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버드나무와 국립항공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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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 희 국토교통부 항공정책과장
입력 2020-12-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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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강서구에 자리한 국립항공박물관을 돌아보다가 문득 어릴적 읽었던 명작동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The Wind in the Willow)>이 떠올랐다. 영국 케네스 그레이엄의 작품으로, 강둑마을 동물들의 신비로운 모험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어로 ‘윌로(Willow)’는 버드나무라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의 지명이기도 하다. 이 조그마한 시골마을 윌로스(Willows)는 우리나라 항공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1920년 7월 5일에 당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도로 비행학교를 윌로스에 설립했다.

임시정부의 초대 국방장관 노백린 장군 등은 윌로스에서 자연재해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한인 청년들을 비행장교로 육성했다. 이들은 창공을 날며 독립군 조종사로서 조선총독부 타격 등 조국 해방과 구국의 꿈을 키우며 우리 항공역사의 첫 비상을 알렸다.

이후 윌로스 비행학교는 역할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설립 이후 정확히 100년이 지난 7월 5일 국내 최초의 국립항공박물관이 김포공항 인근에 터를 잡고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민간 항공이 태동해 경제부국을 이끈 이래, 현재 연간 항공여객 1억명을 돌파하고 초음속항공기를 직접 만들어 수출하는 명실상부한 항공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 항공산업의 위상에 비해 그 역사와 성과, 문화 등을 정리해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고도성장만이 최우선의 과제였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에는 항공산업‧기술‧과학과 문화 및 인문학적 콘텐츠를 발굴하고, 관련 자료를 보존‧전시‧교육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립항공박물관의 건립 배경이다.

이곳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항공역사 태동기에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첨단기술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조성됐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 항공산업의 현주소를 이해할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직접 항공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비행기 조종·관제실습’, ‘T-50 전투기탑승’, ‘기내 탑승·안전 체험’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최고의 항공전문 도서관을 지향하는 항공도서관과 강의장 등 부대시설도 갖추고 있다.

국립항공박물관은 당대의 최첨단 기술이 응축된, 유익한 항공 교육·체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나아가 도심 항공교통과 군용기 등 볼거리‧배울거리에 있어 공간적 외연확장도 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과 연계해 다양한 항공 주제 문화행사 등도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우수성과 세계가 주목하는 첨단 항공기술, 그리고 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로 세계 항공산업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날지 못하고 김포공항에 줄지어 주기돼 있는 항공기들이 안타까워 보인다. 이 위기 속에서도 국내 항공사들은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해 왔고,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며 생존전략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

역사학자 E. H. 카가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라고 말한 것처럼, 2020년 오늘날 항공업계의 고통과 극복을 위한 노력은 언젠가 과거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국립항공박물관에 소중히 기록되고 간직돼 후대에 생생히 전달될 것이다. 마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의 신비로운 모험 이야기처럼, 후대 우리 아이들이 지금 우리의 고군분투와 극복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게 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이정희 국토교통부 항공정책과장. [사진=한국항공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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