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미국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부 주(州)에서 조기투표가 이미 시작되었고, 우편투표도 발송되면서 선거판이 달아오르고 있다. 일주일 후면 이번 선거의 최대 분수령이 될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의 첫번째 TV토론이 진행된다. 연초만 해도 미국 경제가 2010년 이후 최대 호황을 누리면서 트럼프의 재선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코로나19로 미국 경제가 침체의 수렁으로 추락하지 않았다면 트럼프가 지금처럼 수세에 몰리기보다는 자신의 화려한 경제 치적을 뽐내면서 승리 굳히기에 돌입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기업들이 일하기 좋은 방향으로 규제를 정비하고 법인세를 7% 포인트 인하하는 등 친기업적 행보로 기업인들을 저절로 춤추게 만들었다. 바이든 후보는 자신이 승리하면 대통령 취임 첫날에 2017년 개정된 세법을 폐지하여 원점으로 돌릴 것이라고 했다. 대신 기업과 부자들로부터 더 걷힌 세금을 의료보험과 교육비 등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 확대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의 선거전략은 바이든을 '사회주의자', '급진좌파'로 몰아 그로부터 중도층을 분리시키려는 것이다. 바이든은 민주당 내 대표적인 온건 중도파로 알려져 있는데, 트럼프의 선거전략이 먹힐지는 미지수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미국 사회에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엄청나다. 특히 일자리를 잃어버린 저소득층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 민주당 진보세력은 바이든 후보가 좀 더 '좌(左)클릭'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 후보가 진보층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다 보면 중도층 유권자의 이탈이 우려된다. 바이든이 백악관에 입성하려면 극복해야 할 최대 딜레마이다.
미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보수주의, 작은 정부, 그리고 감세정책과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한 선거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민주당은 진보성향으로 가급적 정부가 시장 개입에 나서거나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고 친환경·친노동 정책을 펼치려고 한다. 공화당인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때문에 의도치 않게 올해 전대미문의 막대한 재정을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리하여 내년엔 미국의 부채가 70년 만에 처음으로 GDP 대비 100%를 넘어 104.4%에 이를 전망이다(미 의회예산국 '예산전망 2020~30년 수정전망, 9월 2일 발표). 나랏빚이 버는 돈보다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코로나 백신이 연말이나 내년 초에 나온다 해도 미국 경제는 급격한 경제 회복보다는 상당기간 재정적자 폭증과 양극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리하여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새 정부는 진정한 경기 회복을 위해선 장기간에 걸쳐 힘든 싸움이 불가피해 보인다.
경제살리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막 승리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방송이 공동조사한 여론조사(13~16일, 유권자 1000명) 결과를 보면 바이든 후보가 51%의 지지율로 트럼프(43%)를 8% 포인트 앞섰다. 현재 유권자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선거 이슈로는 경제가 40%로 가장 많이 꼽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정직성과 신뢰도 등 대선후보의 인물에 대한 평가나 코로나 방역과 헬스케어 등 각종 정책평가에서 바이든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캠프가 초조해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경제역량 분야에서는 트럼프가 바이든 후보보다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문제에 민감한 북동부 오대호 주변의 러스트 벨트(쇠락한 제조업지대) 등 주요 경합주에서 트럼프의 최근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바이든이 '트럼프 경제 치적 지우기'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트럼프의 잘못된 대응으로 수많은 사업장이 문을 닫고 실업률이 치솟는 등 경제적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코로나 이후 미국 경제 재건의 적임자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미국 경제에 남긴 상처는 엄청나다. 그 상처는 팬데믹이 잠잠해져도 쉽게 아물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후보 수락연설에서 바이든이 미 대공황 시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언급한 것을 보면 코로나19 위기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항공산업은 급격히 줄어든 여객 수요로, 석유 생산업체는 유가 하락으로 파산 직전이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면서 사무실 건물과 대형 쇼핑몰 건설은 중단되고 있다. 출퇴근 등 이동수요가 줄면서 자동차 판매는 감소하고 디지털 장비가 급속히 인간노동력을 대체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 경제가 앞으로 수출이나 투자, 내구 소비재 판매 등 전통적인 경기 진작책으로 회복되긴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일자리가 늘어난 분야는 제조업 생산 분야가 아니고 대부분 음식점이나 커피숍, 마사지, 미용업 등 서비스 분야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 같은 서비스 분야 종사자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겼다. 팬데믹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전처럼 음식점이나 콘서트홀이 사람들로 가득 차진 못할 것이다. 일자리 회복이 늦어지면서 저소득층은 밀린 집세와 공과금에 시름만 깊어질 것이다.
여론 조사를 보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응이 미국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점은 민주당 캠프엔 부담이다. 트럼프는 최근 미국 경제의 반등세가 뚜렷해지고 있음을 강조하며, 자신이 집권하면 내년도 미국 경제는 역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성적을 낼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이든이 집권하면 세금을 올리고 규제를 늘리면서 기업은 수익이 악화되고 미국의 자본주의가 위협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경제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또 동시에 외부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타깃(target)이 될 수 있다. 코로나 여파로 2분기 미 GDP 성장률(연율 환산 전분기 대비)은 -32.9%로 73년 만의 최악을 기록했다. 또 지난 3월까지 완전 고용에 가깝던 실업률은 4월 한달에만 20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미국에서 앞서 10년 동안 창출된 일자리가 불과 한달 만에 증발된 셈이다. 연방정부와 의회는 코로나 확산이 본격화한 3월 초부터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2조9000억 달러(약 3370조원)가 넘는 긴급 재정지원금을 살포했다.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 경제 회복을 위해 마련된 지원책을 훨씬 웃도는 미국에서도 전례가 없는 최대치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이미 5월 중순에 3조4000억 달러(약 3950조원)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5차 지원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연방 재정적자 폭증을 우려하며 1조 달러 정도를 고집하고 있다. 대선 전까지 코로나19 추가지원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 지명을 놓고 대립이 격화되면서 추가부양책에 대한 양당의 정책 협조는 물 건너 간 모습이다.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3분기 미국 GDP는 전분기 대비 플러스 성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실업률은 수개월 동안 두 자릿수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가 지난 8월 일자리가 140만개 늘어나면서 8.4%를 기록했다. 트럼프는 8월 실업률이 한 자릿수대로 내려간 것을 두고 미국 경제의 'V자' 회복 신호라고 강조했다. 반면 바이든 캠프는 미국 경제 회복이 상위층에 국한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며 'K자' 회복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가 급락한 가운데 애플과 아마존, 페이스북 등 IT 대기업들은 대규모 흑자를 내고 주식과 고임금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의 재산은 빠르게 증가한 반면, 중소사업 운영자나 판매원 또는 현장 육체노동자들의 소득은 더욱 악화되는 양극화 현상을 결코 진정한 경제회복이라 할 수 없다며 트럼프의 경제성적표 '깎아내리기'에 나서고 있다. 바이든의 고민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민주당 내 좌파 끌어안기이다. 그는 민주당 후보 경쟁에 나섰던 좌파진영 대표 격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손잡았다. 그러나 큰 정부를 지향하는 좌파 정책을 도입할수록 ‘바이든=사회주의자’라는 프레임이 강해지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바이든과 샌더스의 정책 태스크포스팀은 한달여간의 논의 끝에 민주당의 주요 선거공약을 정리해 공개했다. 샌더스가 내세웠던 가장 진보적이었던 정책들, 특히 시장에 충격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였던 정책들, 예를 들어 '전 국민 보험 구상(Medicare for All)'이나 전액 학자금 면제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온건 중도파인 바이든이 '좌클릭'한 흔적도 상당히 엿보인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오는 29일 첫 대선 토론회를 시작으로 대선 전까지 3차례 격돌한다. 두 후보가 그동안 공개적으로 표명한 주요 경제정책을 살펴보자. 먼저 세제 정책에서 입장차이가 두드러진다. 트럼프는 이미 자신이 많이 내린 법인세율을 현 21%에서 20%로 더 낮추겠다고 하고 있다. 세금 덜 내게 해줄 테니, 기업들은 그 돈으로 투자 많이 하고 일자리 늘려서 국가 경제 좀 빨리 살려내라는 얘기다. 또 에너지·금융·농업 등 산업 전반에 걸친 규제 완화 정책을 확대할 예정이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연간 소득 4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핀셋 증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행 21%인 법인세를 28%로 다시 인상하고 개인소득 현행 최고 세율을 37%에서 39.6%로 되돌리겠다는 계획이다. 노동자 최저임금을 7.5달러에서 15달러로 두 배 올리고, 중산층 일자리를 500만개 만들어 전 계층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달라는 얘기다. 바이든의 증세 구상은 향후 10년간 수조 달러의 세수증가를 의미하지만, 중산층이 아닌 상위 1% 고소득자가 증가분 대부분을 부담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재정·경제 분야의 중립적 싱크탱크인 ‘책임 있는 연방 예산 위원회(CRFB)'는 바이든 후보가 집권하면 상위 20% 소득자의 세금이 2.3~5.7%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또 상위 1% 소득자는 13.0~17.8%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헬스케어 정책을 보면 양당의 정치적 지향점이 크게 차이난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후보는 환자보호 및 부담적 정보험법(PPACA: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소위 '오바마 케어'의 주도자 중 한명이었다.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가 폐기한 '오바마 케어'를 확대해 전 국가적인 의료보험 시스템 구축을 약속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가 기업 및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재정부담을 가중시킨다며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케어를 폐기한 대신 적극적인 약가 인하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교육분야에 있어서는 바이든 후보는 연소득 12만5000달러 이하 가정의 학생들에게 무료학비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의 세율 인상과 헬스케어, 교육분야의 공약이 향후 10년간 세수를 3조3750억 달러(약 3925조원) 증대시키고 연방지출은 5조3500억 달러(약 6222조원) 늘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바이든 후보는 기후 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미 서부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는 사상 최악의 산불 사태를 두고 "트럼프는 기후 방화범"이라며 이번 대선의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산불의 원인이 기후 변화가 아니고 "산림 관리"라고 응수하고 있다. 바이든은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다시 가입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2조 달러(약 2326조원) 규모의 ‘그린 뉴딜’ 카드를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달리 환경문제 등에 관한 국제사회 공조를 강조한 셈이다. 그러면서 바이든 후보는 친환경 정책이 100만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 달성을 목표로 대중교통의 청정연료 전환, 친환경 에너지 주택 150만채 공급, 친환경 연료 자동차 보급 확대, 태양열 및 풍력 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 확대 등을 약속했다.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하면 관세전쟁과 중국 기업 제재로 중국 압박을 이어갈 태세이다. 또 도로, 철도 등 인프라 재건과 '세계 최고의 5G 통신망 인프라 구축'을 내세우고 있다.
갤럽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보수파’라고 답한 미국인은 37%, 좌파는 24%, 그 중간인 온건파는 35%였다. 트럼프는 기독교 보수파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2016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애시당초 오른쪽만 쳐다보며 좌파와의 대결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바이든은 좌파와 온건파 지지를 모두 얻으려고 한다. 그의 지지자 중에는 급진적 포퓰리즘 정책을 부르짖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극도의 경계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많다. 지지층 결집력 면에서 보면 바이든에게 불리한 싸움이다. 그에게 다행인 것은 지금 미국 경제가 좋은 상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고 자신은 코로나를 잘 통제하고 미국을 좀 더 안전하고 부강한 국가로 이끌 수 있는 적임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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