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기울어진 韓中 외교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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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20-11-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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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25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 이번 그의 방한은 지난해 12월 4∼5일 이후 약 1년 만으로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그의 방한은 4년 8개월 만에 이뤄졌다. 바로 옆에 있는 이웃나라인 한국을 자주 방문하지 않는 이유 때문일지 몰라도 왕이 외교부장과 같은 중국 고위급 인사가 올 때마다 외교부와 언론 등 우리 측 대응은 지나치다 할 정도로 요란하다. 왜 그런지 몇가지 이유를 분석해본다. 

우선 이들의 방한은 매우 간헐적으로 이뤄진다. 우리 고위급 인사들의 빈도수에 비해 중국 측의 방한 횟수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중국 정상들의 방한은 우리 대통령 임기 내 한번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 정상들 중 복수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이는 후진타오뿐이었다. 그의 두 차례 방한 이유는 임기 중 두명의 한국 대통령(노무현과 이명박)이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G-20 정상회의와 같은 국제행사가 국내에서 개최되었기에 재방문이 불가피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1992년 이후 총 11번 중국을 방문했다. 반면 중국 국가주석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은 총 5번에 불과하다. 김영삼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 한번씩 방문한 것 외에 모두 중국을 복수 방문했다. 물론 여기에는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2014년의 APEC 정상회의와 2016년의 항저우 G-20 정상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함도 포함된다. 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은 각각 두번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에 국빈방문을 했고, 2015년에는 중국의 국가행사에 참석했다.

둘째,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중국 최고지도자들뿐 아니라 중국 정부 고위인사들의 방문도 드물다. 이런 이유로 우리 정부와 언론의 관심도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가령, 방한한 중국 총리는 세명에 불과하다. 리펑(李鵬) 전 총리가 1994년, 주룽지(朱鎔基)는 2000년, 원자바오(溫家寶)가 2007년과 2010년에 두 차례였다. 중국의 국방장관은 단 세번(2000, 2006, 2015년)밖에 방문하지 않았다. 국방장관의 상호방문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와 군사적으로 대치중인 북한에 대한 의식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장이 국가 정상의 수행단원으로 방문한 것을 제외하고 단독 방문한 적도 많지 않았다. 첸지천(錢其琛) 전 외교부장은 1994년, 탕자쉔(唐家璇)은 1999년과 2002년, 리자오싱(李肇星)은 2003년, 양제츠(楊潔篪)는 2008년, 2011년과 2012년에 방한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2014년과 2019년에 방문했다. 지면 관계 상 모두 나열할 수 없지만 국방장관을 제외하고 우리 장관의 방중은 중국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셋째, 아마도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문으로 그간 우리를 섭섭하게 했던 양국간 이슈가 해결될 것이라는 과한 기대감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늘 그랬듯이 대부분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해왔다. 이번 왕이 방문에 대해서도 우리는 또 다른 기대를 하고 있다. 작년에도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우리는 왕이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답방에 관한 메시지를 가져올 것을 기대한다.

중국은 이번에도 우리 한국과 여러가지 산적한 문제의 해결에는 큰 관심이 없을 듯하다.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 목적은 미국의 신정부 출범과 함께 제기될 한·미 양국 현안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관심사는 오로지 시진핑의 답방 여부에 있다. 참으로 씁쓸한 광경이다.

우리가 중국을 대하는 외교가 특정 안건, 특히 지도자의 관심사에 매몰되다보니 우리의 국익과 권익은 항상 뒷전이었다. 이 같은 자세로 일관하는 결과는 하나다. 우리나라가 건국 이래 견지해온 가치와 이념을 타협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외교의 목표와 원칙이 있다한들 지켜질 리 만무하다. 우리의 국익과 권익이 자연스럽게 희생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번 정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 정부와 지도자들의 전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탈북자 송환문제와 이들의 중국 내 인권문제에 입도 열지 못했다.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가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가진 한·중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문에 이 문제를 포함시키지도 못했다. 대신 우리는 2006년에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해줬다.

2010년의 천안함 피폭사건과 연평도폭격사건에서도 북한의 명백한 도발과 우리 국민의 희생에 대한 중국의 대북 지탄을 확보하지 못했다. 북한의 핵위협이 명확한 가운데 우리의 국방과 안보를 위해 배치한 방어무기에 대한 중국의 이해는 추호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 조치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한반도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이 남북한 모두에게 동시에 제재를 가하는 양상을 넋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중국은 우리의 영해와 영공마저도 침범하고 있다. 2013년 이후 지속된 중국의 침범행위는 2019년에는 급기야 독도로까지 확산되었다. 중국에서 발행되는 모든 지도에는 우리의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 다른 나라나 외국 기관의 동일한 행각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하고 수정을 요구한다. 중국의 불법조업은 우리의 서해바다에서만 이뤄진다는 이야기는 옛말이다. 동해로까지 확대되면서 우리의 해양자원주권이 극심한 침략을 받고 있다. 이 모든 것에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다.

중국인권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고개를 돌린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홍콩보안법과 관련하여 미국이 중국 내의 미국인과 미국기업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가로서 무책임한 행위라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사전에 중국을 향해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면서 국민과 기업을 안심시키려 한다. 우리 정부도 이런 국가적 의무감과 사명감을 가져야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행태를 보면 동 법안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중국 교민과 기업이 동 법안에 의해 구속되고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의문스럽다. 홍콩보안법을 묵인하는 정부의 처사는 우리 중국 교민과 기업의 권리와 권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가치와 이념을 희생하면서 이권과 이득만을 추구하는 잘못된 외교의 교훈을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미국의 가치와 이념을 희생하면서 국가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했다. 그러면서 그의 개인적 영욕을 동시에 취하려 했다. 즉, 미국의 가치와 이념을 이익과 타협한 것이다. 그는 2019년 천안문 민주화사태 30주년, 홍콩보안법의 채택, 신장위구르족의 강제수용과 티베트문제에 대해 함구했다. 아니 논평조차 내기를 거절했다.

트럼프의 이런 모습은 미국 국내 문제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60년대 이후 인종문제의 최대 위기, 남북전쟁 이후 최대 분열과 베트남전쟁 이후 글로벌 리더십이 제일 위협받는 국면을 자초했다. 그는 중국과 미국의 가치와 이념을 타협하면서 무역협정을 타결하고 이를 재선의 발판으로 이용하려 했으나 결과는 재선의 실패였다. 가치와 이념은 리더십의 토대이고 기본이다. 이를 희생하면서 취한 이익은 리더십 수호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외교적 교훈을 거울삼아 우리가 대 중국 외교 자세를 가다듬을 시기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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