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30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최후진술에서 아버지(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를 언급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 회장의 추도사에 등장한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하다)라는 말을 언급하면서다.
◆“승어부는 더 큰 의미...최고수준의 도덕·투명성 갖추겠다”
이 부회장은 “경쟁에서 이기고 성장시키는 것은 기본이지만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자신만의 ‘뉴삼성’에 대한 비전도 분명히 했다.
이 부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준법감시위원회가 생겼다”며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쉽지 않은 길이고 불편할 수 있고 멀리 돌아가야 할 수 있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한 “특검이 우려한 사업지원TF는 다른 조직보다 더 엄격하게 준법감시를 받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벌 폐해로 지적한 것도 시정하겠다.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다”라면서 반도체 등 핵심사업 확장에 대한 의지도 피력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재판부의 선처 여부다. 이날 결심공판에서 박영수 특검팀은 “피고인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는 각각 징역 7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5년이 구형됐다.
앞서 특검은 파기환송 전 1·2심에서 이 부회장에게 모두 징역 12년을 구형했었다. 이날 특검은 “대법원에서 일부 혐의에 무죄가 확정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1심 징역 5년, 2심 징역 2년6개월·집행유예 4년...파기환송심서 형량 낮춰질까
2016년 국정농단 사건 관련 특검 수사가 시작된 후 이 부회장은 현재까지 약 4년여간 구속 수감, 석방, 파기환송심 등을 거쳤다.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로 재판을 받았고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018년 2월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였던 일부 혐의가 무죄로 판단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고 이 부회장은 석방됐다.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8월 이 부회장이 2심에서 무죄로 본 뇌물 혐의 일부를 유죄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해 사건을 고법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당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뇌물 액수를 2심(36억원)보다 많은 86억원으로 판단했다. 2심에선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말 3마리 구입비(34억원)와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가 실소유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16억원)까지 뇌물로 인정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돈을 횡령해 뇌물을 건넨 것으로 돼 있어 뇌물액이 곧 횡령액이다. 관련 법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판사가 재량으로 형(刑)을 깎아주지 않는 한 집행유예 선고가 안 된다.
이로 인해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의 형량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도 많았다. 그러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지난해 10월 삼성에 ‘준법감시제도’ 시행을 주문하면서 분위기가 바뀔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삼성은 지난 1월 준범감시위를 출범시켰고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 권고에 따라 지난 5월 기자회견을 열고 △4세 경영 포기 △무노조 경영 중단 등을 공언했다.
이후 특검의 재판부 기피 등으로 공전을 거듭하다 이날 결심공판이 열렸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의 실효성, 이를 양형 조건으로 고려할지 여부와 어느 정도로 고려할지 등을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측이 바라는 선처 여부는 전적으로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부에 달린 것이다.
그간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무죄를 주장하기보다는 재판부의 주문에 따라 준법감시위를 출범시키는 등 양형 전략을 세워왔다. 특히 지난 10월 이 명예회장의 별세 이후 이 부회장이 완벽하게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재수감만은 피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크다. 삼성 측은 오너 부재 시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의 미래 경쟁력과 성장동력 확보 등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삼성도 주력사업의 신성장 전략, 글로벌 비전을 새로 다잡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면서 “도덕성을 앞세워 뉴삼성을 꾀하는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이어질 경우, 재계 1위 삼성의 위상도 장담할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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