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의 효과가 90% 이상이라는 낭보가 들려왔다. 각국의 기대 속에 의료단체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백신 접근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높은 장벽은 결국 코로나19의 완전 종식을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백신 접근성에 대한 고민과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지난 2018년 ‘백신의 공정한 접종을 위한 가격 적정성’ 연구 결과를 통해 새로운 백신이 개발되면, 이들 백신은 높은 가격으로 출시돼 완전한 면역력 구축에 드는 비용을 크게 증가시켜 왔다고 지적했다. 또 높은 가격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백신을 도입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해 왔다고 짚었다.
◆백신·치료제에 대한 접근성 중요…“방역 불균형 해소해야 코로나19 종식 가능”
이를 의식한 듯 화이자와 백신 공동 개발사인 독일 바이오엔테크 라이언 리처드슨 전략 부문장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온라인 행사에 출연해 “접근성이 전 세계에 널리 확보될 수 있도록 백신의 가격을 시세보다 낮게 책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 세계 지역별로 백신 가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리처드슨 부문장의 발언으로 코로나19 백신 접근성에 대한 우려는 일부 사라졌다.
국내에서도 ‘’방역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다. 류충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5일 서울에서 류 센터장을 만나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물었다.
류 센터장은 “코로나19의 완전 종식을 위해서는 각국의 경제 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는 방역 불균형을 개선해야 한다”며 “국내에서 코로나19 관리에 성공했더라도, 해외에서 계속 유행한다고 가정하면 완전 종식은 어렵다”고 말했다.
일례로 미국에 공급될 화이자 백신의 1인당 접종 비용은 39달러(약 4만7000원)로 독감 백신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하루에 2200원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층이 전 세계 인구의 1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은행(WB)이 전 세계 빈곤 현황 조사 결과 코로나19 사태로 8800만~1억 1400만명이 추가로 극빈층으로 전락했다고 보도했다. 세계은행은 1일 생활비 1.9달러(약 2200원), 1년 생활비 700달러(약 81만원) 이하를 버는 계층을 극빈층으로 분류한다. 이들에게 미국에 공급하는 코로나19 백신 가격 39달러는 너무나 높은 장벽일 수밖에 없다.
류 센터장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더라도 접근성에 제한을 두면 ‘방역의 불균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코로나19 종식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정부가 고민할 시기”라고 밝혔다.
◆K-방역 성과는 “사전 준비·속도·지리적 특성이 맞물린 결과”
류 센터장은 지난 1월 코로나19 국내 발병 후 한국이 보여준 K-방역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K-방역의 성과 요인으로 △진단키트 확보 등을 통한 신속한 대응 △메르스를 겪으면서 준비한 음압병상 등 의료체계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신속한 인지 등을 꼽았다.
류 센터장은 “진단은 시간과의 싸움이다”라며 “우리는 높은 품질의 진단키트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발병하자 이를 즉시 활용해 진단-치료-추적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진단키트는 K-방역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산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출실적이 올해 9월까지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확한 금액은 1조3956억원(12억200만 달러)으로, 전년도 체외진단시약 전체 수출액(4855억원)과 비교해 187% 증가한 규모다.
높은 신뢰성과 대량 생산으로 국산 진단키트는 아직도 해외애서 공급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이달에만 휴마시스가 코로나19와 독감 동시 진단키트 유럽 인증을 획득했으며, 휴메딕스는 코로나19 항원키트로 러시아 긴급사용승인을 획득했다. 또 한국콜마가 러시아에 코로나 진단키트 수출을 확정지었다.
또 류 센터장은 “2016년 메르스를 겪으면서 추가된 음압병상 등도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효과적인 K-방역 구축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16년 당시 보건복지부와 질병광리본부(現 질병관리청)가 배포한 메르스 대응지침을 보면 메르스 환자는 입원 치료기간 동안 감염병관리기관이나 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이 지정한 의료기관의 음압병상에 입원 격리 치료토록 하는 등 읍압병상을 적극 활용토록 하고 있다. 이때 음압병상 중요성과 부족한 현황이 공론화되면서 음압병상을 추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도 코로나19에 신속히 대응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류 센터장은 “미국이나 유럽 등이 아직 코로나19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할 때 우리는 중국에서 확산 중인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재빨리 인지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면서 “이웃국가에서 유행중인 감염병에 빨리 대처해 K-방역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월 3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폐렴 집단 발생이 보고됨에 따라 ‘우한시 원인불명 폐렴 대책반’을 가동했다. 이어 우한시 발 항공편 국내 입국자를 대상으로 발열 감시 및 검역을 강화했으며, 중국 우한시 방문‧체류 후 발열과 호흡기증상이 있는 경우 검역조사를 실시했다. 또 의심환자는 격리조치 후 진단 검사를 시행토록 하는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신속한 조치를 단행했다.
◆“위드코로나 시대는 뉴노멀이 노멀이 되는 세상”
류 센터장에게 ‘위드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는 자세를 물었다. 그는 “앞으로의 코로나19 대응은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정상상태)이 노멀(Normal·정상상태)이 되는 것”이라며 “위드코로나 즉, 코로나19의 일상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카페에서 테이블 간격이 멀어지고, 마스크가 일상화되고, 재택근무나 비대면 회의가 이제는 일상화되는 것이 뉴노멀이 노멀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류 센터장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사람, 사회 모두 코로나19와 더 나아가서 또 다른 감염병에 대비해 진화해야 한다”며 “꼭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라 정신적, 사회 시스템 등 모두를 아우르는 의미에서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충민 감염병연구센터장은 누구?
류충민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감염병연구센터장은 2002년 미국 오번대학교에서 식물병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식물과 미생물의 상호작용을 활발히 연구해왔으며, 류 센터장은 슈퍼박테리아, 미생물 등의 연구 부문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지난해 3월 이달의 KRIBB人으로 선정됐다. 당시 국내 연구진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꿀벌부채명나방에서 폴리에틸렌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군을 발견했으며, 이를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저널인 셀 리포트지에 논문 게재했다.
현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코로나19 치료제·백신 등에 대한 연구 및 지원업무는 물론 각 정부 부처, 연구기관 등의 자문과 강연 요청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3월 이달의 KRIBB人으로 선정됐다. 당시 국내 연구진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꿀벌부채명나방에서 폴리에틸렌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군을 발견했으며, 이를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저널인 셀 리포트지에 논문 게재했다.
현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코로나19 치료제·백신 등에 대한 연구 및 지원업무는 물론 각 정부 부처, 연구기관 등의 자문과 강연 요청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