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국 알아요?" 지인이 물었다. 나는 "누굽니까? 가수 조문근은 압니다만, 친척인가요?" 물었지만, 이내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조문국(召文國). 사람 이름이 아니라, 한 나라의 이름이라니. 기록조차 많이 없어 아직은 많은 이가 모르지 않겠냐며 방어했지만 구겨진 체면, 말씀이 아니었다. 여행기자를 몇 년 했지만, 조문국은 아스라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억 속에 없는 이름이었기에 더없이 부끄러웠다.
조문국 사적지는 지난해 '강소형 관광지'에 당당히 선정됐다. 한국관광공사는 전국 여행지 중 인지도는 낮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 관광지를 강소형 관광지로 선정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육성 중이다. 지역별로 균형 있는 관광 발전을 위해 향후 인기 관광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곳을 발굴하고 체계적인 마케팅을 통해 유망 관광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의성 하면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치는 것이 '마늘'과 '컬링'이겠지만, 삼한시대 부족국가 중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조문국(召文國)을 빼놓고 의성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록을 속속들이 찾았다.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읍지(邑誌)에는 현재 의성군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금성면 일대에 조문국이 있었다고 나와 있었다. 또 삼국사기에는 "벌휴 이사금이 조문국을 정벌하였다"고 짤막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를 통해 삼한시대 의성지역에서 번성했던 국가가 바로 조문국이었고, 벌휴 이사금 때 신라에 복속됐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시대를 살아가는 2020년이지만, 발길 닿는 곳곳에서 조문국의 역사와 그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5호)에 오니 이곳이 나라였다는 사실이 더 확실해졌다. 금성면 대리리와 탑리리, 학미리에는 5~6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 374기가 흩어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조문국이 의성 지역에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었다.
국도 28호선을 달리다 보니 조문국 사적지 표석이 등장했다. 차를 세우고 고개를 돌리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풍광이 드넓게 펼쳐졌다. 표석이 없었다면 산책로까지 잘 갖춰진 공원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하늘을 향해 이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니, 의성의 유구한 역사가 가슴속으로 들어오고, 초록빛 고분과 붉은 배롱나무의 조화에 코로나 우울증까지 치유되는 듯했다.
동행한 문화해설사는 "봄에 오면 더 좋다"고 귀띔했다. 5월에는 작약 꽃단지가 무척 아름다워 여행객 발길이 끊이질 않는단다. 비단 봄뿐 아니라 계절마다 매력 넘친다고. 워낙 풍광이 아름다워 최근에는 웨딩 사진 촬영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흥미로운 얘기에 푹 빠져 듣고 있는데, 해설사의 말이 "고분군이 아름다운 것은 알겠는데 왜 무덤에서 결혼사진을 찍을까?"라고 반문했다. 얼른 "결혼은 무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라며 농을 하니 "그 말이 맞네요"하며 껄껄 웃는다.
여담은 그만, 이제 조문국 사적지 얘기로 다시 넘어가기로 하자. 이곳에는 봉분 40여기가 있는데, 유일하게 주인이 알려진 고분이 1호분(경덕왕릉)이다. 둘레 74m에 높이 8m로, 봉분 아래 화강암 비석과 상석이 있다. 경덕왕릉 앞에는 봉분 모양 조문국고분전시관이 있다. 2009년 발굴한 대리리 2호분의 내부 모습을 재현한 곳으로, 순장 문화와 출토 유물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금성산 주변 고분군은 대부분 원형의 봉토분이다. 봉토를 이루고 있는 엄청난 양의 흙은 이 지역의 흙색과는 달리 순수 점토로 이뤄져 있는 만큼 막대한 노동력을 투입해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 왔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 부분에서도 당시 조문국을 통치하는 우두머리의 정치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잃어버린 대왕국'이 이곳 봉분에 곤히 잠들었으리라.
사적지에는 5월 중순부터 피어나는 작약꽃, 가을께면 배롱나무와 분홍쥐꼬리새(핑크뮬리)가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곳을 더 넓게 조망해보고 싶다면 전망대에 올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금성산과 함께 어우러지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조문국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하니 의성조문국박물관을 추천했다. 과연 조문국의 화려한 문화와 의성 역사의 변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013년 문을 연 박물관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이뤄졌는데, 2층 상설전시실에 조문국 관련 유물이 전시돼 있다. 여러 유물 중에서도 특히 대리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모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라의 금관과 확연히 다른 생김새로 눈길을 끌었다. 5세기 후반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관모는 '장식 봉'이 달렸는데, 이것을 통해 조문국의 독자적 문화를 가늠할 수 있었다.
1층에는 어린이들이 실내에서 유물을 발굴·복원하는 과정을 체험해 보는 어린이 고고 발굴 체험관이, 야외에는 대형 놀이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금성산 고분군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스폿을 찾는다면 박물관 옥상 정원이 제격이다.
조문국 사적지만 둘러보고 가기엔 아쉬움과 미련이 컸다. 이곳에 왔으면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영미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의성을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종목, '컬링'을 한번 체험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일행을 유혹했고, 의성읍 컬링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전문 컬링팀의 전지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컬링 은메달 신화 '팀킴'도 이곳에서 훈련했다. 동시에 일반인 체험·동호회 모임도 할 수 있는 시설로 확대돼 누구나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침 그곳에 있던 이슬비 해설위원에게 컬링을 배워보기로 했다. TV로 봤을 때는 컬링만큼 쉬운 종목도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배워보니 발을 내딛는 것조차 너무 어려웠다.
장비 교육부터 경기장·경기 규칙을 간단하게 익힌 후 약 45m 되는 빙상장을 왕복하며 슬라이딩(미끄러짐) 등 컬링 기본 동작을 반복했다. 컬링 전용 빙판은 꽤 예민하고 미끄러웠다. 선수들이 쉽게 하던 동작도 직접 따라 해보니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온몸의 근육과 신경은 바짝 긴장을 했다. 체력 소모도 엄청났다. 20㎏에 육박하는 스톤을 움직이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슬비 위원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려면 최소 3개월에서 5개월 정도 꾸준히 훈련하는 것이 좋다"고 귀띔했다.
이외에도 의성에는 올해 6월 국내 최대 규모로 개관한 펫월드부터, 경북도 산업유산인 '성광성냥' 공장과 성냥을 주제로 한 벽화 골목, 전통마을인 사촌마을 등 관광 매력이 넘쳐난다. 조선 최초 통신사인 박서생이 일본에 타고 갔던 배를 재현한 의성군의 신규 관광 콘텐츠까지 풍성하니, 가는 곳곳마다 새로운 매력이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고장임이 분명하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사실 의성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떠나기 전 '과연 여행 매력이 있을까?' 하던 의심은 온데간데없고, 감동과 행복만이 남아 지금까지 마음을 즐겁게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곳, 찬찬히 보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곳, 바로 이곳 의성일 게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