총리의 동정이 분단위로 공개되는 일본에서, 아베가 수시간 동안 행적이 공개되지 않은 일이 이미 있었다. 그때 그는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세간의 관심은 누가 그의 후임이 될 것인가이다. 특히, 일본과 역사문제 등으로 아직도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는 관심이 더 크다. 아베의 후임으로 언급되는 사람은 현재의 관방장관 스가, 정조회장 기시다, 중의원 의원 이시바, 방위대신 고노 등이다. 이 중에서 비교적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는 다음의 표와 같이 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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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후임이 될 것인가?
자민당 정치 특징의 하나는 파벌 보스들의 밀실담합으로, 차기 총리가 누가 될 것인가가 요정의 담합에서 정해지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이 담합정치는 쇠퇴해가는 추세이다. 따라서 9월 중순에 결정되는 차기 총리에 대하여 아직도 추측이 무성하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스가 요시히데의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본다.
첫째 이유는 이번의 총리 선출이 예고된 정규적인 일정이 아니라 자민당 의원들조차 놀란 돌발사태의 수습이라는 측면이다. 돌발상황 속에서 자민당 임원회의는 차기 총재선거의 시기와 형식 등을 간사장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에게 일임하기로 하였다.
니카이는 9월 1일에 자민당 총무회를 열어 9월 중순에 있을 총재선거의 세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선거방식에 있어 전국의 자민당원을 참여시키는 정규적인 방식이 아니라 현직 국회의원 1표와 각지방단체에 3표를 할당하는 방식으로 이미 결정된 것이다. 중참양원의 자민당의원 표수는 394표이며 지방당의 표합계는 141표이다. 9월 중순의 당내선거에서 총 535표의 과반수인 268표 이상을 얻는 사람이 차기 총재가 되고,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경우에 다수 득표자 두 사람이 결선을 치르게 된다.
경선에 몇 명이 이름을 올릴지는 모르지만 현재 과반수를 장담할 수 있는 후보는 없다. 따라서 상위 득표자 2인의 결선으로 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누가 결선에 갈 것인가? 나는 표에 있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의 결투로 갈 공산이 크다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 결선에서는 스가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다.
스가의 압도적 우세의 요인은 그가 최근 8년 동안 관방장관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직책에 없는 관방장관이라는 포스트는 낯설다. 우리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인데, 총리실의 모든 발표를 이 사람이 하게 된다. 따라서 일본국민은 적어도 하루에 한번 이상은 TV화면으로 이 사람을 보게 된다. 일본에서는 관방장관을 ‘총리의 마누라’(女房役)라고 부른다.
스가는 아베가 질병에서 회복하여 총리로 컴백한 2012년 12월에 관방장관을 맡아 오늘까지 하고 있다. 8년이라는 긴 세월에 그는 한번의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직을 충실하게 실행했다. 이것의 가장 큰 의미는 총리 아베와 그의 관계는 다른 사람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끈끈하고 상호의존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이번에 선출하는 총리는 아베의 남은 임기인 약 1년을 메꾸는 임시직이다. 하던 일을 못하고 물러나는, 게다가 검찰조사 등이 남아 있는 아베의 입장에서 본다면 온갖 내막을 다 알고 충실하게 보좌해 준 스가가 자신의 남은 임기를 채워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행정적으로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따라서 아베는 스가가 후임이 되는 데 모든 정치자원을 동원할 것이다. 파벌에 있어서도 가장 큰 양대파벌인 호소다 파벌과 아소 파벌은 아베의 의견을 존중하여 따를 것이다. 이때 아베가 ‘스가’라고 말한다면 차기 총리는 스가가 되는 것이다.
스가의 승리를 예측하는 둘째 요인은 현재 자민당 간사장을 맡고 있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라는 존재이다. 1939년생으로 81세에, 중의원 당선 12회인 그는 막후정치가 쇠퇴하는 현재의 자민당에서는 가장 강력한 픽서(fixer)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자민당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가를 한 사람만 뽑는다면 니카이일 것이다. 이 니카이는 스가의 최대 후원자이다.
니카이는 왜 스가를 후원하는가? 스타일과 색이 맞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엘리트출신이 아니다. 도쿄의 유명대학을 나오고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국회의원직을 세습한 자민당의 많은 정치가들과는 달리, 두 사람 모두 지방출신으로, 특히 현의원으로서 정치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 정계에서는 아베가 외교를 위하여 세계를 돌아다니는 동안, 집안 살림은 스가와 니카이가 했다는 인식이 있다. 아베-스가-니카이는 강력한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한 것이다. 그중에 얼굴마담격이었던 아베가 몸이 아파 물러났다면, 남은 스가와 니카이가 총리관저와 당을 지켜야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본식 사무라이의 ‘의리와 인정’일 것이다. 화려한 말재주나 긴 이력서는 없지만 정권을 뒤에서 관리하며 싸워왔다는 공감대는 두 사람 사이에 신뢰와 우정을 형성했다고 본다.
기시다와 이시바
기시다와 이시바는 공통점이 많다. 일본의 두 명문사학인 게이오와 와세다를 나온 이 두 사람은 모두 대학졸업 후 금융계에 취직을 하였다가, 젊은 나이에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정치가가 된 사람이다. 나이도 같다. 아직도 자민당에 많이 남아 있는 “세습의원”이다. 다만 두 사람이 다른 점은 기시다는 친아베 파벌에 들어있고 이시다는 반아베 파벌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총리 아베가 외무대신을 역임한 기시다를 지지한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2019년 9월에 자민당의 인사가 있었다. 이때 아베가 간사장 니카이의 후임으로 기시다 (당시 정조회장) 안을 꺼냈다. 이에 니카이가 맹반발을 하였고, 스가도 니카이의 “무게”를 감안하라는 청을 하여 무산되었다. 여기서 얻는 힌트는, 아베정권 내부에서 기시다가 무거운 인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에 직면하여 기시다가 정조회장으로서 소득이 감소한 세대에 30만엔씩 주자는 안을 제시하자 자민당 내부에서 반발이 있었다. 이를 놓고 니카이는 ‘(정책조정회장의) 정책조정이 잘 안되고 있다’고 꼬집는, 일본정치문화에서는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기시다는 2015년의 한·일위안부합의에서 일본측 외무대신으로서 잘 알려져있다. 한때 아베의 지지를 받았던 그의 약점은 ‘발언력’이 약해서 잘 안보인다는 것이다.
‘정적’이라는 표현이 잘 안 쓰이는 일본정치문화에서 이시바는 아베에 공공연하게 대치하는 정적으로 인식된다. 이시바의 강점이자 약점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따라서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성역이 없이 모든 것을 까놓고 토론하는 것’이 자민당이 나갈 길이라고 TV에서 주장하는 것이 그의 대표적 이미지이다. 그리고 그는 아베의 ‘역사수정주의’적인 강경보수노선에 반기를 든다. 예를 들어, 그는 한국에 대한 양보와 타협을 주장한다. 이에 젊은 층을 포함하는 많은 일본인들이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은 간접민주주의여서 총리는 국민이 아니라 다수당의 당원들이 뽑는 것이다.
이시바의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그가 기독교신자라는 점이다. 그의 가계는 4대에 걸친 크리스천 가문이라고 전해진다. 이시바는 모친이 다니던 일본기독교단 돗토리교회에서 18세에 세례를 받았고, 게이오대학을 다니면서 동경에 있을 때는 교회학교의 교사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서라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는 이 배경은 일본에서는 큰 감점요인이다. 일본 전체 인구의 0.5%에 불과한 기독교인의 비율을 볼 때, 이시바는 극소수의 마이너리티 집단에 속하는 인물로서, 보수적인 일본사회를 대표할 수 있을까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어쩌면 그의 자민당에서의 역할은 혼탁한 분위기에 외롭게 고개를 든 사이다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한일관계의 새 판짜기
코로나사태, 올림픽 문제 등 중대한 사안에 직면해 있는 자민당의 총무회는 가장 신속히 차기 총재를 선출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그 경우, 9월 중순이면 새로운 총리가 정해지고, 새로이 내각이 짜여질 이 잠정정권은 2021년 9월까지 아베신조의 잔여임기를 수행할 것이다.
위에서 본 세 사람 중 누가 총리가 되건, 그는 내년 9월 이전에 중의원을 해산하여 국회를 일신하거나,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3년 임기의 새로운 총리를 뽑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금년 9월에 결정되는 총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된다. 결국 2주 후에 결정되는 총리가 앞으로 큰 사고가 없다면 4년간 일본을 통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2022년 초에 새로운 정권이 탄생한다. 2020년 9월에 탄생하는 일본의 총리는 큰 문제가 없다면 2024년 여름까지 자리를 지키며 2022년 초에 탄생하는 한국의 대통령을 상대하게 된다. 이 시기는 아마 한·일관계, 나아가서 북한을 포함하는 동북아의 지형이 바뀔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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