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텔레뮤지엄에서 제공하는 통신 사료체험 중 하나. PC통신 서비스 하이텔에 접속해 채팅을 즐길 수 있다. [사진=KT 텔레뮤지엄 화면 갈무리]
허리춤에 차고 있던 삐삐가 울려 액정화면에 '1010486'이라는 번호가 뜬다. '열렬히 사랑해'라는 뜻을 담은 숫자다. 당장 연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찾아간 근처 공중전화 부스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통신이 개통되기 전인 130여년 전엔 누군가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듣는 것은 신기하고 귀한 일이었다.
KT가 통신역사를 담은 온라인 전시관인 KT 텔레뮤지엄(KT Tele Museum)을 개관했다고 4일 밝혔다. KT 텔레뮤지엄은 KT가 소장한 6000여 점의 통신 사료를 온라인에서 해설가의 설명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온라인 전시관이다.
한국의 통신은 대한제국 시절 고종에 의해 열렸다. 국내 첫 전화 가입자와 첫 통화자도 모두 고종황제다. 1885년 문을 연 한성전보총국은 횃불로 소식을 전하던 조선 시대 방식의 통신이 전기통신으로 바뀌는 시작점이 됐다. 고종은 정해진 시간마다 신하들에게 전화를 걸어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 신하는 의관을 정제하고 네 번의 큰절을 올린 다음 전화기를 두 손으로 공손히 들고 고종과 통화했다고 한다.
전화가 없었다면 한국의 근현대사가 뒤바뀌었을 법한 일도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따르면 고종은 인천 감리에게 전화를 걸어 김구의 사형을 중지하라고 전화를 걸었다. 사흘 전 개통된 전화가 없었다면 사형이 그대로 집행됐을 아찔한 상황이었다.
전화 교환기 덕분에 사랑이 싹트기도 했다. 조선의 마지막 왕자인 의친왕은 전화를 자주 이용하다 전화를 연결하던 궁내 교환원과 정이 들었다. 궁내 교환원은 이후 의친왕의 후실이 됐다.
왕실의 전유물이던 전화는 1902년 민간에 첫 개방됐다. 이때 한성과 인천 사이 통화가 가능한 공중전화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전화 요금은 당시 쌀 다섯 가마니 가격 수준으로 사실상 일반인은 이용하기 힘들었다. 70년대까지도 전화기 한대 값은 50평대 집값을 웃돌았다. 1982년 TDX 자동식 교환기의 도입은 1가구 1전화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됐다. 이를 시작으로 1987년에는 전화 가입자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
국내 최초 인터넷 연결은 1982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실험실에서 이뤄진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 연결이다. 인터넷 상용화는 1994년 KT의 코넷(KORNET)을 기점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2002년에는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는 1996년 한국이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의 이동통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이동통신 도입 3년 만인 1999년에는 무선통신 가입자가 유선전화 가입자를 추월하기도 했다.
원주에 위치한 KT통신사료관에 전시된 사료 중 하나는 경성 전화번호부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전화국사 위치와 내부 도면 정보가 모두 담겨있어 일제시대 당시 통신 시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귀한 사료다. 이번 온라인 전시를 통해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이번 전시는 한성전보총국 개설(1885년 9월) 135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부득이 온라인으로 개관했지만, 온라인이다 보니 다양한 체험형 서비스가 가능한 장점도 있다. 360도로 화면을 돌려가며 전시공간 전반을 둘러보거나 추가 설명을 듣고 싶으면 사료를 클릭해 부연설명과 에피소드, 당시 방송영상 등을 볼 수 있다.
양율모 KT 홍보실장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 사람들을 연결했던 통신과 관련된 따뜻한 추억을 되새기고자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며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는 체험교육의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텔레 뮤지엄에서 도슨트(해설사) 역할을 담당하는 강해림씨가 텔레뮤지엄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K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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