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리대출 리스크 나몰라라 '무리수 포용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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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기자
입력 2020-11-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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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용평가모델 구축 않고 취급액만 확대…연체율 증가

  • 부실대출 급증 우려…금융사들 중·저신용자 대출 축소

금융사들이 중금리대출에서 발을 빼는 이유는 정부의 무리한 주문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잖게 나오고 있다. 연체율 등 리스크를 우려하는 금융사들이 상품 판매를 꺼려하는데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중금리대출 확대를 위해 정책을 억지로 밀어붙였다는 평가다.  

금융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금융사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상품 판매에 나섰지만, 결국 리스크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하차 하는 모습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서민경제가 더욱 하향곡선을 그리는 만큼, 금융사의 중금리대출 외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단순히 취급액 확대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세밀한 신용평가 모델 구축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사진=아주경제DB]


◇리스크 부담 외면…취급액 확대에 혈안

금융당국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중신용자의 금리단층 해소를 위해 지난 2016년 7월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인 '사잇돌대출'을 출시한 이후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 등으로 빠르게 취급 금융사를 늘렸다. 같은해 9월에는 저축은행에서 판매하는 사잇돌2를 출시한 데 이어 이듬해 6월에는 상호금융권에도 관련 상품을 내놨다. 지난해 1월에는 인터넷전문은행도 사잇돌을 취급할 수 있도록 했다.

사잇돌을 취급하는 금융권 확대와 더불어 보증한도 확대와 대출 요건 완화도 추진됐다. 금융당국은 2016년 9월부터 사잇돌 대출 한도를 기존 5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확대했다. 금융당국은 이후 대출 보증한도를 꾸준히 늘려 지난해에는 5조1500억원으로 늘렸다.

취약계층도 사잇돌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잇돌 대출의 소득 및 재직 기준도 완화했다. 기존 대출자격인 연소득 2000만원 이상을 완화해 1500만원에서 2000만원의 신입직원(취업 후 3∼6개월 재직)이나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6개월∼1년) 영세사업주도 은행과 상호금융 사잇돌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저축은행이 취급하는 사잇돌2의 경우 연소득 1200만~1500만원 사이인 근로소득자와 사업기간 4~6개월의 연소득 600만~800만원인 사업소득자에게까지 확대했다. 저축은행에는 가계총량규제에서 사잇돌 등 정책금융상품을 제외했다.

그 결과 금융권이 취급한 중금리대출은 빠르게 증가했다. 지난 2018년 금융권이 취급한 중금리대출 총 공급액은 5조99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3% 늘었다. 특히, 사잇돌대출은 전년 동기 91.7% 늘었다.

정부의 포용금융정책에 적극적으로 발을 맞춘 결과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금융사의 리스크 증가 우려는 외면했다. 사잇돌 대출 출시 당시 SGI서울보증과 금융이 구축한 중신용자 신용평가 모형과 데이터베이스로는 중신용자들의 상환능력을 평가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음에도 이를 해소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지난해 5월 금융사의 자체적 신용평가역량을 높이기 위해 서울보증이 사잇돌대출 취급 과정에서 축적하는 정보를 비식별화해서 금융사에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사잇돌대출의 금리산정 체계를 점검해 추가적인 금리인하 방안을 검토하기 위함이었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리스크부담이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금융사 한 관계자는 "앞서 2005년 SC제일은행이 국내 처음으로 출시한 중금리대출을 출시했지만 연체율 상승과 신용평가 모델 구축 실패로 결국 판매를 중단했다"며 "현재 금융당국이 중금리대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신용평가 모델을 구축하지 못할 경우 지속적인 상품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당국은 지금까지 중금리대출 규모 확대에 혈안이 돼 정작 신용평가 모델 구축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내년 부실대출 급증 우려…금융사들 중·저신용자 대출 축소

이 같은 리스크 상승으로 인해 앞으로 금융사들의 중금리대출 취급액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실제로 금융사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대출 부실화에 대응하기 위해 리스크 부담이 큰 중·저 신용자에 대한 대출 축소에 나서고 있다. 당장 금융당국의 코로나19 대책으로 추진된 대출 원금과 이자 유예조치가 끝나는 내년 3월 이후 연체율 상승에 따른 리스크를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이 8월 중 취급한 가계 신용대출에서 중금리 대출(연 4~10%) 비중은 7.6%로 전년 말(16.9%) 대비 9.3%포인트 감소했다. 국민은행을 제외한 다른 은행들은 모두 8월 중금리 대출 비중이 10% 미만을 기록했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중금리 대출(23.2%)이 가장 많았던 국민은행은 12.4%포인트 감소해 10.8% 비중을 보였다. 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16.9%에서 6.4%로 10%포인트 이상 축소됐다. 그 외에 하나은행은 16.2%에서 7.9%로 줄었고 신한은행은 16.1%에서 6.8%로 감소했다.

저축은행은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리스크 부담이 큰 저신용자 대출을 빠르게 회수하고 있다. 중금리대출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사잇돌 등 정책금융상품이다. 저축은행은 올해 공급한 중금리 대출 2조9000억원 중 2조원가량을 사잇돌 대출로 취급했다. 사잇돌 대출 등 정책금융상품은 연체 등 부실에도 보증기관인 서울보증으로부터 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이미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해 저신용자의 대출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며 "당분간 금융취약계층의 대출 축소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리스크 부담이 없는 사잇돌 등 정책금융 상품 저신용자 대출 취급을 확대할 것"이라며 "금융당국에서 중금리대출을 확대하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리스크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중금리대출을 무턱대고 확대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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