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도소’라는 이름의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가 10월 6일 베트남에서 국내로 송환돼 이틀 뒤 구속 수감됐다. 디지털 교도소는 자난 3월 ‘텔레그램 n번방’ 사태와 7월 손정우 미국송환 불발 사건을 계기로 여론의 관심을 받게 됐다. 이 사이트는 n번방 사건 관련자를 비롯해 아동학대, 성범죄, 살인 등 흉악범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휴대폰 전화번호 같은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사이트 운영자는 이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고 사이트 개설 이유를 설명했다.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레벨업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처벌, 즉 신상 공개를 통해 피해자들을 위로하려 한다"고 했다.
◆아동음란물 처벌, 한국과 미국은 '천지차이'
그 이유와 동기가 무엇이든간에 개인의 신상을 제멋대로 공개하는 것은 중범죄 행위다. 그 개인이 범죄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범죄자는 국가가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와 재판을 통해 처벌하는 게 문명국가이고 법치국가이다. 그 누구도 사적 형벌을 가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디지털 교도소의 범죄성과는 별개로 사이트 운영자가 개설 이유로 주장한 말은 우리 사법 운영 실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 같은 말이다. 이 사이트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관리자분을 응원한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얼굴과 신상정보가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고 고통받는다. 그러나 가해자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그에 비해 너무나도 약하다." 이 댓글에 공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손정우씨 사례는 그 하나에 불과하다. 손씨는 2015년부터 2년 넘게 인터넷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하며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등 22만여건을 유포한 혐의로 2018년 3월 구속기소됐다. 1심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2심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손씨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음란물 3000여개를 사이트에 올렸다. 사이트 회원이 4000여명이었다. 손씨는 사이트 운영으로 4억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챙겼다. 그런데도 처벌은 징역 1년 6개월에 그쳤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웰컴 투 비디오'를 통해 아동 포르노를 내려받은 미국인들이 징역 5∼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반면 손씨는 단지 1년 반 만에 풀려났다고 강조했다.
이 사이트에서 음란물 영상 1700여개를 내려받아 갖고 있던 사람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 1000건을 내려받은 사람은 징역 4개월 형을 받았다. 165개를 내려받은 사람은 벌금 1000만원, 200차례 내려받은 사람은 벌금 200만원이었다.
미국에선 아동 성착취물 범죄자의 99.1%가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아동 성착취 영상을 소지한 범죄자들의 평균 형량은 5년 10개월, 판매자는 평균 11년 5개월이나 된다. 영상 한번 내려받은 사람이 징역 70개월과 보호관찰 10년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영국에서는 음란물 영상을 갖고 있기만 해도 최대 징역 5년형을 받는다.
법무부가 2008~2018년 모든 유형의 성범죄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 `2020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성범죄 관련 재판 7만4956건 중 절반에 가까운 3만1006건(41.4%)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그 다음은 벌금형 2만2669건(30.2%)이었고, 징역형은 1만9567건(26.1%)에 불과했다. 10건 중 7건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어도 형 집행이 유예돼 교도소에 가지 않거나, 아예 벌금형으로 끝난 것이다.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 중에는 67.3%가 1년 이상 6년 미만의 형을 선고받았다.
형량이 물러터지기는 아동 학대 범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 267건 중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33건, 전체의 12.3%에 불과하다. 반면 집행유예는 96건 (36%)으로 실형의 3배에 달한다. 아동학대범죄로 기소된 사람 10명 중 1명만 실형을 선고받은 셈이다.
이들 범죄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에 대해 전반적으로 형량이 낮은 편이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8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1심에서 형을 선고받은 13만9905명 가운데 집행유예가 8만70명, 57.2%로 절반이 넘는다. 징역 1년 미만이 2만3630명(16.9%), 1년 이상 3년 미만이 2만7493명(19.7%)이다. 93.8%, 즉 100명 중 94명이 집행유예 또는 3년 미만의 형을 받고 있다. 3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은 100명 중 6명에 불과하다.
◆법정형은 높은데 실제 선고 형량은 턱없이 낮아
솜방망이 처벌이 그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얼핏 생각하면 법정형이 낮아서 그럴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법정형은 그리 낮지 않은데도 법원이 낮은 형을 선고한다.
지난 1월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허락 없이 빵을 먹으면서 빵가루를 흘린다고 다섯 살짜리 딸의 배를 세 차례나 걷어차 1시간 만에 장 파열로 숨지게 한 아빠에게 아동학대치사죄로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아동학대치사죄는 5년 이상 유기징역,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하게 돼 있다. 형법 상 유기징역의 상한선은 30년이다. 따라서 아동학대치사죄의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30년 이하 유기징역이다. 그런데 실제 선고된 형량은 징역 2년6개월이다.
지난해 전 국민을 화나게 했던 이른바 ‘크림빵 사건’이 있었다. 임신 7개월 된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사 들고 집으로 가던 20대 가장이 뺑소니 차량에 치여 숨진 사건이다. 1심과 2심 모두 범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은 뺑소니 사망 사고를 낸 경우 법정형을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정해 놓았다. 그러나 이 운전자에게는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이렇게 법정형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낮은 형이 선고되는 이유는 대법원이 만든 양형 기준 자체가 법정형에 비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법정형과 선고형의 괴리가 너무 큰 판결이 나온다. 이게 우리나라 사법 운영의 진짜 문제다.
법정형은 몇 년 이하 또는 몇 년 이상 식으로 돼 있어서 형량의 범위가 너무 넓다. 법정형대로 하면 비슷한 범죄인데도 판사에 따라 들쑥날쑥한 판결이 나오게 된다. 이걸 막기 위해 만든 게 양형 기준이다. 죄질에 따라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의 범위를 세분화한 것이다. 판사는 이 기준을 참고해 형을 선고한다. 그런데 그 양형기준이 법정형에 비해 턱없이 낮게 설정돼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간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유기징역의 상한선이 30년이니 강간죄의 법정형이 3년 이상, 30년 이하다. 그러나 양형기준은 기본 영역이 징역 2년 6월∼5년이다. 기본 영역이란 범죄 동기와 수법 및 경위, 범행 뒤의 반성이나 피해자와 합의 여부, 전과 여부 등등에서 특별히 선처하거나 가중 처벌할 만한 요소가 없는 보통의 경우를 말한다. 기본 영역을 기준으로 해서 정상을 참작할 요소가 있으면 1년 6월∼3년으로 기준이 낮아지고, 죄질이 나쁘면 4년∼7년으로 높아진다. 법정 최고형은 징역 30년인데 양형 기준은 가중처벌하는 경우에도 최고 7년밖에 안 되는 것이다.
강도강간죄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 유기징역이다. 무기 또는 10년 이상, 3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형 기준은 기본 영역을 징역 8∼12년으로 설정했다. 특별히 선처할 만한 요소가 없는 보통의 경우에도 법이 정한 최소 형량인 10년보다 낮은 8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감경할 때는 5~9년, 가중처벌할 때는 10~15년이다. 가중 처벌할 때도 최고치가 15년에 그친다. 양형 기준이 법정형보다 턱없이 낮게 설정된 것은 뇌물, 횡령과 배임, 조세범죄 등 거의 모든 범죄에서 똑같다.
◆'윤창호법' '민식이법' 아무리 만들어도 무용지물
그동안 양형위원회는 양형 기준 설정에서 국민 법 감정 또는 사회적 공감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양형위원 13명 중 11명이 법 전문가이고 일반인은 2명뿐이라 그렇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런 양형위원회가 지난 9월 ‘n번방’ 사건처럼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여러 차례 상습적으로 제작하면 최대 29년3개월 형을 선고할 수 있게 양형기준을 정했다.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를 처벌하는 청소년성보호법의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유기 징역이다. 29년3개월은 유기징역 상한선 30년에 육박한 수준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반영한 것이다. 다른 범죄의 양형 기준에도 이렇게 사회적 공감대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솜방망이 처벌이 멈추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로 판사의 작량감경 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작량감경이란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형을 감경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라는 요건이 추상적이어서 판사의 재량권이 너무 넓게 인정된다는 점이다. 판사들은 ”‘우발적·충동적 행위’, ‘피해자 측의 관대한 처벌요청’ ‘피해 경미’ 같은 이유를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하거나 형량을 낮춘다.
작량감경 제도가 있는 한 양형기준을 높이더라도 판사가 작량감경으로 낮은 형을 선고하면 솜방망이 처벌은 막을 수 없다. 작량감경의 요건을 지금보다 좀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는 형법에 작량감경의 요건을 자세하게 정해 놓았다. 이렇게 하면 판사의 재량권이 줄어들어 형량을 깎아주는 게 어려워질 것이다.
‘윤창호법’ ‘민식이법’이라는 게 있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사고를 낸 사람을, 민식이법은 스쿨존에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어린이를 죽거나 다치게 한 사람을 가중 처벌하는 법이다. 두 법 모두 무기 또는 징역 3년 이상의 중벌로 처벌하게 돼 있다. 음주운전 사고와 스쿨존 어린이 사고를 다른 교통사고와 달리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법정형을 높이는 법이 만들어져도 법원이 낮은 형을 선고하면 쓸데없는 일이다. 법원은 오죽하면 ‘디지털 교도소’라는 ‘인격 살인’ 사이트까지 등장하게 됐는지 반성하고 국민에게 책임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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