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산하기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기강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이카는 정부 예산 지침을 어기고 법인카드로 직원들 경조사비를 지원해왔는데, 지원금액 한도 외에 장소·시간 등 기준을 정해놓지 않아 직원들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이 빈번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코이카는 최근 5년간 19개국 대상으로 추진한 20개 원조사업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거나 시작하자마자 바로 취소했다. 이 과정에서 투입한 사업비 20억여원 중 13억4000만원가량은 회수도 못했다.
1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코이카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기관은 정부 예산편성지침을 어기고 법인카드를 직접 직원들에게 교부, 현물 지원해왔다.
기획재정부는 매년 발표하는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과 지난 2013년 발표한 '방만경영 정상화계획 운용 지침' 및 '방만경영 개선 해설서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경조사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도록 하고, 경조사비를 현금으로 지원할 경우 기관장 업무추진비로 지원하거나 사내복지기금으로 지원하도록 했다. 예산으로 경조사비 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한 셈이다.
그러나 코이카는 수익사업 없이 정부출연금으로만 운영되는 기관 특성상 사내복지기금을 조성할 수 없고, 경조사비의 경우 기관장 업무추진비(연간 약 2000만원)보다 규모가 큰 연간 3000만원 안팎이었다. 이에 코이카는 지침을 임의로 해석해 직원들에게 법인카드를 직접 교부, 경조사비 액수에 해당하는 쇼핑을 하도록 '현물지원'을 해왔다.
이 같은 방식은 현금 또는 현물 여부와 관계없이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을 금지한 기재부 예산편성지침 등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조사비 지원 명목으로 지원된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살펴보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한 채 사적 용도의 물품 구매가 이뤄졌고 지원금액 한도 외에는 기준이 없어 '호화쇼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구입내역으로는 △가구(현대백화점) 100만원 △골프용품(골프존) 50만원 △전자제품(하이마트) 50만원 △수입화장품(샤넬) 25만원 등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 내 경조사비 지원 금지'조항의 취지는 공공기관의 예산으로 경조사비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지, 현금 대신 현물을 지원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법인카드는 예산이 들어가는 지불수단일 뿐 법인카드 지급을 현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코이카 관계자는 "2019년 8월, 기재부 지침에 따라 자녀 대학입학 축하금 항목을 폐지하고 기존 시행하던 항목들에 대해서는 현물지원 방식으로 변경했다"며 "경조사비를 현금으로 지원하던 것이 법인카드를 통한 현물의 지원으로 변경됐기 때문에 제한을 두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코이카의 경조사비 법인카드 지원은 기재부의 지침을 마음대로 해석해 직원들에게 예산을 꼼수로 지급한 방만경영"이라며 "코이카는 부적절한 예산 집행을 중단하고, 규정 내에서 직원 복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개 사업 취소·초기 사업비 13억원 낭비
코이카는 또 추진하던 사업을 시작도 하지 못하고 취소하거나 원조사업 계획 수립 및 시행에 있어 차질을 빚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통위 소속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코이카로부터 '최근 5년 원조사업 취소 현황'을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19개국을 대상으로 하는 20개 원조사업이 추진도 못 하거나 시작하자마자 취소됐다.
2016~2020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등 총 19개국에 대한 △중소기업 역량강화 △선거관리위원회 역량 강화 △첨단 아프리카센터 운영지원 △사이버대학 지역학습관 구축 등 총 20개 사업이 대부분 △수원국의 준비 지연 △수원국의 역량 미비 △정세 불안 △중복사업 우려 △수원국 태세 미흡 △현지 상황 및 정책 변화 등을 사유로 취소됐다.
코이카는 이중 △파키스탄 중소기업 역량강화 사업(270만원) △과테말라 수자원오염측정연구소 설립을 통한 환경역량강화사업(2240만원) △카자흐스탄 응급의료체계 강화사업(6억7100만원) △스리랑카 폐기물 소각 플랜트 건립 사업(2억8500만원) △페루 해양기후 관측 역량 강화사업(5600만원) △에콰도르 야차이 지식기반도시 창업지원 사업(11억원) 등 6개 사업에 대한 초기 사업비로 약 21억원을 지출했고 이 가운데 7억9500만원은 회수했지만 출장경비와 사전조사, 용역경비, 자문료 등으로 지출된 13억4000만원가량은 회수하지 못했다.
김 의원은 "회수하지 못한 13억원의 사업비 등 예산 낭비도 문제지만 지속적인 사업 취소는 수원국과의 외교문제까지 번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면서 "공여국의 위상에도 흠집이 날 수 있어 사업 초기부터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코이카는 (사업 취소를) 수원국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지만 사업계획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발도상국들에게 원조자금이 적시적소에 지원돼 사업이 잘 진행되도록 사업 초기부터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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