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3분기 매출 1조2086억원, 영업이익 61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3%, 영업이익은 49% 감소했다.
반면 LG생활건강은 3분기 매출 2조706억원, 영업이익 3276억원을 기록하며 62분기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5.4%, 5.1% 증가했다.
LG생건이 코로나19 환경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을 이어나가는 이유로 뷰티·생활용품(홈케어·데일리뷰티)·음료 부문 삼각 편대로 이뤄진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꼽는다. 그러나 3분기 실적에서 홈케어와 음료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LG생건은 여전히 성장세다. 뷰티, 데일리뷰티를 합산한 전체 화장품 매출은 1조4490억원, 영업이익은 24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5%, 2.4% 성장했다.
◆ 면세점 강자, LG생건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은 수익성 높은 면세점 회복이 실적 반등의 핵심이다. 순수 내수에서 뚜렷한 히트 브랜드가 없고 중국 사업에서 설화수는 매출 규모가 럭셔리 브랜드 중 아직 작은데 매출 규모에 비하면 성장률이 폭발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면세와 중국 모두 설화수 고성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LG생건이 면세점에서 본격 승기를 잡기 시작한 때는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 당시로 돌아간다. 명동 거리를 가득 채우던 중국인 관광객 '유커(游客)'의 발길이 끊기고 소수의 보따리상 '다이궁(代工)'이 수요를 대체했다. 당시 아모레는 다이궁을 공략하기보다는 현지 백화점에 직접 입점해 접점을 확대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반면 LG생건은 새롭게 큰손으로 떠오른 다이궁 수요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들을 잡았다.
여기에 더해 후는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금색, 붉은색을 콘셉트로 한 고급스럽고 화려한 디자인을 앞세웠다. 설화수가 은은하고 단아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담은 용기 디자인을 적용한 것과 차이가 있다. 후가 '펑리위안 화장품'으로 소문난 것도 한몫을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2014년 방한 당시 후를 구매했다고 알려지며 인기가 급상승하기도 했다. '왕후의 화장품'이라는 콘셉트가 중국 시장에 적중한 것이다.
후는 이러한 과정에서 글로벌 화장품 시장 격전지인 중국에서 쟁쟁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틈새를 빠르게 비집고 들어갔다. 설화수는 중국 한방 화장품의 왕좌를 내어주게 됐다.
◆ 코로나19 돌파, 럭셔리 브랜드가 '힘'
K뷰티의 최대 매출처인 중국 시장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뷰티 시장이다. 로레알, 에스티로더, P&G 등 글로벌 뷰티 공룡들이 중국 럭셔리 화장품 시장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로컬 브랜드들이 강세다. 지난해 중국 최대 쇼핑축제인 광군제(光棍節)에서 티몰(Tmall) 화장품 판매 1~5위는 로레알, 랑콤 등 글로벌 뷰티 브랜드가 포진했으며 후는 8위에 올랐다. 이 외 상위권은 모두 중국 로컬 브랜드였다.
아모레는 그간 럭셔리 브랜드 설화수와 중저가 브랜드 이니스프리를 앞세웠다.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중국 법인 브랜드별 매출 비중은 이니스프리가 38%, 설화수가 22%, 라네즈가 20%다. 반면 LG생건은 2조원대 메가브랜드 후를 앞세우고 럭셔리 브랜드 숨과 오휘가 뒤를 따른다.
코로나19 환경에서 탄탄한 럭셔리 브랜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중국이 경제 회복 페달을 밟으며 소비 심리가 회복돼 보복 소비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럭셔리 제품에만 국한됐다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의 보복소비는 럭셔리 브랜드 위주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후, 설화수 등 럭셔리 브랜드는 광군제 사전 예약 판매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나 중저가 브랜드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아모레는 럭셔리 브랜드 강화를 위해 올해 1월에는 롯데면세점과 손잡고 초고가 브랜드 '시예누'를 출시하기도 했다. 제품 개발에만 2년을 투자해 출시 당시 업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론칭 직후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며 다이궁과 유커를 상대로 제대로 마케팅도 펼쳐보지 못했다.
◆ 脫중저가·럭셔리 집중…빠른 선택이 미래 바꿨다
아모레의 중저가 브랜드도 어려움에 처했다. 3분기 이니스프리는 매출 803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38% 줄었으며, 영업손실 2억원을 기록했다. 에뛰드는 전년 동기보다 33% 감소한 매출 266억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손실은 51억원이다.
2017년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 영향에 K뷰티가 주춤하는 사이 중저가 시장에서 바이췌링(百雀羚), 퍼펙트 다이어리(完美日記) 등 중국 로컬 브랜드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한국 화장품이면 무조건 팔리던 시절이 끝난 것이다. LG생활건강은 지난 2018년 중저가 브랜드 더페이스샵의 중국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철수하고 온라인 채널과 헬스앤뷰티(H&B) 스토어에 입점하는 것으로 빠르게 전략을 바꿨다. 반면 아모레 중국 법인 매출에서 이니스프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3분의 1을 넘어, 설화수보다도 크다.
오프라인에 무게를 둔 채널 전략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됐다. 유통 채널의 무게가 온라인으로 기울며 자연히 오프라인 소비가 줄어들었다. 고정비용이 높은 오프라인 매장 운영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빨라졌다. 아모레는 지난해 말 기준 600개에 달하던 중국 이니스프리 매장을 520개까지 줄이고, 온라인 채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에뛰드의 경우 지난 8월 중국 내 모든 직영점 철수 결정을 내리고 H&B(헬스앤뷰티) 스토어 입점으로 전략을 틀었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어차피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럭셔리로 한정돼 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그 성장 여력이 어차피 중국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화수의 대 중국 브랜드력 제고가 중장기 실적 가시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설화수 전체 성장률은 아직 부진하더라도 중국 법인 설화수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성장한다면 투자심리를 제고시킬 수 있을 것이다. 후의 성장률 30%를 넘어선다면, 주가 모멘텀이 꽤 클 수 있으나 2017 년 이후 중국 사업에서 한번도 설화수가 후의 성장률을 넘은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