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트럼피즘(Trumpism)은 사라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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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0-10-2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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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중 마스크 손에 든 바이든 "모두에게 코로나19 무료 백신" (윌밍턴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23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유세 연설 도중 마스크를 손에 든 채 코로나19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바이든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모두가 무료로 맞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20년 미국 대선이 막을 내릴 때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4년 전처럼 막판 뒤집기로 또다시 대역전극을 펼치느냐? 아니면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줄곧 크게 앞선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코로나19 확진에서 금세 일어나 폭풍유세를 펼치고 있는 트럼프의 맹추격을 따돌릴 것인가? 다음 주면 판명이 날 것이다. 다만 전제조건이 붙는다. 패자가 승자를 인정해야 한다. 올해 우린 유독히도 혼란스럽고 희한한 모습의 미국 대선을  지켜보았다. 코로나 팬데믹은 일순간 선거 유세를 크게 위축시키고 투표 풍경도 바꾸게 했다. 대선을 엿새 앞둔 28일(현지시간) 사전투표(조기 현장투표 + 우편투표)는 7000만명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이 중 우편투표는 벌써 4775만명를 넘어 유효투표 확인 등 개표작업이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부 경합주에서는 선거일 3~4일 후 또는 최악의 경우 몇주가 지나야 최종 개표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거리로 시위대가 나서는 등 사회 갈등과 혼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가 패배 시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 (self coup)를 통해 정권유지를 시도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 본산격인 미국에서 이런 일이? 어째 기분이 묘할 뿐이다. 

미 대선 방식은 참으로 복잡하다. 전국 득표수가 아닌 주별로 배정된 선거인단을 얼마나 확보하는지를 계산해 당선자를 결정한다. 당선을 위해선 선거인단 538명의 과반인 270명의 지지가 필요하다. 엄밀히 말하면 11월 3일은 각주마다 선거인단을 뽑는 날이다. 주별로 한표라도 많은 표를 얻으면 지역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형태(메인·네브래스카주 제외)다. 오는 12월 14일까지는 정식으로 대선후보에 투표를 하게 되는 선거인단이 구성되어야 한다. 내년 1월 20일엔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게 된다. 지금 최대 관심사는 이러한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 여부다. 지기 싫어하는, 아니 자기가 패배자라고 인정을 해본 적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개표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 이를 쿨하게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로 몰고갈 우려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근거도 없이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하며 줄곧 대선 패배 시 불복 의사를 밝혀왔다. 그러다가 비판적인 여론이 커지자 지난 15일 타운홀 미팅에서 처음으로 평화적인 권력이양을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지난 4년 전 대선에서 자기 이름이 적힌 수천개의 투표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는 등 근거없는 주장을 펼치며 이번 선거에서 우편투표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을 거듭 제기했다.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의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도 트럼프 후보는 부정투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당시에도 여론조사에서 밀리던 트럼프가 패배 시 선거 결과를 수용할지 여부는 큰 관심사였다. 그는 선거 보름을 앞둔 막판 유세 중에 갑자기 '중대 발표'를 한다. 자신은 모든 국민들에게 선거 결과를 완전 수용할 것을 약속하고 맹세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다음 세 단어를 강조한 후 입술을 살짝 펴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If … I … win!” (내가 이긴다면)


대선불복?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한데다 인종차별 폭력과 시위로 이번 선거 분위기가 완전 뒤틀린 마당에 '대선불복' 사태로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체면은 더욱 구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와 러스트벨트 등 박빙의 승부로 핵심 경합주를 휩쓸며 대권을 차지했다. 전체 선거인단 306명(힐러리 클린턴 232명)을 확보해 승리했으나, 미국 유권자 전체 득표수에서는 힐러리에 287만표나 뒤졌다. 트럼프는 당선 이후 2016년 선거에서 최소 300만명의 불법이민자들이 힐러리에게 부정 투표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도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승부욕이 강한 인물이며 자신의 패배나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성격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에 의해 널리 알려진 역사 해석학 용어인 '휴브리스(hubris)'는 성공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우상화함으로써 자기 오류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가 코로나의 위협을 가볍게 여기다 대선 한달을 앞두고 확진 판결을 받아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것은 그야말로 이번 대선의 최대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일부 심리학자들은 그를 반사회적 인격장애(소시오패스)와 자기애적 인격장애(나르시시스트) 등의 복합증상을 보이는 '위험인물'로 분석하고 있다. 지더라도 그냥 쉽게 물러날 그가 아닌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박빙의 승부 끝에 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가 조작되었다며 재검표 소송에 나서거나 경합주의 선거인단 선출을 지체시켜 상대방이 과반수의 선거인단 확보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등 각종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는 쿠데타와 무장봉기 총격전 등 독재국가에서나 어울리는 생소한 단어들이 미국에서 쏟아질 줄은 우리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현재 민주당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개표가 지연되고 선거인단 명부를 확정하지 못해 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상황이다. 두 후보 중 누구도 선거인단의 과반인 270표를 확보하지 못하면 각 주별로 한명의 연방 하원의원이 대표로 투표해 대통령을 선출한다. 현재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주별로 따지면 26개 주에서 공화당이, 23개 주에서는 민주당이 다수다. 이 상황까지 가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오히려 유리해진다. 트럼프가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성향의 코니 배럿 판사를 서둘러 지명하고 상원 인준을 밀어붙이는 것도 대선 불복 소송을 노린 포석으로 보인다. 이번 주 배럿 지명자가 임명되면서 미 연방대법원은 보수 6명, 진보 3명의 보수 절대 우위 구도를 가지게 됐다. 정치용어 인터레그넘(interregnum)은 선거일로부터 차기 대통령의 취임선서까지의 사이클을 일컫는다. 다시 말하면 최고 권력의 부재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무슨 일이 미국에서 발생할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근대 미국 선거 중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은 적이 있었나 싶다.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우편투표율 증가를 고려할 때 올해 미 대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예년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승자 결정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11월 3일 선거 이후 몇주간 계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 대선이 혼탁해질 경우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악화는 물론 최고 신용등급인 트리플A(AAA)도 위태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검표 사태가 벌어진 지난 2000년 대선 때도 선거 이후 5주간 혼란이 계속됐지만 신용등급은 유지됐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혼탁한 이번 미국 대선은 지금 이렇게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다.


샤이 트럼프 vs 샤이 바이든 
 
트럼프가 4년 전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전 세계는 극심한 혼란과 갈등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트럼프 특유의 '변덕과 변칙', '마이웨이' 외교 전략에는 동맹도 적도 없고 오직 경쟁자만 있을 뿐이었다. 트럼프라는 최고 권력자가 지난 4년 미국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사실 트럼프는 미국사회가 만든 산물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아메리카 퍼스트'와 반이민정책을 내세우며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팜벨트(중서부 농업지대)의 저학력 백인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됐다. 이들 중에는 인종과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 등 분열적이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물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을 꺼려했지만 속으로는 그의 공격적인 스타일에 끌리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소위 '샤이 트럼프(shy Trump)'들이 대거 투표장에 몰려와 2016년 대선은 사전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트럼프의 승리로 귀결된 것이다. 이번에도 '샤이 트럼프'의 위력이 다시 한번 발휘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올해는 2016년과 상황이 바뀐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첫째는 여론조사기관들이 지난 대선의 실패를 교훈 삼아 조사방식을 대폭 보완했다. 여론조사 대상에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저학력층 백인, 비도심 지역 거주자의 비중을 높인 것이다. 또 하나는 누구를 찍을 것인지 밝히지 않는 부동층 유권자가 4년 전부터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샤이'하지 않고 커밍아웃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다. 공격적인 트럼프 지지층 때문에 바이든 지지를 못 밝히는 '샤이 바이든(shy Biden)'이 '샤이 트럼프'만큼 많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샤이 트럼프' 돌풍으로 아슬아슬하게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준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몇몇 경합주에서 '샤이 바이든'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바이든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트럼프와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다. 트럼프가 정치와 전혀 무관한 경력을 쌓은 뒤 백악관에 입성한 반면, 바이든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과 8년을 함께한 부통령, 7선 관록의 상원의원, 3번의 대선 도전 등의 수식어로 설명되는 정통 정치인이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품으로 유권자들의 '비호감'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4년 전 '거만하고 잘난 척하는 기성 엘리트 정치인 이미지가 너무 강하고 불편한 인상을 주었던 힐러리 클린턴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면 바이든은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한 인물이다. 이리하여 바이든 시대의 미국은 일방적이고 거친 외교에서 벗어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원칙에 입각한 다자주의를 추구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되살아나고 있다.  


선거후 미 경제 더블딥 우려

코로나19 재확산과 부진한 실물경제 지표 속에 치르는 이번 대선은 미국 경제 회복의 탄력성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특히 대선 결과 불투명 등 요인이 발생할 경우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백악관의 새 주인이 누가 되든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준은 당분간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 시 집권 2기 정책은 감세와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기조가 이어지고 코로나로 무너진 경제 회복에 초점을 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지배할 경우, 트럼프의 각종 경제정책은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그의 공약대로 법인세율 인상과 규제강화가 미국 기업들의 고용·투자 의욕과 가계 소득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만약 바이든이 패배한다면, 소위 '바이드노믹스(Bidenomics)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라는 말도 나올 것이다. 세계 경제의 불안요소인 미·중간 무역전쟁도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바이든 역시 트럼프처럼 중국을 겨냥해 공격적인 무역 조처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마지막에 웃을지, 11월 3일 선거가 끝나봐야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왜 공화당 후보로 나섰지만 '정치적 이단자'로 취급받던 트럼프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은 그가 워싱턴의 정치질서를 마구 흔들어 놓기를 바랐다.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의 괴팍한 성격 그리고 기성 정치의 틀과 법률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 등에 대해 그의 지지층은 본능적으로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여론조사는 거의 만장일치로 데마고그(demagogue·선동정치가) 트럼프가 패배, 4년 단임 대통령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이 설령 승리해도 세계화와 엘리트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로 요약되는 트럼피즘(Trumpism)은 미국에서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즉, 바이든이 승리해도 미국의 모습이 4년 전 모습 완전히 복귀를 의미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중국의 맹추격으로 인한 글로벌 질서의 급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결집으로 악화된 미국사회의 분열은 자유세계의 리더 미국의 위상을 계속 위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뉴햄프셔에서 주말 유세하는 트럼프 대통령 (런던데리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말인 26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런던데리의 맨체스터-보스턴 공항에서 대선 유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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