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유지 지원금과 관광 융자 등 정부 지원을 통해 겨우 버텨왔지만, 사태 장기화는 업계 붕괴를 부추겼다. 최근 몇 년 새 디지털 보편화에 따른 글로벌 OTA(온라인 여행사)와의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던 업계는 점점 버틸 힘을 잃어갔다. 업계는 "자가격리 일수 완화, 트래블버블 추진 등 업계 회복을 위해선 정부의 실질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업계 회복을 위해선 정부 지원과 규제 완화가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본지는 고사 직전에 처한 업계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여행업계 회복을 위한 과제와 업계 전문가 제언 등을 3회에 걸쳐 싣기로 한다. <편집자 주>
21세기는 디지털 시대다. 모바일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여행자의 패턴 역시 모바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여행업계는 현재 위기를 극복하고, 변화하는 여행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선 업계의 '디지털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으며 점점 여력은 잃어가는 업계 입장에서는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업계 자정 노력을 넘어 정부 지원을 애타게 바라는 이유다.
◆OTA의 성장...경쟁력 잃은 종합 여행사
해외여행 인구 3000만명·방한 외래객 2000만명 시대를 목전에 두었던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사태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층을 중심으로 변화하던 여행 트렌드를 등에 업고 나온 OTA와의 경쟁에서도 밀리기 시작한 종합 여행사는 '바이러스'라는 대외적 변수에 생사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도 내국인 해외여행 수요는 개별 여행객을 중심으로 지속 증가했다. 과거 단체를 중심으로 설계된 제한적인 패키지 여행상품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본인만의 특별하고 독특한 여행을 추구하는 개별 여행자가 늘기 시작했다.
디지털의 발달은 OTA 몸집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행 서비스 유통 구조 역시 플랫폼 기반의 OTA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변화했다.
개별 여행객의 증가와 첨단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등에 업고 해외 OTA는 줄줄이 한국시장에 진출, 비즈니스 모델을 다양하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시장 진출 초기 숙박 예약 분야에만 한정됐던 OTA는 항공 예약과 쇼핑, 렌터카를 비롯해 여행지 티켓, 체험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확장해 플랫폼 영향력을 높여나갔다.
상황이 이러니 패키지 상품이 주를 이루던 종합 여행사 이용 수요는 자연스레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 트렌드를 발 빠르게 따라가지 못한 여행사의 '굼뜸'도 매출 부진을 부추겼다. 패키지 여행을 대중화하며 승승장구해온 국내 종합 여행사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호텔부터 면세점, 문화사업 등을 통해 외연을 넓혀온 대형 여행사도 시스템 플랫폼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은 OTA를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하물며 중소 및 영세 여행사는 오죽했으랴.
패키지 투어의 기틀을 만든 영국 여행사 '토마스 쿡(Thomas Cook)'도 2018년부터 위기를 겪었다. 막대한 자금난을 겪다 파산한 이유는 변화하는 여행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적 운영 때문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대형 온라인 여행사가 주목받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토마스 쿡은 여전히 오프라인 대리점이 주를 이뤘고, 예약도 유선으로만 가능했다. 원하는 대로 스케줄을 짜는 밀레니얼 세대의 여행방식에서 동떨어진 운영방식이 도산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여행 패턴 변화의 바람은 36년 역사를 자랑하던 탑항공도 문을 닫게 했다. 1982년 설립해 2000년대 중반까지 전국에 150개 이상의 지점을 두며 승승장구하던 여행사가 폐업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비단 탑항공뿐 아니라 플랫폼과 콘텐츠 개발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침체기를 극복하려던 국내 여행사 다수가 코로나19라는 대형 변수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디지털 시대 여행 소비자에 주목하자
생사 갈림길에 선 여행사들은 임원 임금 반납과 전 직원 유·무급 휴가 등 자구책을 내놨고, 관광기금 융자와 국가 고용유지 지원금 등으로 힘겹게 버텨왔다. 하지만 매출이 없는 상황에서 사태가 장기화하자, 이제는 생존 자체가 힘들어졌다.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올해 안에 여행 수요를 예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는 힘들 전망이다. 전 세계 입국 제한조치가 풀리고 항공 운항이 정상화되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신규 기업의 진입은 많은 교훈을 안겼다. 제 아무리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갖춘 강자라고 해도 시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줬다.
숙박 공유 서비스 제공 기업 '에어비앤비(Airbnb)'는 공유경제 사업모델을 여행산업에 접목하며 돌풍을 일으켰고, 기업가치에서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1위 호텔체인 '힐튼(Hilton)'을 앞지르는 기염을 통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여행정보·서비스 제공 기업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는 여행지에 대해 직접 작성한 리뷰(review)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출발해 지금은 OTA와 호텔 체인 등이 제공하는 호텔 등 가격을 비교하고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 등을 추가하며 변화에 적응해 나갔다. 최근 몇 년 새에는 온라인 여행사 등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지 않고 트립어드바이저 사이트 내에서 바로 예약까지 마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확대하며 종합적인 여행 서비스 기업으로서의 모습도 갖췄다.
업체는 "장기적으로 더욱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경험을 온전히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의 욕구와 트렌드를 읽어내고 새롭게 비즈니스 모델을 정비해야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1위 여행사인 하나투어도 400억원을 투입해 새 여행 시스템 '하나허브'를 선보였다.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코로나19 이전에 유행하던 뻔한 패키지 상품은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향후 여행산업은 첨단기술과 결합한 시스템을 갖추고, 플랫폼 연계를 통해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도 확장하는 등 변화와 혁신을 단행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소·영세 여행사는 시스템을 갖출 여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대형 여행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금력이 약한 중소 여행사들은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도 없다. 정부가 나서서 발판을 마련해줘야 이들이 딛고 일어설 힘이 생긴다.
이미 스페인은 지난 2012년부터 스마트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한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싱가포르 역시 STB(Singapore Tourism Board)를 통해 빅데이터 관리 시스템과 관광정보·서비스 허브 센터를 구축, 데이터 기반의 개인 여행 마케팅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이제 달라진 여행 방식, 온라인으로 쏠린 여행 시장 등에 대응해야 한다"면서 "업계는 디지털 시대의 여행 소비자에 대해 주목하고, 정부는 시스템 구축 등 여행산업 회복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웃음 잃은 업계가 변화하는 시스템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외 사례처럼 정부가 나서 발판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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