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도 따라 배우는 창사 부동산대책
지난 7월 10일, 선전시 주택건설국 시찰단이 창사를 방문했다. 창사시 주택건설국은 선전시 시찰단이 현지 부동산 규제 정책과 부동산 시장 관리감독 업무 효율성, 그리고 부동산 대책 노하우를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닷새 후인 15일 선전시는 부동산 규제책, 이른바 '7·15 대책'을 내놓았다.
여기엔 외지인 구매 제한 강화, 주택 구매 선불금 납부 비율 인상, 이혼자 주택구매 요건 강화, 세제 혜택 축소 등 내용이 포함됐다. 선전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경제주간은 "선전시 7·15 대책은 창사 부동산 정책을 모방했다"고 전했다.
사실 올 들어 선전시 부동산 시장엔 광풍이 불었다. 집값이 지난 5월까지 1년 새 12% 올랐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가격을 집계하는 70개 주요 도시 가운데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6월 선전 시내 한 신축 아파트 단지 394가구 분양 청약엔 약 9000명이 몰리기도 했다.
선전뿐만이 아니다. 이어 광둥성 둥관, 저장성 항저우, 허난성 정저우, 장쑤성 난징 등에서도 잇따라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았는데, 창사시가 2년 전 내놓은 부동산 대책과 흡사하거나 한층 '업그레이드'된 내용이었다.
◆"부동산 투기와의 투쟁" 선언한 창사
사실 2018년까지만 해도 창사시 집값도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날뛰었다. 당시 창사시 신규 아파트 분양 물량은 몇 초만에 동이 나기도 했다. 인기 아파트 단지의 경우, 주택을 구매하려면 건설업체에 추가로 웃돈을 얹어줬는데, 그 액수가 1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최고 1700만원에 달했을 정도다.
이듬해 6월 창사시 관영 후난일보는 잇따라 4편의 평론을 게재해 창사시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평론은 "집값 고공행진으로 투기가 성행한다. 서민들의 불만이 가득하다"며 "이는 부동산 정책의 허점을 드러내고, 사실상 서민들의 수요와 괴리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이때부터 사실상 '부동산 투기와의 투쟁'을 선언한 창사시는 매매 제한, 땅값 제한, 위장이혼 규제, 토지 양도 추첨제 등 온갖 규제책을 쏟아냈다.
강도 높은 매매 제한령이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 외지인은 만 1년 이상 창사에 거주하며 안정적 일자리를 보유하고 24개월치 사회보험료를 납부한 전력이 있어야만 비로소 주택 1채 구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주택을 구매한 후에도 4년간 팔지 못하게 막았다. 또 2주택 구매는 1주택 구매 후 만 4년이 지나야 가능하도록 했다. 2주택을 구매한 후에는 취득세(4%)도 납부해야 한다.
위장이혼을 통해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행위도 엄격히 금지했다. 이혼 후 만 2년 이내 부부 한 쪽이 주택을 구매하면 이혼 전 매입한 주택을 1주택으로 간주하는 방식으로다.
이 밖에 건설업체들이 아파트 분양으로 남길 수 있는 이윤은 6~8%로 제한했다. 지난해 중국 부동산 상장회사의 평균 마진율인 11.3%를 밑도는 수준이다.
대신 택지 공급량은 대폭 늘려 주택 공급에 힘썼다. 창사시의 지난해 토지 공급량은 2655만㎡로, 전년 대비 50% 이상 늘어난 수준이었다.
◆소득보다 낮은 집값 상승률··· '살기 좋은 도시' 꼽혀
창사시 부동산 규제책은 뚜렷한 효과를 발휘했다. 실제로 창사시 집값은 다른 비슷한 경제력 수준의 도시와 비교하면 저렴하다.
중국지수연구원에 따르면 8월 창사시 신규 주택 분양가는 8798위안으로, 주요 20개 도시 중 가장 낮았다. 인근에 위치한 우한(1만2812위안), 충칭(1만1126위안) 등과 비교해봐도 훨씬 낮다. 베이징(4만3014위안), 선전(5만4739위안), 상하이(4만9716위안)의 4분의1도 채 안 된다.
게다가 올 들어 1~5월 창사시 후커우 주민이 현지 주택 구매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후난성 다른 도시 주민이 26%, 타성 출신 외지인 비율은 3%에 불과하다. 생애 첫 주택 구매자 비율은 82%다. 현지 언론들은 "투기꾼이 창사시에 발을 들이기 힘들다"고 표현했다.
앞서 3월 중국 이쥐연구원이 50개 주요 도시 소득(가처분소득) 대비 집값 비율 조사 결과, 창사가 6.4배로 가장 낮았다. 현재 소득을 6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선전은 가장 높은 무려 35.2배였다. 창사는 주민 소득 증가율이 집값 상승률을 훨씬 웃돌고 있다. 지난해 창사시 주민 1인당 가처분소득은 8.7% 오른 반면, 같은 기간 주택 매매가는 3.6% 하락한 것이다.
덕분에 창사는 중국 내 신(新) 1선도시(청두·충칭·항저우·우한·시안·톈진·쑤저우·난징·정저우·창사·둥관·선양·칭다오·허페이·포산) 중에서 유일하게 '거주 친화형 도시'로 선정됐다. 신 1선도시란 이미 포화상태가 된 1선도시(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와 비교해 성장 속도가 빠르고 소비력이 막강한 도시들을 일컫는 말이다.
집값이 낮다는 게 창사시 경제가 '정체'돼 있기 때문이 아니란 얘기다. 2017년 이미 GDP '1조 위안 클럽' 대열에 합류한 창사의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8.1%로, 전국 평균 수준을 웃돌았다. 창사시 전체 소비액은 지난해 5247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10% 늘었다.
창사시의 안정적인 집값 흐름은 지역 경제 발전과 우수 인재를 흡수하는 데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물론 일각에선 창사시가 시장을 통한 방식이 아닌 행정 규제로 인위적으로 집값을 억눌렀다며, 과연 이런 규제책의 약발이 얼마나 갈지, 장기적으로 효과가 이어질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 다른 부작용도 있다. 중국 대다수 지방정부는 토지 세수에 의존한다. 창사시는 집값을 낮추기 위해 저가에 토지를 공급하는데, 당연히 토지 재정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다. 대신 지방채를 더 많이 발행해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지방채무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혁명의 도시'에서 중부굴기 중심지로··· '1조 위안' GDP 대열 합류
창사시는 중국 남동부에 위치한 후난성 성도다. 모래가 길게 분포돼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땅이 척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사는 '혁명의 고장'으로 대륙에서 유명하다. 마오쩌둥을 비롯해 류샤오치(劉少奇), 펑더화이(彭德懷), 리리싼(李立三), 차이허썬(蔡和森) 등을 배출했다.
마오쩌둥에겐 이곳이 '정치적 고향'이나 다름없다. 마오가 태어난 곳은 후난성 사오산(韶山)이지만, 그는 창사 제1사범대에서 수학하고 이후 창사 초·중학교 역사 교사로 근무했다. 첫째 아내 양카이후이(楊開慧)와 신혼살림을 꾸렸던 곳도 창사였다.
마오쩌둥이 1927년 9월 후난성 창사에서 농민들을 모아 봉기를 일으켰다가 실패한 곳이기도 하다. 훗날 문화대혁명 말기인 1974년 마오가 덩샤오핑(鄧小平)의 복권을 결정한 ‘창사결책’ 역시 바로 이곳에서 이뤄졌다.
신중국 설립 후 창사는 중국 내륙지역에 위치한 탓에 개혁·개방 이후 동부 연해지역에 비해 발전이 더뎠다. 창사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중국 당국이 중부내륙 지역 발전을 위한 '중부굴기' 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다. 창사시의 지난해 상주인구는 840만명이고, 지역 GDP는 1조1574억2200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8.1% 증가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숙하다. 특히 장자제(張家界)를 가기 위해 들르는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재지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반대파에 의해 저격을 당했던 곳, 2005년 드라마 ‘대장금’을 중국 내에서 가장 먼저 수입해 방영한 이후 중국판 '아내의 유혹', '아빠 어디가', '나는 가수다' 등을 잇따라 제작 방영한 후난위성TV가 소재한 한류 메카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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