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우리 정부의 대북협력 제안은 최근 3타수 무안타를 기록 중이다. 4월에 코로나 방역지원, 9월 2일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 1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의 대화복귀와 협력제안에 북한은 모두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8월에 입었을 북한의 태풍과 수해 피해에 대한 우리 측의 지원 제안을 미리 알기라도 하듯 김정은 위원장은 모든 외부의 지원을 거부하는 선수를 쳤다. 이런 남북교착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7월에 대북인사라인을 대폭 교체했다.
포부에 찬 통일부장관은 연속해서 헛발질 중이다. 7월 27일에 부임하면서 북한의 대동강 맥주와 남한의 쌀·설탕을 ‘물물교환’ 방식으로 교류의 물꼬를 처음에 틀려고 했다. 아뿔싸, 그런데 이것이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뒤늦게(8월 24일) 알게 되면서 철회한다. 그러자 다른 방도를 모색한다. 28일에는 또 제재에 저촉하는 북한의 개별관광 방안을 들고 나왔다. 여의치 않자 9월 7일에 인도주의 교류로 선회했다. 대북관계 개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집요함이 역력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런 정부의 집요함을 여기저기서 부추기고 있다. 진보학자들은 ‘햇볕정책 2.0’ 운운하고 있고, 정계에서는 북한에 비공개 특사 파견을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관공서별로는 북한과의 경협사업을 경쟁하듯 내놓고 있다. 한국 국민이라면 누가 대북관계 개선을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통일부장관이 청문회에서 언급했듯 ‘대북제재와 관련해 창의적 해법’을 아무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난국에 봉착한 상황에 대한 그의 짜증 섞인 비현실적 발언으로 한국 외교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7일 ‘한반도국제평화포럼’ 개회사에서 통일부장관은 “평화 번영과 한반도를 향한 통일부의 의지는 분명하고 견고하며, 두꺼운 얼음을 깨고 항로를 열어가는 쇄빙선과 같은 태도와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단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졌지만 평화는 노력 없이 오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남북이 주도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작은 교역’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겠다는 열의를 밝혔다.
더 나아가 그는 9월 2일 한·미동맹이 냉전의 산물이라며 평화동맹으로 전환하자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과 같은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이에 덧붙여 “한반도 정세를 변화시키기 위해 북·미 관계는 북·미 관계대로 풀더라도 남북관계는 남북관계대로 풀자”면서 북·미와 남북의 노력을 양분화시켰다. 이 정부가 ‘민족끼리’의 방식에 집착하는 방증이다.
이런 그의 발언은 상당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날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으로 입증됐다.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한·미동맹의 근간이 훼손돼선 안 된다는 게 우리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파견된 신임 외교부 1차관은 12일에 양국의 국장급 실무대화채널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남북관계 개선에 장애가 되는 한·미대화의 수준을 워킹그룹의 것보다 잠정적으로 더 낮추자는(국장급 협의체)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대북제재 완화와 관련하여 아직도 이처럼 비현실적인 발언을 계속 해대는지 국민은 답답하다. 그 답답함은 북한 주민의 경제적 고난과 고충을 해결하려는 데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북한 정권과 당국과의 접촉에만 몰입하는 양상을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다. 북한 주민을 생각한다면 북한 인권법을 국내외에서 지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북한 주민을 생각한다면 국제기관과의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 대북제재의 상황에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차선책이다. 지난 8월 6일 세계식량계획(WFP)에 1000만 달러(약 119억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게 고작이다.
대북제재의 완화문제는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된다. 제재의 일시적인 중단이든 해제든 모두 비핵화가 완성되어야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유엔의 제재 결의안에서 금지하는 모든 사안을 북한이 충족시켰을 때만 제재의 중단이나 해제가 가능하다. 미국의 제재안 역시 북한의 비핵화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혹은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가 이뤄졌다고 판단될 경우 중단이나 해제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입법되었다.
유엔의 제재는 사안별로 제정된 것이 특징이다.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었던 2006년부터 채택된 유엔의 제재 결의안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관련된 것이다. 사안별로 북한이 제재 이유와 관련된 행동을 자제하면 중단이나 해제가 가능하다. 가령, 미사일 개발을 위한 부품의 수입이나 밀수 행위를 자제하고 그런 기록이 없다고 증명하면 된다. 핵개발과 관련된 제재안 역시 마찬가지다. 어려운 점은 유엔의 관련기관으로부터 사찰과 검증을 받아 확인시켜줄 의지가 북한에 있느냐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핵과 관련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검증을 1990년대부터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는 더 복잡하다. 미국은 250건이 넘는 대북제재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상위법으로는 몇 개만 존재한다. 따라서 이 상위법의 요구를 북한이 충족시키는 것이 ‘고디언의 매듭’을 푸는 방법이다. 가령, 2019년 12월에 입법화된 ‘2020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Fiscal Year 2020)’에서도 이는 명시되었다. 동 법안 7134조 (1)항의 (A)절에서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의 실험과 확산을 입증하고, WMD와 미사일의 영구적인 제약을 검증하기 위한 다자대화에 북한이 임하기로 결정하면 제재의 중단이나 해제가 대통령의 보장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조건의 구체적인 내용과 의미는 2016년에 통과된 ‘북한 제재와 정책 강화법 (North Korea Sanctions and Policy Enhancement Act of 2016)’의 401조와 402조에 예속된다. 401조는 제재의 한시적(1년) 중단의 조건을 제시한다. 미국 달러의 위조지폐 생산이나 이와 관련된 기술과 장비를 모두 양도해야 한다. 돈세탁 방지를 위한 모든 법과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유엔 결의안에서 정의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또한 북한에 불법 납치·나포된 외국 인질이 석방되어야 한다. 또한 국제원조의 배분과 관찰 절차가 국제 수준에 준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범수용소의 환경 개선이 입증되어야 한다. 이들 요건을 충족시킬 때 제재가 1년간 중단될 수 있다.
대북제재의 해제는 402조에 명시되어 있다. 동 조항에 따르면 401조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동 법안이 제정한 비핵화의 요구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CVID 수준의 비핵화가 우선이다. 그리고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는 것이다. 평화적인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검열이 없어야 한다. 개방적이고 투명한 사회가 확립되어야 한다. 나포된 미국인뿐 아니라 모든 외국인이 석방되어야 한다. 이들은 1953년 정전협정을 위반한 북한의 나포행위로 인한 나포자들까지 포함한다. 이 모든 것이 충족되면 미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안을 의회에 제출할 수 있다. 미 의회가 비준하면 제재는 해제된다.
인도주의 차원에서도 제재에 저촉되는 사안에 대한 예외 요청을 신청해야 한다. 단, 이런 지원 사업이 공인된 국제기관을 통해서라면 요청을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지원물품이 제재조치에 저촉될 경우 미 의회나 유엔에 예외 신청을 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남북한에 주어진 전략 선택은 두 가지다. 첫째는 미국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일시적인 제재의 중단을 원한다면, 북한이 불법적인 경제활동을 자제하는 것이다. 제재의 해제를 원하면, 북한의 비핵화다. 단,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와 일본의 납치자 문제 해결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둘째는 유엔의 제재를 사안별로 노리는 것이다. 유엔의 제재가 사안별로 조건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단계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문제는 어느 것을 선택해도 북한에 어려운 선택이다. 사찰과 검증을 위한 이들에 대한 개방과 협력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런 선택지가 남북대화의 의제로 상정되어야 한다. 이의 해결을 견인해야 비로소 진정한 ‘중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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