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25~27일 2박 3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왕 부장은 출국 직전까지 문재인 정부 인사는 물론 정치권 인사들을 두루 만나며 한중 간 협력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왕 부장은 이번 방한 기간 한국이 중국의 이웃국가임을 강조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속 양국의 교류와 협력을 높게 평가했다. 또 앞으로도 양국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중관계를 ‘수망상조(守望相助·어려울 때 서로 협조하며 대응한다)’로 표현하며 “코로나19 시련을 견뎌내서 지금 강인성을 그리고 더 활력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9일 외교가에서는 왕 부장의 이번 방한을 두고 ‘한국이 중국에 꼼짝하지 못한다는 것이 재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6일 본격적인 방한 일정을 시작한 왕 부장은 첫 일정부터 ‘회담 지각’이라는 외교적 결례를 범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왕 부장은 당시 오전 10시에 시작예정이던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25분이나 늦었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왕 부장 측은 회담 시작 20분 전인 오전 9시 40분경에 사정이 생겨서 늦을 것 같다며 사전 양해를 구했고,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26일 오전 10시 21분경 외교부에 등장한 왕 부장은 왜 늦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트래픽(Traffic·교통체증)”이라는 단어로만 대답하고 서둘러 회담장으로 이동했고, 사과는 없었다.
왕 부장이 이번 방한 때 묵었던 숙소는 외교부 청사와 멀지않은 시내의 한 호텔이었다. 해당 호텔에사 외교부가 있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까지는 약 6km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길이 막힌다고 해도 30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왕 부장이 외교부에 도착한 시간은 늦는다고 양해를 구한 시간보다 40분가량이 늦은 오전 10시 21분이었고, 차가 많이 막히는 출근 시간대도 아니었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라는 국가 간 공식 회담에 1~2분도 아니고 20분 이상 ‘지각’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더군다나 왕 부장은 한국을 오기 전 일본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상,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을 만날 때는 늦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왕 부장이 회담 이후 가진 강경과 외교부 장관과의 오찬에서 사과 인사를 전하는 등 자신으로 인해 회담이 지연된 것에 대해 재차 양해의 뜻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왕 부장의 문 대통령 예방을 두고도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외교 전문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친서도 가져오지 않은 왕 부장을 문 대통령이 왜 만났는지 모르겠다”면서 “자꾸 이런 모습이 연출되니 대중(對中) 저자세 비난이 나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 전문가는 문 대통령과 왕 부장 간 접견이 오히려 시 주석의 방한을 연기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왕 부장은 시 주석의 연내 방한에 대해 코로나19를 완전히 통제해야 가능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서창배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최근 통화에서 왕 부장의 이런 행보는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약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왕 부장의 이번 방한에는 중국의 다급함이 담겨있다. 근데 정부는 중국의 약점을 이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약점인 북한 문제를 다시 언급했다”고 꼬집었다.
현재 중국은 미·중 전략적 경쟁으로 외교적 고립에 빠져있다. 이 때문에 주변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왕 부장이 코로나19 재확산 위기 속에서도 일본과 한국을 연이어 찾은 이유도 주변국과의 협력 동력을 찾기 위한 다급함 때문이었다.
한국은 이런 중국의 다급함을 역이용해 한중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약점인 북한 문제를 또 꺼내면서 주도권을 다시 중국에 넘겨줬다는 지적인 셈이다.
서 교수는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큰 문제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북한 문제’라는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알고 있다”면서 “우리가 다급하더라도 이를 중국에 보여서는 안 됐었다. 협상 레버리지(지렛대)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서 교수는 “왕 부장의 이번 방한에는 중국의 다급함이 담겨있다. 근데 정부는 중국의 약점을 이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약점인 북한 문제를 다시 언급했다”고 꼬집었다.
현재 중국은 미·중 전략적 경쟁으로 외교적 고립에 빠져있다. 이 때문에 주변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왕 부장이 코로나19 재확산 위기 속에서도 일본과 한국을 연이어 찾은 이유도 주변국과의 협력 동력을 찾기 위한 다급함 때문이었다.
한국은 이런 중국의 다급함을 역이용해 한중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약점인 북한 문제를 또 꺼내면서 주도권을 다시 중국에 넘겨줬다는 지적인 셈이다.
서 교수는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큰 문제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북한 문제’라는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알고 있다”면서 “우리가 다급하더라도 이를 중국에 보여서는 안 됐었다. 협상 레버리지(지렛대)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