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연주를 많이 했지만, 로베르트 슈만이라는 작곡가는 뭔가 불편했어요.. 그 당시에는 이유를 잘 몰랐죠. 이번에 보니까 그만큼 슈만의 세계가 복잡하더라구요. 음악을 통해 슈만의 심정을 느꼈고, 특별히 표현하고 싶은 세계를 찾았습니다.”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74)가 낭만주의 대표 작곡가인 슈만을 연주한다. 복잡하고 순탄치 않았던 삶을 산 슈만의 영혼을 위로하고, 청중들에게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건우는 오는 9일 오후 8시에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백건우와 슈만’ 콘서트를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이후 오는 11월 15일까지 전국 투어 공연을 이어간다. 지난 9월 17일에는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슈만 음반 신보를 발매했다.
백건우는 6일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슈만은 복잡한 인생을 살았다. 음악을 하는 것을 이해해줬던 아버지가 10대 때 돌아가시고, 당시 사회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클라라와의 사랑도 힘겹게 이뤘다”며 “둘도 없는 음악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수많은 곡을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슈만의 첫 번째 작품번호의 주인공, 아베크 변주곡으로 시작해 1854년 작곡된 그의 마지막 작품인 ‘유령 변주곡’으로 마무리된다. 슈만의 음악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지켜보며, 굴곡진 삶과 함께 요동쳤던 슈만의 섬세한 감정들을 전달한다.
‘유령 변주곡’은 슈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완성한 곡이다. 이번 슈만 음반의 프로듀싱을 맡은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은 “지금까지 수많은 예술가들과 작업을 하면서 감동은 받았지만 감정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후반 작업을 마치고 음반 전체를 백건우 선생님과 함께 들었다. ‘유령 변주곡’을 들으면서 한참을 펑펑 울었다. 제 감정이 이렇게 무너져 내린 것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이어 최 감독은 “백건우 선생님이 연주를 통해 슈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대신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았다. 슈만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유서에 적어 놓은 것 같았다”며 “(연주를 들으면서) 슈만의 영혼이 위로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발매된 CD 2장에는 각각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이제비우스’는 내성적이며 꿈꾸는 듯한, ‘플로레스탄’은 열정적이며 공격적인 슈만의 서로 다른 자아를 상징한다.
백건우는 “누구나 다 양면이 있다. 특히 슈만에게는 그것이 창작 작업을 하는데 자극이 됐을 것이다”며 “죽을 때까지 어린이 같은 순수함과 모든 이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인간의 쓰라림을 동시에 가졌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는 공연계를 멈추게 했다. ‘거장’도 피해갈 수 없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백건우는 음악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했다.
“음악은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깊이 잠재 돼 있는 힘과 조화를 끄집어내 인생을 좀 더 명확하고 아름답게 채울 수 있게 해준다.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항상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진실 된 순간을 만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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