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허벅지가 너무 닿아 뜨거운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순간 불쾌감이 확 올라 허벅지를 반대쪽으로 살짝 옮겼는데 눈치 없는 그 쩍벌남의 허벅지가 따라온다. 연신 뒤척이다가 결국 벗어놓은 외투로 맞닿은 허벅지에 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갑자기 그 쩍벌남이 내 쪽에 있는 주머니로 손을 넣더니 뭔가를 꺼내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팔꿈치가 자꾸 내 옆구리를 찔렀다. 꺼낼거면 빨리 꺼내지 연신 뒤적거린다. 결국 참다 참다 불쾌감을 표현했다.
그랬더니 쩍벌남... 왜 인상을 쓰냔다. 휴대전화를 꺼내려는 것 뿐인데 나보고 너무 예민하게 군다며 오히려 화를 내는게 아닌가. 나도 따졌다. 꺼내려면 빨리 꺼내지 왜 이렇게 꾸물거리냐. 그리고 자꾸 팔꿈치로 옆구리를 치는데 기분 안 나쁘겠냐고 맞받아쳤다. 우리의 말다툼은 싸움으로 이어질 뻔했지만, 옆쪽에서 마스크 시비가 붙어 욕설이 오가는 아찔한 상황이 되자 우리는 조용히 말다툼을 끝냈다. 결국 그 쩍벌남은 내리기 전까지 다리를 오므리다가 지하철에서 내렸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쩍벌남들...뉴욕은 체포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의도치 않은 신체 접촉이 생기는데 이 중 하나가 쩍벌남(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남자)과의 접촉이다. 2014년 현대엠엔소프트가 임직원 156명을 대상으로 출퇴근 꼴불견인 사람의 유형을 조사한 결과, 쩍벌남이 40%로 가장 많았다.
쩍벌남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맨스프레딩(mans preading)'이 2015년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 등재될 정도니 전 세계적인 민폐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각국에서는 쩍벌남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5월 인천교통공사가 쩍벌 예방용 발바닥 스티커를 전동차 내부 바닥에 붙이는 캠페인을 진행해 바르게 타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지난 2016년에는 ING생명이 분당선 전동차 좌석 바닥에 오렌지색 스티커를 부착하고 이곳에 발을 올려놓도록 유도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러시아에서는 지하철 쩍벌남들을 응징하는 영상이 올라와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영국 일간지 메트로 등 외신에 따르면 법대생이자 활동가인 안나 도브갈렉은 지하철 안에서 불편을 주는 쩍벌남에게 다가가 그들의 가랑이에 무언가를 뿌린다. 물과 표백제가 혼합된 이 물에 맞은 남성들은 매우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거나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일부 남성들은 화를 내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해당 영상에 '속이 시원하다' '쩍벌남을 응징해라" 등 호응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이건 응징이 아니라 모욕을 주는 것' '오히려 이 여자가 민폐' 등 비난 여론도 거셌다.
한국에서도 쩍벌남을 응징하는 영상이 올라와 이슈가 됐었다. 2010년 한 포털사이트에 '지하철 쩍벌남'이라는 제목으로 26초 분량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해당 영상에서는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남성에게 한 여성이 하이힐로 일격을 가한다. 남성이 당황하는 순간 지하철 문이 열리고, 여성은 재빨리 하차해 도망간다. 이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쩍벌남 응징녀'라고 부르기도 했다.
남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쩍벌남과 함께 거론되는 것이 바로 '다꼬녀'다. 다리를 꼬고 앉는 여자를 뜻하는 다꼬녀는 쩍벌남과 마찬가지로 다리를 꼬고 앉아 한쪽 다리가 옆이나 앞으로 튀어나와 옆사람이나 앞사람에게 불편을 줘 민폐 대상자로 꼽힌다.
쩍벌남, 다꼬녀들은 얘기한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벌어지고, 다리를 꼬지 않으면 불편하다고... 그런데 자신의 불편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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