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이상국의 송년시]
허허(虛虛) 2020
- 저무는 이공이공(異恐利空)에게
해가 저뭅니다
숨 막히는 날들의 끝, 흐린 해 저뭅니다
해는 무엇하러 저무는지
마음도 저물지 못하고
입술 바짝바짝 타들고 애간장 저미는데
해는 무슨 낯으로 기우는지
붉어질 것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 무엇을 마무리 하라는지
그래도 문득 돌아보니 그 사람 생각납니다
복면같은 흰 두건 우주복 같이 둔한 가운
영혼도 박제된 채 피곤에 쩔은 어느 의료진
좁은 의자 위 잠깐 졸던 풍경에 우린 울었습니다
타인을 위해 목숨 바친다는 것
총알 날아드는 전쟁터에만 그런 건 아니더이다
이름 없는 영광에 사지(死地) 넘나들며
고결한 빛 남겼던 그들이 햇살이었습니다
그 사진 한 장이 마음에 또렷 남았습니다
힘겨운 날일수록 바른 것들은 더욱 곧아져
삶의 투정들이 그 거울에 오히려 무색해졌지요
하나의 해를 고단히 담아내며 알게된 것은
이 나라 바탕에 큰 마음이 있구나 쪼갤 수 없는
하나의 고결한 빛이 있구나
그러나 그건 잠깐의 위안일 뿐
왼쪽 뺨 때려 오른쪽을 다시 치는 우행의 나날
남불나행 내로남불 공감없는 쪽생각들이
자기만의 공터에서 내지르는 아우성을 이뤘습니다
정치는 독주하고 경제는 죽쑤고 갈피를 잃었습니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우리 안의 역병
나라를 두 동강낸 생각 속의 분단
건너갈 수도 없을 만큼 깊이 파인 골짜기
세상에 이런 패거리 저런 거리두기를 보았는지요
첫날과 끝날까지 쥔 멱살 놓지 않은 나라
해가 저물도록 백신은 아직 당도하지 않았습니다
화해와 포용의 백신 또한 배송사고가 난 듯 합니다
이리 치고 저리 떠밀다 어느 새 맞는 시간
해 앞에 문득 먹먹해진 옷깃 그러나 여밀 마음도 못낸 채
마스크 속에서 부끄러움 잠시 붉어지나니
이상국 논설실장(이빈섬 시인)
異恐利空 : 너를 이공이공이라 부르마. 유난한 공포였던 한해여서 異恐(이공)이고 이로움(경제)은 빈손이었던 한해여서 利空(이공)이구나. 연초에 고개를 든 코로나는 갈수록 점증하는 재앙이 되었고, 인류가 뿔뿔이 흩어져 거리를 두고 공장이 멈추고 유통이 문을 닫으면서 일손을 놓고 버티는 사람들이 들끓고 정치 또한 의욕은 앞서고 지혜는 뒤처져 갈피를 못잡고 갈등과 소모만을 일삼았으니 모두가 불안하고 저마다 혼란스러운 세밑에 이르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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