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최씨네 리뷰>는 필자가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까지 녹여낸 영화 리뷰 코너다. 관객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편안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어느 샌가부터 "1월 1일, 처음으로 듣는 노래가 그해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게 '국룰'(국민 룰의 줄임말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라는 신조어)이 됐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그룹 투애니원 '내가 제일 잘나가' 우주소녀 '이루리' 조빈 '듣기만 해도 부자 되는 음악' 등을 새해 첫 곡으로 듣고 인증하는 게 유행한다. 이는 한 해를 시작할 때 무얼 보고 듣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일종의 자기최면인 거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용산CGV아이파크몰에서 애니메이션 '소울'(감독 피트 닥터·캠프 파워스) 시사회가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많은 영화가 개봉을 취소해 정말 오랜만에 극장을 찾은 터였다. 그 말은 즉 '소울'이 올해 나의 첫 영화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참석하는 시사회였지만 오전 시간이라는 게 부담이 됐다. 그야말로 눈 뜨자마자 영화 관람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취재진이나 영화 관계자들은 오후 시간을 선호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영화들은 오후 2시 상영이 보통이다.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이 오전에 상영하는 건 낯선 일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일개미는 오늘도 용산에 간다.
조(제이미 폭스)는 중학교 밴드부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생계를 위해 학교에서 일하고 있지만, 가슴 한쪽에는 재즈 뮤지션에 관한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는 뉴욕 최고의 뮤지션 도로테아 윌리엄스 밴드와 무대에 오를 기회를 잡는다. 생애 최고의 순간을 앞뒀으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저세상'에 가게 된 조. 그는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우연히 '태어나고 싶지 않은' 영혼 22호(티나 페이)와 만나게 된다.
두 영혼이 만난 곳은 '태어나기 전의 세상'이다. 영혼들이 탄생을 앞두고 기본 소양을 쌓는 공간으로 성격 형성, 관심사나 재능 찾기 등이 이뤄진다. 모든 조건을 충족한 영혼은 '지구 통행증'을 발급받고 태어날 자격을 갖는다. 하지만 자격 조건을 갖추는 건 그리 쉽지 않다. 가장 까다로운 관문인 '불꽃'을 찾아야 하기 때문. 멘토들은 아기 영혼과 '불꽃'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관리자들은 조를 멘토로 오해해 영혼 22호와 짝짓는다. 탄생에 냉소적인 22호는 삐딱한 태도로 멘토들을 괴롭힌 문제아. 조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22호를 설득하고, 호기심이 생긴 22호는 그를 돕기로 한다.
그간 디즈니‧픽사는 '자아 찾기' '성장' 그리고 '죽음'에 꾸준히 관심 가져왔다. 특히 어린 관객들이 자연스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애써왔던바. 죽음은 종착역이 아닌 전환점이며 비극이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코코' '소울'은 이 같은 디즈니‧픽사의 시선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코코'가 떠나보낸 이들을 추모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면 '소울'은 죽음과 탄생의 순환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조와 22호는 '불꽃'이 삶의 목적이라 생각한다. 조가 '음악'을 삶의 목적이라 생각하고 오로지 그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 말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들은 거창한 목표와 성취가 '탄생의 자격'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맑은 하늘을 볼 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고 오랜 친구와 나눈 대화에 웃음을 터트릴 때. 가족들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받고 마음을 나눌 때. 이 모든 순간이 결국 '나'를 만들고 또 '삶'을 이루는 것임을. '소울'은 이들의 여정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 모두는 살아갈 가치가 충분하다. 자격은 모두에게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맞은 모든 순간은 아름답다.
'소울'은 새해 첫 영화로 손색없는 작품이다. 올해의 '운명'을 맡겨봐도 좋겠다.
사랑스러운 인물들과 경이로운 상상력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 빼곡하게 차 있다. 디즈니‧픽사의 상상력은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한 '소울' 속 사후세계는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쓸 정도. '인사이드 아웃' '코코' 감독 제작진이 만든 세계답다.
메시지와 전달 방식도 훌륭하다.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풀어가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 전반에 깔린 따뜻한 시선 덕에 응원받은 기분이 들었다. 영화관을 나서며 '그래 조금 더 힘내보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초라한 기분을 느끼는 이, 쳇바퀴 같은 삶이 지겨운 이, 코로나19로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낀 이들에게 '소울'을 선물하고 싶다.
한편 지난해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소울'은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 피트 닥터 감독, 캠프 파워스의 공동 연출작이다.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와 영화 '소셜 네트워크'로 제83회 미 아카데미, 제68회 골든 글로브 음악상을 받은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음악을 담당했다. 20일 개봉이며 러닝타임은 107분, 관람 등급은 전체 관람가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최씨네 리뷰>는 필자가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까지 녹여낸 영화 리뷰 코너다. 관객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편안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용산CGV아이파크몰에서 애니메이션 '소울'(감독 피트 닥터·캠프 파워스) 시사회가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많은 영화가 개봉을 취소해 정말 오랜만에 극장을 찾은 터였다. 그 말은 즉 '소울'이 올해 나의 첫 영화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참석하는 시사회였지만 오전 시간이라는 게 부담이 됐다. 그야말로 눈 뜨자마자 영화 관람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취재진이나 영화 관계자들은 오후 시간을 선호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영화들은 오후 2시 상영이 보통이다.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이 오전에 상영하는 건 낯선 일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일개미는 오늘도 용산에 간다.
조(제이미 폭스)는 중학교 밴드부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생계를 위해 학교에서 일하고 있지만, 가슴 한쪽에는 재즈 뮤지션에 관한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는 뉴욕 최고의 뮤지션 도로테아 윌리엄스 밴드와 무대에 오를 기회를 잡는다. 생애 최고의 순간을 앞뒀으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저세상'에 가게 된 조. 그는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우연히 '태어나고 싶지 않은' 영혼 22호(티나 페이)와 만나게 된다.
두 영혼이 만난 곳은 '태어나기 전의 세상'이다. 영혼들이 탄생을 앞두고 기본 소양을 쌓는 공간으로 성격 형성, 관심사나 재능 찾기 등이 이뤄진다. 모든 조건을 충족한 영혼은 '지구 통행증'을 발급받고 태어날 자격을 갖는다. 하지만 자격 조건을 갖추는 건 그리 쉽지 않다. 가장 까다로운 관문인 '불꽃'을 찾아야 하기 때문. 멘토들은 아기 영혼과 '불꽃'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관리자들은 조를 멘토로 오해해 영혼 22호와 짝짓는다. 탄생에 냉소적인 22호는 삐딱한 태도로 멘토들을 괴롭힌 문제아. 조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22호를 설득하고, 호기심이 생긴 22호는 그를 돕기로 한다.
그간 디즈니‧픽사는 '자아 찾기' '성장' 그리고 '죽음'에 꾸준히 관심 가져왔다. 특히 어린 관객들이 자연스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애써왔던바. 죽음은 종착역이 아닌 전환점이며 비극이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코코' '소울'은 이 같은 디즈니‧픽사의 시선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코코'가 떠나보낸 이들을 추모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면 '소울'은 죽음과 탄생의 순환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조와 22호는 '불꽃'이 삶의 목적이라 생각한다. 조가 '음악'을 삶의 목적이라 생각하고 오로지 그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 말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들은 거창한 목표와 성취가 '탄생의 자격'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맑은 하늘을 볼 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고 오랜 친구와 나눈 대화에 웃음을 터트릴 때. 가족들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받고 마음을 나눌 때. 이 모든 순간이 결국 '나'를 만들고 또 '삶'을 이루는 것임을. '소울'은 이들의 여정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 모두는 살아갈 가치가 충분하다. 자격은 모두에게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맞은 모든 순간은 아름답다.
'소울'은 새해 첫 영화로 손색없는 작품이다. 올해의 '운명'을 맡겨봐도 좋겠다.
사랑스러운 인물들과 경이로운 상상력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 빼곡하게 차 있다. 디즈니‧픽사의 상상력은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한 '소울' 속 사후세계는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쓸 정도. '인사이드 아웃' '코코' 감독 제작진이 만든 세계답다.
메시지와 전달 방식도 훌륭하다.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풀어가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 전반에 깔린 따뜻한 시선 덕에 응원받은 기분이 들었다. 영화관을 나서며 '그래 조금 더 힘내보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초라한 기분을 느끼는 이, 쳇바퀴 같은 삶이 지겨운 이, 코로나19로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낀 이들에게 '소울'을 선물하고 싶다.
한편 지난해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소울'은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 피트 닥터 감독, 캠프 파워스의 공동 연출작이다.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와 영화 '소셜 네트워크'로 제83회 미 아카데미, 제68회 골든 글로브 음악상을 받은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음악을 담당했다. 20일 개봉이며 러닝타임은 107분, 관람 등급은 전체 관람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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