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가정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가부장제 힘은 역시 막강했다. 세계 경제 10대국의 외교부 장관이 별거더냐. 가정 울타리 안에선 남편 입김이 부처 장관보다 세다. 추석 연휴 기간(9월 30일∼10월 4일) 2억원짜리 요트 구입 차 미국으로 출국한 이일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그것을 증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가정 내에선 남성지배의 하위 범주에 불과했다. "(남편은)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한 강 장관의 발언에서 신기루에 불과한 양성평등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강 장관이 누구더냐.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이다.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통역사,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한 불세출의 외교관이다.
그러나 전근대적인 가부장제 앞에선 그의 화려한 이력도 무기력했다. 오늘날 '어디 여자가'라는 꼰대의 공개적인 발언은 들을 수 없지만 보이지만 않을 뿐,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는 각 조직과 사인 관계 곳곳에 숨어 있다. 맞는다. 지금도 대형마트 장난감 진열대에는 '남자는 로봇, 여자는 인형'으로 구분 짓기를 하고 있지 않나. 남자는 강인함을, 여자는 조신함을 각각 강요받고 있다.
◆과거도 현재도 지배하는 '가부장제'
어린 시절로 기억한다. 초·중·고 시절 정년퇴임을 앞둔 남자 선생님 일부는 수업 시간 도중 종종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단어를 썼다. 세상 구조를 다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도 '옛날엔 더 그랬어'라는 뉘앙스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아니 2020년을 강타한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라는 원조 꼰대의 시발점이 학교, 그것도 한때 우리네 부모님이 머리를 조아리던 선생이라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란 대사를 종종 들었다. 정치적 민주화 시대의 막을 연 문민정부 시절 초반, 가장 인기 있던 드라마는 장수봉 PD가 연출한 '아들과 딸'(MBC, 1992년 10월∼1993년 5월 총 64회 방영, 시청률 60%대)이었다.
주인공은 귀남(최수종)과 후남(김희애)이다. 이들은 선택권이 없는 성별로 인해 갓난아이 때부터 대학 입학까지 차별을 받았다.
그랬다. '우리 아들'이란 한마디에 집안 어르신은 그야말로 신줏단지 모시듯 모셨다. 아들 딱지에 붙은 후광은 찬란했다. 50% 확률에 달하는 성별 하나로, 현대판 소도를 만드는 블루오션을 끊임없이 개척했다. 이 땅의 아들이 만든 신개척지에 어느 딸이 감히 철퇴를 가하랴. 그 순간 방구석으로 밀려나는 건 오롯이 딸의 몫이다.
◆강경화가 남성 장관이었다면···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래동화나 동요에서 남녀 구분 짓기는 일상화됐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고대 설화 '선녀와 나무꾼'은 사실상 약탈혼에 가깝다. 동요 '개굴개굴 개구리'에 나오는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란 가사는 2005년 3월 2일 민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폐지된 호주제의 호주 승계가 아니던가. 우리는 여전히 아빠 곰은 뚱뚱하고 엄마 곰은 날씬한 사회에 살고 있다.
강경화 남편발(發) 논란도 '가부장제의 연장선'이다. 제헌 헌법 이후 수없이 자리에 오른 남성 장관의 부인 중 이런 논란을 자초한 적이 있나.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윗세대 여성 중 누가 코로나19 확산 위기로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한 외교부 장관 남편의 말을 거역할 수 있을까. 가부장제는 공직사회를 뛰어넘는다. 아들의 후광은 모든 것을 능가한다. 정치도 경제도 민주화가 됐거나 진행 중이건만, 유독 가정 문 앞에 서면 민주주의는 멈춘다.
강 장관이나 이 교수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현 정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추호도 없다. 강 장관 남편발 논란의 본질인 가부장제는 애써 외면한 채 강 장관에게 책임을 덮어씌우지 말자는 얘기다. '이일병 책임론'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공직자도 아니다. '2억원, 요트 구매, 미국 여행' 등의 자극적인 단어 등으로 인민재판을 받을 의무가 없다.
코로나19든 그 이상이든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고 해외여행을 갈 자유는 헌법이 개개인에게 부여한 자유다. 대학교수인 그가 비판받을 부분은 가부장제에 묶인 사고방식이다. 하나 더 꼽자면, 공동체와의 조화를 강조한 '스피노자' 철학이 제로(O)에 가깝다는 점이 아닐까. 강 장관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가정 내에선 남성지배의 하위 범주에 불과했다. "(남편은)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한 강 장관의 발언에서 신기루에 불과한 양성평등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강 장관이 누구더냐.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이다.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통역사,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한 불세출의 외교관이다.
그러나 전근대적인 가부장제 앞에선 그의 화려한 이력도 무기력했다. 오늘날 '어디 여자가'라는 꼰대의 공개적인 발언은 들을 수 없지만 보이지만 않을 뿐,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는 각 조직과 사인 관계 곳곳에 숨어 있다. 맞는다. 지금도 대형마트 장난감 진열대에는 '남자는 로봇, 여자는 인형'으로 구분 짓기를 하고 있지 않나. 남자는 강인함을, 여자는 조신함을 각각 강요받고 있다.
◆과거도 현재도 지배하는 '가부장제'
아니 2020년을 강타한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라는 원조 꼰대의 시발점이 학교, 그것도 한때 우리네 부모님이 머리를 조아리던 선생이라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란 대사를 종종 들었다. 정치적 민주화 시대의 막을 연 문민정부 시절 초반, 가장 인기 있던 드라마는 장수봉 PD가 연출한 '아들과 딸'(MBC, 1992년 10월∼1993년 5월 총 64회 방영, 시청률 60%대)이었다.
주인공은 귀남(최수종)과 후남(김희애)이다. 이들은 선택권이 없는 성별로 인해 갓난아이 때부터 대학 입학까지 차별을 받았다.
그랬다. '우리 아들'이란 한마디에 집안 어르신은 그야말로 신줏단지 모시듯 모셨다. 아들 딱지에 붙은 후광은 찬란했다. 50% 확률에 달하는 성별 하나로, 현대판 소도를 만드는 블루오션을 끊임없이 개척했다. 이 땅의 아들이 만든 신개척지에 어느 딸이 감히 철퇴를 가하랴. 그 순간 방구석으로 밀려나는 건 오롯이 딸의 몫이다.
◆강경화가 남성 장관이었다면···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래동화나 동요에서 남녀 구분 짓기는 일상화됐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고대 설화 '선녀와 나무꾼'은 사실상 약탈혼에 가깝다. 동요 '개굴개굴 개구리'에 나오는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란 가사는 2005년 3월 2일 민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폐지된 호주제의 호주 승계가 아니던가. 우리는 여전히 아빠 곰은 뚱뚱하고 엄마 곰은 날씬한 사회에 살고 있다.
강경화 남편발(發) 논란도 '가부장제의 연장선'이다. 제헌 헌법 이후 수없이 자리에 오른 남성 장관의 부인 중 이런 논란을 자초한 적이 있나.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윗세대 여성 중 누가 코로나19 확산 위기로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한 외교부 장관 남편의 말을 거역할 수 있을까. 가부장제는 공직사회를 뛰어넘는다. 아들의 후광은 모든 것을 능가한다. 정치도 경제도 민주화가 됐거나 진행 중이건만, 유독 가정 문 앞에 서면 민주주의는 멈춘다.
강 장관이나 이 교수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현 정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추호도 없다. 강 장관 남편발 논란의 본질인 가부장제는 애써 외면한 채 강 장관에게 책임을 덮어씌우지 말자는 얘기다. '이일병 책임론'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공직자도 아니다. '2억원, 요트 구매, 미국 여행' 등의 자극적인 단어 등으로 인민재판을 받을 의무가 없다.
코로나19든 그 이상이든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고 해외여행을 갈 자유는 헌법이 개개인에게 부여한 자유다. 대학교수인 그가 비판받을 부분은 가부장제에 묶인 사고방식이다. 하나 더 꼽자면, 공동체와의 조화를 강조한 '스피노자' 철학이 제로(O)에 가깝다는 점이 아닐까. 강 장관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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