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프로젝트'. KB국민은행 역사상 첫 '3연임'을 사실상 확정 지은 허인 행장이 최근 데이터전략그룹 산하 AI혁신센터에 내린 특별 지시다. 양적 성장을 거듭하며 '리딩뱅크' 지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직원과 고객의 행복을 위한 질적 성장을 병행하기 위해 내놓은 프로젝트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허 행장은 지주 데이터총괄(CDO)을 겸임하고 있는 윤진수 데이터전략그룹장(전무)과 이 그룹 산하의 구태훈 AI혁신센터장을 최근 두 차례 불러, '행복 프로젝트' 구상을 전하며 프로젝트를 위한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허 행장이 그리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직원 간 '갈등'을 조율하고,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건네기 위해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단순히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거나 고객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뱅킹'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직원과 고객 모두에게 높은 만족도를 느끼게 하자는 뜻에서 '행복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직원 부문에서 이 프로젝트는 서로 상충되는 목표를 가진 부서 또는 직원 간 의견을 모으고, 원활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예컨대 영업 부문과 리스크 관리 부문은 모든 은행에서 대표적인 '갈등 관계'를 지닌 부서로 꼽힌다. 영업그룹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하려는 반면, 리스크 관련 부서는 그러한 영업부서에 '브레이크'를 거는 등 방어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 AI 기술을 활용하면 업무 속도 향상은 물론, 부서 간 이해관계 조율을 통해 결과적으로 양 부서 직원 모두의 업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허 행장의 생각이다. 현재 통계 기반인 자동심사시스템을 고도화해 내년에는 '머신러닝'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목표다.
고객 부문의 행복 프로젝트는 '고객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때 제공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은행을 비롯한 모든 금융사는 그간 '고객 접점' 늘리기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네이버와 같은 빅테크가 금융권에 뛰어든 이상 고객 접점을 양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게 허 행장의 판단이다. 고객이 필요한 서비스를 신속 정확하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해당 은행을 찾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 국민은행은 우선 내년 구축을 목표로 AI 기반의 음성상담 서비스인 '콜봇'을 도입할 계획이다. 몇몇 은행이 콜봇을 이용 중이지만, 기본적인 상담만 처리 가능한 수준이다. 허 행장은 자연어(일상어)에 금융언어까지 알아들을 수 있는 'KB알버트'를 기반으로 '똑똑한 콜봇'을 만들어, 고객에게 정확한 서비스를 더 빠르게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허 행장은 최근 본부 부서장들에게 50년 뒤 은행의 모습을 그린 책 <뱅킹 4.0>을 나눠줬다. 책은 미래 은행의 핵심은 상품이 아닌 '경험'이며, AI가 그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허 행장이 하반기에 실험한 인사 혁신에도 중심에는 AI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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