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구하기" vs "남북관계 개선 계기"...김정은 사과에 극명히 갈리는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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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기자
입력 2020-09-2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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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군, 한국민 피격 사건 발생 이틀 만에

  • 김정은 "文·남녘 동포들에게 대단히 미안"

  • "남북공동조사·유가족 현장방문 추진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에서 총격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우리 측에 공식 사과한 25일 연평도 인근 북한 해역에서 중국 어선이 조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25일 한국민 피격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살얼음판을 걷던 남북 관계가 대반전을 맞았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민에게 "미안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두고 그간 냉랭했던 남북 관계를 개선시킬 모멘텀이라는 낙관적 분석이 나오는 한편, 김 위원장의 사과는 북·미 협상 재개 시 남측을 활용하기 위한 차원일 뿐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평가도 제기된다.

◆김정은 "文·남녘 동포들에 대단히 미안"

청와대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오전 한국 측에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고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 피격 사건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김 위원장의 사과가 담긴 북측 통지문 전문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 21일 오전 서해 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A씨는 하루 뒤인 22일 오후 북한군으로부터 총격을 당한 뒤 시신이 훼손된 것으로 파악됐다.

북측이 보낸 통지문에는 김 위원장의 사과와 함께 피격이 발생한 경위에 대한 설명과 재발 방지 약속도 담겼다.

이와 관련,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평가하며 "(북한이) 신속하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두 번씩이나 사용하면서 입장을 발표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북측은 이번 통지문에서 피격 사건 발생 경위를 설명하며 A씨에 총기를 발포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시신 훼손 부분에 대해선 부인했다.

북측은 "우리 군인들이 정장의 결심 밑에 10여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 이때 거리는 40∼50m였다고 한다"며 "사격 후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어 10여m까지 접근해 확인 수색했으나, 정체불명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다. (대신)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됐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우리 군인들은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했고,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했다고 평가했다"며 "이 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상경계감시 근무를 강화하며, 단속 과정의 사소한 실수나 큰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일이 없도록 해상에서 단속 취급 전 과정을 수록하는 체계를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남북관계 개선 전기 삼아야" vs "文구하기"

북한이 이례적으로 신속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뜻을 밝혀왔다는 점에서 정부가 이번 사건을 향후 남북 관계 개선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남북 관계가 지금까지 경색됐지만 (북측이 보내온 전통문에) 미안한 마음이 담겼다는 점에서 남북 관계를 개선할 틈새가 생겼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의 반응이 이례적으로 빠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정부가 이번 사건을 근거로 북한과 군사합의를 맺는다든지 남북 관계를 복원,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국내 여론이 부정적인 만큼 당장의 남북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 교수는 "국민 정서에 있어서 완전히 폭발적인 사건"이라며 "북한도 다급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역시 "(이번 피격 사건은) 지난 한반도 70여년 역사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악의 사건"이라며 "종전선언이든 뭐든 당장은 여론 때문에 남북 관계에서 진전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 교수는 또 김 위원장의 전격적인 사과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 구하기'라고 규정했다.

그는 "(피격 사건에) 남측 여론이 극도로 나빠지니 북한이 놀란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보조자로 수행하게 하는데 이렇게 두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자체가 끝장날 위기였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A씨 피격 사건 경위에 대한 남북 간 주장이 어긋난다는 점에서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는 관측도 있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남측은 시신 훼손을 주장하는 반면 북측은 부유물을 소각했다고 주장해 대립되는 쟁점이 있다"며 "부유물 논란으로 남남 갈등 논란에 휩싸일 때가 아니고 단결된 여론으로 남북 관계를 다시 주도할 때"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피격 사건에 대한 남북공동조사와 유가족 현장방문, 해상장례 등을 제안하며 "남북 협조를 통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이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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