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흑인여성 부통령] ①최초, 최초, 최초…카멀라 또다시 새로운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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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0-11-09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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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힌두교 여신 이름을 딴 카멀라…"어머니 나를 강한 여성으로 키워"

  • 흑인, 여성, 이민자 등 미국 내 비주류 상징 부상하며 영향력 상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에 대한 미국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7일(이하 현지시간) 승리 연설을 위해 연단에 오른 카멀라는 여성 참정권을 기리는 뜻의 하얀 슈트를 입었다. 인종차별반대 운동에 앞섰던 존 루이스 하원의원의 유명한 말 "민주주의는 상태가 아닌 행동이다"로 연설을 시작한 카밀라는 최초의 흑인, 여성, 남아시아 출신 부통령이라는 자신의 상징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인상적인 연설을 남겼다.

고령의 바이든 후보를 보좌하고 있으며, 유색인종과 여성, 이민자라는 미국 내 비주류 집단을 고루 상징하는 카밀라는 향후 바이든 정부에서도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진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대선 승리 축하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해리스가 취임하면 미국에서 첫 여성 부통령, 첫 흑인 부통령, 첫 남아시아계 부통령으로 기록된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인도 출신 어머니 큰 영향···"강한 여성으로 키웠다."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카멀라 해리스는 인도 출신 암 연구자 샤말라 고팔란과 자메이카 출신 경제학자 도널드 해리스의 장녀다. UC 버클리 대학원에서 만난 두 사람은 민권 운동 커뮤니티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멀라라는 이름은 그의 어머니인 고팔란이 지은 것이다. 힌두교에서 풍요와 부 혹은 행운의 여신으로 불리는 락슈미의 또 다른 이름이자, '연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곧 여성의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2004년 해리스는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을 숭배하는 문화는 강한 여성을 만들어낸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멀라의 어머니고팔란은 10여 년 전 암으로 별세했다. 그러나 해리스는 공식 석상에서 종종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을 표현해왔다. 해리스가 7살이 되던 해 이혼한 뒤 혼자서 자신과 동생을 맡아서 키우면서도 당당하고 강한 여성으로 길러내기 위해 노력했던 어머니의 삶은 해리스에게 그 자체로 큰 유산이었기 때문이다.

엄격한 교육을 통해 자식들이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답을 찾아볼 수 있도록 충고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성장을 도왔다고 해리스는 회고한다. 자서전에서 해리스는 어린 시절 흑인 침례교와 힌두교 사원 둘 다를 다녔다면서 "어머니는 자신이 두 명의 흑인 딸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이해했다"면서 "우리가 자신감 있고 자랑스러운 흑인 여성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밝혔다.

카멀라 당선인 7일 연설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재차 표현했다. 당선인은 "오늘 나를 있게 해준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은 19살에 인도에서 미국으로 왔다. 당시 그는 이런 순간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미국에서는 이런 순간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그와 그 세대의 여성 미국의 역사를 통과해온 흑인 여성, 아시아인, 백인, 라틴 아메리카인, 미국 원주민 여성들을 생각한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한 길을 닦아왔으며, 모두를 위한 평등, 자유 정의를 위해 싸웠으며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특히 흑인 여성들은 역사에서 흔히 간과되는 존재지만, 많은 순간 우리 민주주의의 중추를 구성해왔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이민자 가정의 출신이기는 했지만, 어머니인 고팔란의 집안은 인도 엘리트 집안으로 외할아버지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고위공무원이었으며, 할머니는 빈민 여성들에게 산아제한을 가르치며 농촌에서 활동했던 할머니를 두었다. 어머니 코팔란 역시 대학 내 암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어머니의 근무지인 몬트리올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쳤다.

이후 카멀라는 지난 1873년 흑인들에게 고등교육을 제공한 목적으로 미국 의회가 설립을 인가했던 하워드 대학교에 진학해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쿨에 진학했으며, 1990년 오클랜드 알라메다 카운티 검찰청에서 성범죄 전담하는 지방검사 보조로 입사했다. 당시 가족들은 검사라는 직업에 대한 평판이 나쁜 것 때문에 카멀라의 선택을 탐탁치 않아 했지만, 카멀라는 내부에 들어가서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지검으로 일자리를 옮긴 뒤 카멀라는 2003년 첫 공직선거 운동에 나선다.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로 출마한 그는 56.5%의 득표로 결선투표에서 당선됐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흑인 여성 지방 검사의 탄생이었다.

2010년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에 출마해 0.8%p(포인트) 차로 승리하면서 또다른 기록을 세웠다. 법무장관으로서의 대표적 업적 중 하나는 대중에게 형사재판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인 오픈 저스티스(Open Justice)를 만들어 경찰의 책임 소재를 투명하게 한 것이라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2016년 연방상원의원 선거를 앞두고 24년간 캘리포니아를 대표했던 바버라 복서가 은퇴를 밝히자 해리스는 출마를 선언했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후원을 받으며 당선된다. 연방상원의원에 오른 첫 남아시아계이자 흑인 여성으로는 두 번째다.

이후 2017년 당시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 내정자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세션스 전 법무장관은 "카멀라의 질문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 청문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더욱더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해리스는 당선인은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선거전에 직접 출마하기도 했다. 이후 지난 2019년 12월 3일 선거운동을 종료했으며, 2020년 8월 11일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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