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대전환기에 필요한 혁신과 실험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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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부센터장
입력 2020-12-2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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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실장]



이충현 감독이 연출한 <콜>이 내게 남긴 생각거리는 서태지와 한국형 재난 서사였다. 2020년을 맞이하면서 내가 희망했던 바는 1990년대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힘이 2020년대적 에너지와 역동적으로 조우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기대는 2020년에 국한된 것이 아니므로 여전히 충분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 또한, 2020년에 미디어와 문화산업으로 국한해 보면 의미 있는 일들도 많았다. <기생충>과 BTS의 쾌거를 비롯한 대한민국 미디어, 문화산업의 영향력은 과거 어느 때 보다 높았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호오를 떠나 서태지가 1990년대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는 것은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산업적 영향력과 미학적 가치를 떠나 서태지가 상징하는 것은 과감한 실험정신이다. 코로나라는 재난 국면에서 오히려 대한민국 콘텐츠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콘텐츠, 플랫폼을 막론하고 눈에 띌만한 혁신적인 시도가 충분히 이루어져 왔는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콜>로 이 글을 시작했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인 <사냥의 시간>, <반도>, <#살아있다> 등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적인 주목을 이끌어냈다. <킹덤>도 마찬가지다. 이들 서사의 공통점이 있다면 사회적인 재난이나 개인적인 재난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한국형 재난 서사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 입증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감염병 확산이라는 재난적 국면과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정조가 맞아 떨어지면서 한국형 재난 서사가 정착되어 가는 느낌이다. 문제는 지금 언급한 콘텐츠들이 넷플릭스에서 릴리즈 되면서 주목받았다는 것이다. 디지털 대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뒤처진 디지털 플랫폼 경쟁력은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재난 국면에서 어렵지 않은 산업 영역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전통적인 방송사업자들의 어려움은 코로나로 인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방송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재원이라고 할 수 있는 방송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크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료방송 가입자 시장도 조금씩 성장하고는 있지만 포화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코드코팅’ 현상이 대한민국에서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비롯하여 관련 부처에서 다양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지만 방송과 관련된 낡은 규제들은 여전히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올해 들어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중 하나는 ‘비대면’일 것이다. 다른 지면에서 비슷한 얘기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안타까운 심정으로 2020년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얘기하자면 비대면 뒤에 생략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물리적으로 만나기 어려워지면서 역설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아쉬움일 수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분야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에 비해 2020년 미디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감염에 대한 불안감을 앉고서 2020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2021년에는 미디어 분야에 좀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디지털 뉴딜, 개선이 시급한 정책과제, 미래지향적인 청사진 마련까지 다양한 과제들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레거시 영역에 대한 규제 혁신부터 디지털 대전환 환경에 대한 대응 그리고 비대면 환경을 포함하여 커뮤니케이션 서비스가 기반이 되는 요소에 어떤 정책과 투자가 필요한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코로나 확산 추이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면 2021년도 상당 부분 비대면 환경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대전환 환경에 대한 대응, 플랫폼 기업의 육성, OTT 활성화 등이 계속 이슈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디지털 대전환 환경에 대응하는 한편 레거시 영역에 적용되고 있는 낡은 법제도들을 손봐야 한다. 전통적인 방송사업자들이 혁신할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시장에서의 소모적인 갈등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콘텐츠 대가, 저작권료 등 사업자 간 거래 비용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업자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는 규제는 과감히 풀어줄 필요가 있다.

OTT 서비스와 방송 서비스 간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에만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면 이용자는 방송을 열등재라고 인식하기 쉽다. 가령, 이용자들은 체감하기 어렵지만 유료방송 플랫폼에는 기술규제, 채널규제 등 다양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규제들은 다양한 상품을 구성하는 데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법제도가 시장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디어 관련 부처들에서 여러 계획을 통해 강조해 온 자율성 증진, 최소규제, 혁신과 같은 가치 실현을 위한 기반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업자들은 규제 개선을 기반으로 사업자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와 서비스의 가치를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 2021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디어 분야도 마찬가지다. 다른 분야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빠른 만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 비대면 상황 속에서 거의 모든 영역이 미디어를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봐야 할지 재정비해야 할 법제도는 무엇인지 들여 다 볼 것이 많다. 급격한 전환의 시기, 위태로운 위기에 필요한 것이 새로운 발상이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혁신과 실험이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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