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서 일병의 휴가' 특권인가, 건강권인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오후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 주요 현안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에 도착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검찰 개혁을 추진하고 검찰총장 옥죄기를 하면서 법무부 장관은 야당의 집중 포화와 언론의 조명을 받는 자리가 됐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딸의 대학입학과 관련한 문제로 35일 만에 장관을 그만뒀고, 부인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경우는 국회에서 “소설을 쓰시네” 같은 답변 태도와 거침없는 검찰 인사로 더욱 주목을 끄는 것 같다. 과거에는 공직 후보자와 그의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은 것을 두고 주로 논란이 벌어졌는데, 여성 장관의 아들이 군 생활 중에 받은 휴가를 놓고 특혜 논란이 빚어진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23일의 휴가가 과연 ‘엄마 찬스’의 특혜에 해당하는 것인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 일병의 건강 상태가 어땠는지 팩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다음으로 휴가가 관련 법규대로 시행됐느냐를 따져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이 정쟁화하다 보니 특혜 시비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몸이 아픈 사병의 건강권과 인권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끌고 있다.

서 일병은 2017년 당시 부대에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1차 병가(6월 5~14일), 2차 병가(15~23일)와 정기휴가(24~27일)를 23일 연속으로 썼다. 카투사(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로 근무하는 서씨는 휴가 기간에 삼성서울병원에서 무릎 수술을 받았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발급한 진단서는 무릎 추벽증후군(皺襞症候群)과 연골연화증으로 3개월간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추벽증후군은 무릎 관절 안에 막(추벽)이 생겨 주변 연골과 닿으면서 통증을 느끼는 병이다. 그로 인해 연골에 미세한 상처가 난 것이 연골연화증이다. 서 일병은 추벽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추벽 증후군에 대해서는 “동네 정형외과에서도 할 수 있는 경미한 수술”이라거나 “삼성서울병원을 압수수색하지 않아 수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식의 보도가 나온다. ‘경미한 병’을 갖고 23일이라는 긴 휴가를 받은 것은 소위 ‘엄마 찬스’의 특혜라는 시각에서 쓴 기사나 댓글들이 주류를 이룬다. 

병가(病暇)는 증상과 치료기간 살펴봐야 

그러나 서울에서 정형외과 병원을 운영하는 모 원장은 “우리 병원도 진단서를 끊어줄 때 병원과 의사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면서 “삼성서울병원 같은 대학병원에서 발급한 진단서는 신뢰도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실명으로 코멘트를 해달라는 요구에 “서 일병 사건이 정쟁화한 마당에 의사로서 공연한 시비에 휘말리기 싫다”고 고사하면서도 의사로서의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전했다.

“추벽증후군은 걸으면 통증이 생기기 때문에 군대 생활이 힘들다. 카투사도 군대 아닌가. 완치까지는 몇 달 걸릴 수도 있다. 연골연화증을 가진 학생들이 방학 한달 동안 통 깁스를 하고 치료를 받는 사례도 있다. 병증에 따라서는 치료를 위한 23일의 휴가가 결코 길다고 볼 수 없다.”

서 일병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나서 휴가를 2차에 걸쳐 연장했다. 귀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화를 통한 휴가 연장 신청이 가능하냐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다. 일부 언론은 휴가 후 귀대가 몇분 늦어 영창에 간 사례를 들며 특혜임을 부각시켰지만 2020년 군대를 쌍팔년도 군대 문화로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사병이 휴대전화를 갖고 군대 생활을 하는 시대다.

신병훈련이 끝난 카투사들 중에 집이 서울인 사병들은 외박을 나오면 집에서 잘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용산에 배치되기를 바랄 것이다. 카투사 중에서 평창올림픽 통역병 지원자도 많았던 모양이다. 군생활을 하면서 올림픽도 구경하고 외국 선수단이나 관광객들과 영어로 대화할 기회를 가지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로망이었을 것이다.

청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 일병은 결과적으로 용산에도 배치되지 않았고 평창올림픽 통역병도 되지 못했다. 평창올림픽 카투사 통역병은 공개적으로 추첨을 했고 용산 배치는 부대 분류 규정에 걸려 안 된 모양이다. 엄마가 누구인지 부대 안에 다 알려져 예외적으로 봐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주한미8군 지원단장이었던 이철원 예비역 대령의 입장문을 읽어보면 서 일병은 군복무 당시 집권여당 대표의 아들이어서 입대 때부터 부대원들의 관심을 끌었음을 알 수 있다.

 물고뜯기 멈추고 코로나 경제위기에 올인할 때 

내가 군대 생활하던 1970년대에는 구타와 인권유린이 횡행했고 그 틈에서 ‘아빠 찬스’를 살려 구타가 없는 부대로 옮겨가거나 좋은 보직을 받는 사병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고, 문제 삼을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이번에 서 일병의 휴가가 불거진 것은 그만큼 군대 문화가 달라졌고 병사들의 평등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 때’는 외아들은 군에 오지도 않고 동사무소에서 방위 근무를 했다. 요즘은 병력자원의 절대다수가 외아들이다. 군에서 구타나 총기사고가 생기면 부모들의 마음이 철렁한다. 애지중지하던 자식이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기까지 애로사항이 생기면 해결해주고 싶은 것은 보통 부모들의 마음이다. 국방부에 부모들의 민원을 접수하는 전화가 생긴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서 일병 부모가 부대 배치나 통역병 선발 같은 민원은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설사 민원을 했더라도 실현되지 않은 민원에 대해 특임검사를 임명하고 특검까지 갈 일인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궁금증이 커질 대로 커진 마당에 이대로 덮고 가기는 어렵다. 삼성병원의 진단서가 제대로 된 것인지, 법규대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휴가가 처리됐는지, 전화휴가 신청도 가능한 것인지··· 진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추 장관은 13일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아들은 두 다리를 수술 받고 완치가 안된 상태에서 부대로 복귀했다"며 "검찰 수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당당함을 내비쳤다. 추 장관의 말대로 이제 검찰이 진실을 밝히면 된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요구한 내부고발자들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파론이나 음모론의 시각으로 몰고 가는 것도 도리에 맞는 태도는 아니다. 코로나19와 경기 하강, 일자리 감소가 겹친 국가적 위기에서 내편 네편 갈라서 물고 뜯기에 바쁜 정치인들은 제발 정신 차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