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TV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한 기억이 있다.
이 스토리에 영감을 준 것은 알렉상드르 뒤마 2세의 소설 ‘동백꽃 여인’으로 추정하는데,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었을 주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도 이 소설에 영감을 받았다.
이탈리아어 ‘라 트라비아타’는 길을 잃은 여인이라는 뜻이다. 제목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전체적인 이야기는 ‘비련의 여인’과 그녀의 기구한 운명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오페라에서 유명한 노래는 축배의 노래(Brindisi)다.
1막의 화려한 파티와 사랑 고백에 이어, 남 주인공 알프레도 아버지의 거짓말로 이별을 하며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비극의 길을 걷게 된다. 2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오페라는 마지막 10분 감정의 절정에 이른다. 19세기 당시 만연한 폐결핵에 걸린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와 그 아버지의 속죄 속에 마지막 슬픈 아리아를 남기며 세상을 버린다.
칼럼 제목에 ‘라 트라비아타’를 가져온 것에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최근 수년간 이어지는 금융 산업의 상황이 금융소비자를 길 잃은 비올레타로 만들어 가는 것도 있지만, 이보다는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고집해 오던 고전경제학자의 신념을 불편하게 만들며,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천재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조언을 얻기 위해서다.
카너먼은 그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라 트라비아타’ 공연을 관람한 경험을 통해 결코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의 특성 중 하나를 소개한다. 공연에는 2시간 동안 환희·축복·배신·절망 등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관람자에게 ‘라 트라비아타’를 각인(刻印)하는 것은 마지막 10분이라는 것이다.
바로 경험보다 기억에 의존하는 인간의 특성인데, ‘정점(頂點)과 종점(終點)의 원칙’, ‘지속시간 무시’로 요약된다. 필자는 줄여서 ‘라 트라비아타 효과’라고 부르고 싶다. 대장내시경 검사가 초기에 수면 검사가 아니었던 때가 있었다. 심리실험에 따르면 고통스럽게 아주 짧은 시간 검사하는 것과 덜 고통스럽게 긴 시간 검사하는 것 중 검사 받는 사람은 후자를 덜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다.
또한 훌륭하게 연주된 교향곡을 넋을 놓고 오랜 시간 듣다가, 마지막 순간 음반의 흠집으로 잡음이 크게 들리면 ‘음악감상을 통째로 망쳤다’고 느끼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전체적인 고통과 쾌락은 정점과 종점에서 받은 느낌의 평균이고 종점 이전에 지속된 시간은 잊힌다. 행동을 결정하는 데 ‘시종일관’보다는 ‘유종의 미’가 중요한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오래된 생존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사회를 형성하기 이전의 연약한 인간이 야생에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오랫동안 만들어온 본능이라는 것이다.
11월 들어 사모 펀드와 관련된 불편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금감원은 횡령, 돌려막기를 포함해 ‘공공’이라는 이름을 더럽힌 옵티머스 펀드에서 단지 8~15%만 회수가 가능하다는 실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울러 펀드 관리 과정에서 수탁은행의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사기 방조 혐의로 검찰에 통보하기도 했다. 옵티머스 펀드 판매사는 6개로, 징계는 진행 중이다.
한편 부실 확인 후 판매 혐의로 100% 보상이 일부 적용되는 라임 펀드 판매 증권사에는 금감원이 중징계를 최근 통보했고, 이에 따라 판매 은행들도 DLF 펀드 사태 책임 징계 후 추가적인 징계를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사모펀드에 대한 우려가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P2P 대출 사기에 투자하거나 라임펀드에 이어 다시 TRS를 통한 과도한 레버리지로 99% 손실이 발생한 사모펀드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운용사는 운용 능력에서 벗어나는 미확인의 기대 수익을 내세워 미끼형 상품을 만들었다. 또한 관련 판매사, 수탁사들은 금융소비자를 현혹하기 쉬운 숫자에 기대는 동시에 펀드 위험을 떠넘길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여 수수료 수입에 목매고 있는 것이 참기 힘든 금융산업의 모습이다.
이러한 현실을 가리려는 프레임인지 감독책임이 먼저라거나 금융회사 CEO가 억울한 면도 있다는 일부 언론의 지원 사격도 이어진다. 이에 업혀 금융회사는 CEO를 위해 불복 소송을 이어간다. 일부 금융회사 CEO의 연임, 보너스를 추구하는 경영 효과는 첫째, 금융회사의 대리인 비용이 증가하고 둘째, 여기에 매달리는 조직의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며 셋째, 이러한 상황의 금융산업은 법조인과 어뷰징 언론사의 미래 수종산업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3월 제정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월 28일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이로써 2021년 3월 25일 시행 예정인 금융소비자보호법은 한 걸음 더 나아갔고, 법 시행 후에 금융회사, 특히 판매사의 의무와 책임은 더 무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금까지 금융회사의 편익과 이익 추구에 유리하도록 설계했던 금융 산업의 경영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정확한 이해보다는 경영 이익을 핑계 삼아 재임(再任)과 금융 권력, 인센티브에 올인하는 금융 CEO가 경영하는 금융회사의 대리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제 금융회사의 주주와 애널리스트는 ‘무엇이 중한디!’ 하며 다시 물어야 한다.
지난해, 2008년 금융위기 10주년을 맞아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금융 산업의 맹목적 보호와 규제 완화, 이를 이용한 금융 권력이 중심이 돼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지금 한국금융 산업의 도덕적 해이는 정점에 이른 것을 필자만 감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대로 지속하면 위기가 올 수 있지 않을까 겁이 난다. 일부 사모펀드의 문제로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지금 금융산업이 도덕적 해이의 정점임을 인정하고 금융소비자가 고통을 기억하지 않도록 그 수준을 빨리 낮춰야 한다.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 결과에 의한 처방은 추(醜)한 금융회사의 민낯을 금융소비자가 기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경제학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들의 주장은 아직 소수로 분류하지만, 설득력 있는 또 다른 연구 결과는, 인간은 이익과 비교해서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전망이론’이다. 금융소비자가 최근 금융산업의 상황을 금융소비자의 일부나 일시적 손실이 아닌 금융소비자 전체로 확산 가능한 지속적 손실로 인식하면, 금융 산업의 이탈이라는 비극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내 금융 산업의 경쟁자는 IT 대기업, 아마존 같은 온라인 공룡 등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될 수 있다. 금융소비자가 대체할 선택지는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의 마지막 장면, 비올레타는 숨을 거두며 알프레도의 손에 초상화가 담긴 펜던트를 손에 쥐여주면서 말한다. “연인이 생기면 축복한다고 전해주세요.” 금융소비자가 초상화를 남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라 트라비아타 효과’의 교훈을 주목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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