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급작스런 퇴진으로 일본 정국이 혼돈에 빠져들었다. 다음 달 '아베의 복심'으로 꼽힌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새 내각 출범이 유력해진 가운데, 민주주의 훼손의 책임을 묻는 '아베 정권 심판' 여론도 급부상하고 있어 내년 총선까지 장기간 혼란 정국이 이어질 것도 예고하고 있다.
내달 '스가 내각' 출범 유력...'아베 복심'에 자민당 총지원
30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다음 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스가 장관은 "출마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거듭 부인했으나 불과 며칠 만에 입장을 바꿨다.
이러한 결심 뒤에는 아베 총리의 복심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지난 28일 기자회견에서 "차기 총리 선출은 내가 말할 일이 아니다"라며 "당 집행부에 전적으로 맡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퇴 하루 전인 27일 주간지 슈칸분슌은 지병 악화로 인한 아베 총리의 퇴진을 점치며, 아베 총리가 내각 인사 중 과도기 정권 수장으로 후계자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이나 정권 2인자인 아소 다로 부총리가 아닌 스가 장관을 지지한다고 전했다.
매체는 아베 총리가 그간 유력한 임시 총리 대리로 꼽혔던 아소 부총리를 평소 탐탁지 않게 여긴 반면, 코로나19 재유행 논란에도 '고투 트래블' 캠페인을 예정대로 진행한 스가 장관을 위기상황 안정화의 적임자로 낙점했다고 분석했다.
"정권 존재 자체가 인류에 대한 모욕"...'脫아베' 놓고 혼란정국 지속 전망
29일 밤 자민당 집행부가 오는 9월 13~15일경 정식 당원 투표가 아닌 약식 의원총회를 진행하기로 한 것도 스가 장관에게는 유리하다. 당내 현역 의원과 각 지역 대표만 참가하는 약식선거는 의회 내 파벌 기반이 취약한 후보에게는 불리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당내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이 '민주주의'를 언급한 것은 그동안 쌓아온 '반아베' 혹은 '아베 대항마' 이미지를 더욱 견고히 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본격적 판갈이가 시작되는 내년 10월 중의원 총선을 전후해 아베 심판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실제 아베 총리 사임 뒤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아베 비판론이 쏟아지고 있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매체는 아베 정권이 지난 8년 동안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정권을 사유화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사히신문은 29일 사설에서 "'아베 1강'(强)이 오래 이어지는 동안 자민당 내에서 활달한 논의가 완전히 상실됐다"면서 "깊은 상처를 입은 일본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지적한 데 이어, 30일에도 아베 총리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시라이 사토시 교토세이카 대학 정치학 교수의 기고문을 실었다.
시라이 교수는 "아베 내각의 진짜 실책은 장기 정권 동안 '공정'과 '정의' 등 사회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필수적 이념을 저버린 것"이라면서 "아베 정권 8년은 일본 역사상 오점이자 존재 자체가 인류에 대한 모욕"이라고까지 비난했다. 또 "일본 사회의 재출발은 공정과 정의의 이념 부활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아베 정권의 불법·탈법 행위의 규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사설을 통해 "아베 정치의 폐해는 민주주의를 왜곡한 깊은 죄과를 남겼다"면서 "오랜 기간 권력을 유지하는 것엔 성공했지만, 정권 내외부에 부정적 유산을 쌓아 올렸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29일 "내각이 인사권을 장악하자 자민당에는 정권에 대한 아첨과 눈치 보기가 만연했다"고 꼬집은 데 이어 30일에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합심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지도자의 역할임에도 아베 정권은 국민의 갈등을 부추기고 분단시키는 수법만을 이어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민당에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회복하기 위해 총재 선거 전 아베 정치의 어떤 점을 계승할지 명확하게 판가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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