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 / 사진=한국테크놀로지그룹]
[데일리동방] 한국타이어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기업이다. 이렇게 형인 조석래 명예회장 못지않게 탄탄한 혼맥을 일군 것이 바로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이다.
▲ 검소한 은둔형 경영자 조양래 회장...처남에 경영 맡겨
조 회장이 처음부터 한국타이어를 맡았던 것은 아니다. 1963년 효성물산에 입사했고 1968년 동양나일론 이사에 올라 1969년까지 재직했다. 이후 1969년 한국타이어 상무가 되면서 한국타이어와 인연을 맺었다. 1971년 한국타이어제조 전무이사로 승진했고 1978년 부친 조홍제 창업주로부터 한국타이어를 사실상 물려받아 1979년 사장에 올랐다.
대외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은둔형 경영자로, 국산 구두 한 켤레를 5년 이상 신을 만큼 검소하다고 알려져 있다. 직원들과 식당에 갔는데, 신던 구두가 너무 낡아서 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조 회장의 구두를 찾지 못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처럼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던 형과는 대조적인 성격의 조 회장이 형과 같은 행보를 보인 한가지가 바로 혼맥 관리다.
조 회장은 홍긍식씨의 딸인 홍문자 여사와 결혼했다. 이후 한국타이어에는 조 회장의 처남인 고(故) 홍용희 전 외환은행장과 홍건희씨가 고문 등을 맡아 경영에 참여했다.
▲ 장녀·장남 혼사로 전(前) 중국대사·대한전선 창업주와 인연
조양래 회장과 홍 여사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수학과 교수이자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인 장녀 희경씨는 노재원 전 중국 대사의 아들이자 연세대 법대 교수 노정호씨와 혼인했다. 차녀인 희원씨는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장녀 희경씨와 차녀 희원씨는 지주사와 계열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을 뿐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남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대표이사 부회장은 한국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한 뒤 미국 힐스쿨 포츠타운고등학교와 시러큐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미국에서 미쓰비시상사에 입사해 2년간 경험을 쌓은 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에 입사했다. 이후 글로벌 해외영업본부장, 마케팅본부장,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을 거쳐 총괄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직원들과 족구를 자주 하는 등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 시스템을 바꾸고 여직원들의 육아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동그라미 어린이집’을 만드는 등 사람 중심 경영을 중요시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과 절친한 사이다. 세 사람은 경복초등학교 동창으로 4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차동환 카이스트 교수의 딸인 차진영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차 교수는 고 설경동 대한전선그룹 창업주의 둘째 사위로, 설 창업주의 차녀 설영자 여사와 결혼했다.
▲ 조현범 사장 결혼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LG家와 혼맥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가운데)의 결혼식 가족 사진. 장인 이명박 전 대통령(앞열 왼쪽)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이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에 입사해 영업과 마케팅, 경영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마케팅본부장에서 지주회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경영기획본부장으로 옮겨 그룹의 전략과 기획을 맡았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서 인적분할 된 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에 선임됐고, 현재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형 조현식 부회장과 비슷하게 직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스포츠와 레저활동도 수시로 함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자 자리로 찾아가 보고를 받거나 직원들과 식사와 차를 함께하는 경우도 많으며, 여성사원 전용 휴식공간·수유실 등 복지시설도 만들었다. 변화에 민감하며 유행에 밝다는 평가가 많은데,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기업의 표어 ‘드라이빙 이모션’에도 조 사장의 안목이 반영됐다고 한다.
2001년 9월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3녀 수연씨와 결혼했다. 수연씨의 큰아버지 이상득 전 국회의원의 사위가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의 아들 구본천 대표다.
조홍제 창업주는 197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세 아들에게 휘호를 하나씩 써줬다고 한다. 조석래 명예회장에게는 ‘덕을 숭상하면 사업이 번창한다’는 숭덕광업(崇德廣業)을, 조양래 회장에게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힘쓰라’는 자강불식(自彊不息)을, 조욱래 전 회장에겐 ‘준비하면 걱정이 없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써 줬다.
신기하게도 조 창업주의 휘호와 같이 효성그룹은 사업을 크게 키워 성장하고 있고, 조양래 회장은 아직도 회장직을 유지하며 자녀들을 지켜보고 있다. 조욱래 전 회장과 일가는 IMF에 대응하지 못해 고난을 겪었지만, 현재는 어려운 호텔업계에서 살아남고 있다.
효성가(家)가 이처럼 명맥을 유지하는 데에는 혼맥으로 이어진 인연들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효성그룹도 일가의 40%가 일반인과 결혼했을 만큼 그룹 강화를 위한 혼사는 점점 줄고 있지만, 효성가의 역사는 결혼을 통한 정·재계 인맥 관리가 기업가에 있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분명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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