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신천지 무죄 판결', 법리재판이 여론재판에 제동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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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
입력 2021-01-1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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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필요하고 대중이 원해도 법적 근거 있어야 유죄

  • 與, 처벌 주장하며 대중 선동…정작 '규정 없음' 언급 안해

  • 이번 선고는 여론에 영향받기 쉬운 민주주의 흠결 보완

  • 선출 권력 견제하는 비선출 권력인 사법부 역할 보여줘

[연합뉴스]


법원이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의 ‘코로나 방역 방해’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 총회장은 작년 코로나 확산 과정에서 신도 명단과 집회 장소를 축소 보고해 역학 조사를 방해한 혐의(감염병예방법 위반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교회 자금을 횡령한 혐의 그리고 기타 다른 업무 방해 혐의 등 모두 3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미경)는 지난 13일 역학 조사 방해에는 무죄를 선고하고, 횡령과 다른 업무 방해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신천지 사건의 핵심은 역학 조사 방해 여부다. 나머지 2 개 혐의는 곁가지다.

 '신천지 허위 자료 제출' 비난 여론에 여권, "검찰 수사"
 
역학 조사 방해 무죄 판결은 민주사회에서 사법부가 존재하는 의미와 맡은 역할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민주사회는 다수 또는 여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여야 정당은 다수나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하고, 그 경쟁에서 승리한 다수파가 정치권력을 장악한다. 이 과정에서 선출직 정치인들의 대중 영합이나 선동 같은 부작용도 생긴다. 이게 민주주의의 본질적 흠결이다. 사법부 역할 중 하나는 이런 민주주의의 흠결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만희 방역 방해 무죄 판결도 그런 사례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신천지 코로나 사건’은 작년 2월 신천지 대구교회의 한 신도가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시작됐다. 전국에서 31번째 확진자였던 이 신도는 무증상 상태에서 예배에 참석했다.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른 신천지 교인들에게 확산해 확진자 수가 30명대에서 일주일도 되지 않아 800명을 넘었다. 상당수가 신천지 교인들이었다. 신천지는 코로나 대량 확산의 주범으로 몰렸다. 인터넷에는 "신천지가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비난 글이 쏟아졌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신천지 강제해산 촉구' 및 '신천지 교주 구속수사 촉구' 국민청원이 게시됐다. 신천지 피해자 단체는 이만희 총회장을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했다.

더욱 논란이 된 것은 신천지가 신도 명단과 교회 시설의 일부를 허위로 제출한 일이었다. 지자체들이 신천지 신도 명단과 교회 시설 자료를 내라고 요구했는데 신천지가 제출한 자료에 일부 누락과 허위가 발견된 것이다. 신천지 비난 여론이 더욱 확산됐다.

그러자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신천지 강제수사'론을 들고 나왔다. 추 장관은 “보건당국의 역학 조사를 의도적, 조직적으로 거부, 방해, 회피하면 압수수색을 비롯한 즉각적 강제수사에 착수하고, 감염병예방법 등에 따라 구속 수사하는 등 엄정 대처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추 장관은 국회에 나와서는 “국민의 86% 이상이 압수수색의 필요성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여권 인사들도 검찰을 압박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찰은 즉시 강제수사를 통해 신천지 교단의 제대로 된 명단과 시설 위치를 하루빨리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윤석열 검찰총장께 요청한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진원지의 책임자 이만희 총회장을 체포하는 것이 지금 검찰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했다. 곧이어 서울시는 이 총회장을 살인죄 등으로 고발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신천지는 협조의 외관을 취하면서도 자료 조작, 허위 자료 제출, 허위 진술로 오히려 방역을 방해하고 있다”며 “검찰은 신천지를 신속히 강제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 “ 정보 제공 요청 거부는 방역 방해 아니다”

검찰은 처음에는 신천지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에 신중하게 나왔다.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했다. 압수수색한 자료를 범죄 수사에 쓰지 않고 행정기관에 제공하는 것은 법률상 문제가 있고, 압수수색을 하면 신도들이 숨어 방역에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여권의 잇따른 압박 탓인지 결국 수사에 나섰다. 그리고 이만희 총회장을 교인 명단 일부 누락, 일부 신도 주민등록번호 제출 거부, 교회 시설 일부 누락 등으로 역학 조사를 방해했다고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이 방역 방해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법원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감염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신천지 시설과 교인 명단을 요구한 것은 역학 조사의 내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법원은 판결 근거로 감염병예방법과 이 법 시행령에 규정된 역학 조사의 의미와 내용을 들었다. 감염병예방법은 역학조사의 의미를 ‘감염병환자 등의 발생 규모 파악, 감염원 추적,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에 대한 원인 규명을 위한 활동’으로 정하고 있다.

또 이 법 시행령에는 역학조사의 내용을 ‘감염병 환자 등 인적사항, 발병일, 발병장소, 감염원인, 감염경로, 환자의 진료기록 및 그 외 감염병 원인 규명과 관련된 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법원은 이런 규정들을 들어 “방역 당국의 정보 제공 요청은 역학 조사가 아니고 그 준비 단계인 자료 수집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이만희 총회장이 역학 조사를 방해했거나 공무 집행을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법원은 방역 당국도 신천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감염병예방법에 규정된 ‘정보 제공 요청’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했다.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역학조사를 위한 자료 수집도 역학 조사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역학 조사 과정에서 인적 사항, 방문 장소, 만난 사람 등에 관한 정보가 노출되는 등 사생활에 관한 기본권이 제한되는 데다가 역학 조사를 거부하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에 범위를 함부로 확장해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헌법의 기본권 존중과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표 의식하는 정치인들의 대중 영합과 선동

국민들이 신천지가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고 우려하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천지 역시 방역에 최대한 협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인 보호를 위해서라지만 신도 명단 등을 일부 누락하거나 허위로 제출한 것은 잘못이다. 문제는 여권 인사들이 신천지를 희생양으로 몰아가며 즉시 체포해 처벌하라고 촉구하고 나온 것이다. 심지어 살인죄로 고발하기까지 하지 않았나. 아무리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신도 명단과 교회 시설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그런 정보를 행정적으로 확보하는 것과 신천지 관계자의 체포와 구속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수사와 형사 처벌 여부는 사법 당국이 엄밀한 법적 검토를 거쳐 판단할 일이지, 선출직 정치인들이 대중의 감정에 영합하거나 대중을 선동하는 식으로 몰고 갈 일이 아니다.

이번에 이만희 총회장이 무죄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교인 명단 제출 등 방역 당국의 정보 제공 요청을 거부해도 처벌하는 법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염병예방법에는 역학조사 준비단계에서 감염병 환자나 감염병 의심자에 관한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게 돼 있을 뿐 거부 시 처벌 규정은 없었다. 처벌 규정은 이만희 총회장이 기소되고 난 이후인 작년 9월 29일에야 신설됐다.

그러나  헌법의 형벌 불소급 원칙에 따라 이 처벌 규정이 이만희 총회장에게는 소급 적용될 수 없었다. 작년 9월 29일 이후 정보 제공 요청을 거부한 사람이나 단체는 이제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따라서 제2의 신천지 사태가 터졌을 때 명단 제출을 거부해도 처벌받지 않는 것 아니냐고 흥분할 일은 아니다. 요즘 BTJ열방센터가 방문자 명단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인터넷에선 “신천지에 무죄를 선고하는 순간 다 무죄가 된다”며 “열방센터도 무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처벌 규정이 신설됐기 때문에 '다 무죄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번에 법원도 신천지에 무죄 선고를 하면서 “처벌 규정 신설로 향후 처벌 공백이나 협조 거부 사태를 야기할 우려가 더는 없다”고 했다.

여권 인사들은 신천지가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형사 처벌만을 주장했을 뿐, 정보 제공을 거부할 경우 처벌 규정이 없다는 문제점은 아무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다는 증거다. 제대로 된 정부 당국자이고 정치인이라면 법의 허점이나 미비점이 없는지 살펴서 그런 게 있으면 보완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저 시류를 쫓아 검찰 수사나 촉구하고 압박하는 것은 대중 영합이고 직무 유기일 뿐이다.

‘선출된 권력’ 견제가 사법부 역할

현 정권 사람들은 툭하면 사법부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경시한다. 자기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하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무시하고 선출된 권력에 도전한다고 윽박지른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탈원전 정책 과정의 적법성 여부를 감사하는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주인 행세를 한다”고 비난했다. 이 역시 선출된 권력인 자기네가 ‘주인’이니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감사원은 주인이 시키는대로나 하라는 발상이다.

권력을 선출됐느냐, 선출되지 않았느냐로 구분하는 것은 선출된 권력만이 민주 권력이고 따라서 선출된 권력 뜻대로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사법부나 감사원 같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존립 근거는 헌법이다. 헌법이 사법부나 감사원에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헌법은 국민 의사의 표현이고 민주국가에서 모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다. 우리 헌법 제1조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이 사법부나 감사원에 권력을 부여한 것은 곧 국민이 부여한 것이고 그래서 당연히 민주적 권력이다. 선출된 권력만 민주적 권력이 아니라는 말이다.

민주주의 발달사에서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에 권력을 부여한 목적은 선출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게 하기 위해서다. 권력 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사법부는 선거와는 무관한 권력이라 대중의 감정과 여론에 휩쓸릴 가능성이 적다. 반면에 선출된 권력은 그 속성상 대중의 여론과 감정에 영합하기 쉽다. ‘전국민 재난 지원금’ 같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면 선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큰 사건이 터지면 특정인이나 단체를 희생양으로 몰아가고 수사와 처벌을 주장하고 나오는 것이 그런 예다. 신천지 사건도 그 하나다.

법원이 신천지에 무죄 선고를 한 것은 대중의 감정과 여론에 영합하고 선동까지 하는 ‘선출된 권력’의 행태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방역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도, 아무리 대중이 원하는 일이라도, 법적 근거, 기본권 존중, 죄형법정주의, 형벌불소급원칙 같은 헌법 규정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중의 감정과 여론에 휘둘리기 쉬운 민주주의의 내재적 흠결을 보완하는 게 사법부의 존재 의미이고 역할임을 보여준 것이다. 사법부가 이런 역할을 다하려면 권력 눈치 보지 않고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게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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