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간 모피아…"누구를 위해 일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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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기자
입력 2020-11-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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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연합회·손해보험협회·생명보험협회·한국거래소 등 대부분 금융 관련 협회·기관장의 인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날이 갈수록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탓에 방파제가 돼 줄 만한 수장을 찾고 나서면서, 관료나 정치권 인사들이 줄지어 하마평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  일명 '모피아' 인사들이 관료 사회의 선후배 문화를 바탕으로 대관업무에 장점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들이 금융사만을 위한 로비로 인해 오히려 소비자는 뒷전에 두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에서 낙하산 출신 인사들의 전방위 로비로 금융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이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계속해 낙하산 관행이 이어질 경우 '제2의 사모펀드' 사태는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관료 출신 협회장, 인맥 활용 강점

손해보험협회를 시작으로 주요 금융협회들이 새로운 회장 선출에 나서면서, 대부분 후보들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관 출신 인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손보협회는 2일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단독 후보로 결정하며 사실상 차기 회장에 관 출신을 내정했다. 정 전 이사장은 재무부(현 기재부) 출신으로, 대표적인 모피아(Mofia) 낙하산 인사다. 모피아는 재무부의 영문 약자인 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로, 금융계의 재무부 출신 공무원을 지칭하는 말이다.

정 전 이사장은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을 거쳐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감독정책과장,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상임위원, 한국증권금융 사장 등을 거쳤다. 2017년 11월부터 지난 1일까지는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맡았다.

손보협회에 이어 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협회 차기 회장 역시 관 출신 인사가 대거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차기 은행연합회장에는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김용환 전 농협금융 회장, 이정환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등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임종룡 전 위원장은 재경부 출신으로 2015년 3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제5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최종구 전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과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SGI서울보증보험 대표, 수출입은행장, 금융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7년 7월 임 전 위원장에 이어 금융위원장에 취임해 지난해 9월에 퇴임했다.

김용환 전 회장은 금융위와 금감원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2국 국장을 거쳐 금감원 수석부원장, 수출입은행장 등을 거쳤다. 이정환 사장 역시 재경부 출신이다.

2014년 이후 두 차례 연속 민간 출신 협회장이 나온 생보협회 역시 차기 회장으로 관 출신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이 자리에는 손보협회장 자리를 고사한 진웅섭 전 금감원장과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이 거론되고 있다. SGI서울보증보험 사장직에는 서태종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과 유광열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 김광남 전 예금보험공사 부사장 등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거래소 이사장 후보로는 손병두 전 금융위 부원장과 민병두 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손 전 부원장은 기재부와 금융위의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 경제관료다. 민 전 의원은 17·19·20대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거래소 등 증권·금융 관련기관을 담당하는 정무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다.

주요 금융기관에 관 출신이 대거 하마평에 오르는 것은 대관에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관료의 특징인 선후배 인맥 등을 활용한 로비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금융사 한 관계자는 "과거 민간 출신 협회장과 관 출신 협회장의 대관 능력에 큰 차이가 있었다"며 "관료들의 끈끈한 인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관 출신 수장이 보다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6년간 207명··· 금융사 로비에 소비자는 뒷전

금융기관들이 대관을 이유로 관 출신을 선호하면서 최근 6년간 기재부와 금융위 등 경제관료 207명이 퇴직 후 금융기관으로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들 관료 출신이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포진하면서 금융소비자 보호보다는 금융기관 중심의 정책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최근까지 경제 관료 상당수가 117곳의 금융기관에 재취업했다.

서민금융진흥원,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기업은행,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산업은행 등 8곳의 금융공공기관 중에서는 산업은행(이동걸 회장)을 제외하면 7곳의 수장이 모두 기재부와 금융위 출신이다.

분야별로 보면 공공기관 45명, 은행 25명, 증권 45명, 생명보험 30명, 손해보험 36명, 협회 6명, 기타(카드·저축은행) 20명이다. 금감원 등 나머지 기관 출신 284명도 금융기관에 재취업했다.

이들은 금융기관에서 수억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지난해 신한은행에 영입된 관료 출신 상임감사의 연봉은 5억원으로 책정됐다. 이 밖에 국민은행과 전북은행 상임감사의 연봉은 각각 3억8000만원, 3억원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관료 출신이 금융기관에 잇따라 재취업하면서 금융소비자 보호보다는 금융기관의 이권 챙기기에 급급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근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모피아 출신인 이헌재 전 부총리가 고문이란 이름으로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이 사건에 모피아와 관피아가 관여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 관료들이 막강한 파워와 연대감으로 선후배를 끝까지 챙겨주면서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대관 역할을 하고 있다"며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당초 취지와 반대로 금융개혁을 방해하고 여러 부작용을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낙하산 방지는 물론 금융기관 자체 내부승진이 불가능하도록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진=아주경제DB]


◆초대형 금융사기 책임론에도 자리에만 혈안
하지만 근래 들어 낙하산 인사에 금융권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금융당국과 업계 사이의 유착을 지적하는 여론이 급격히 퍼지면서, 해당 관료 출신들이 금융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협회장으로 자리하는 관행에 부정적 시선이 짙어지는 형국이다.

불씨를 댕긴 것은 최근 불거진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건이다. 사기 투자 행각을 벌이며 결국 대규모 투자 손실을 낸 옵티머스운용에 금융당국이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일면서다. 검찰은 2018년까지 자본금 부족 문제를 겪을 정도로 부실했던 옵티머스가 1조2000억원을 끌어모으는 과정에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던 데 주목하고 있다. 각종 검사와 사업 승인, 펀드 설정, 운용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특혜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금감원은 지난달 초 라임자산운용에 업무상 기밀을 유출하고 향응 접대를 받은 자산운용검사국 소속 검사역에 대해 감봉 징계조치했다. 금감원은 6개월 전 해당 직원이 검찰 수사에서 적발됐는데도 손 놓고 있다가 펀드 사태가 심각해진 이달 초에야 징계를 내렸다. 문서를 넘긴 김모 팀장은 문서 유출과 관련해 아무런 내부 절차를 밟지 않았다.

금융당국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지만, 정작 금융당국은 퇴직 임원들의 ‘자리 나눠먹기’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모펀드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금융당국 출신 관료들이 금융권 협회장으로 선출되는 모습은 적절치 않을 수밖에 없다"며 "이들 관료 출신이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갔을 경우 소비자 보호보다는 제 식구 감싸기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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