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의사(공보의)를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대공협)가 수장을 선출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차출로 인한 업무 과중으로 공보의의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협회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고 급기야 업무 부담에 회장직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사태 속 공보의와 정부의 가교 역할을 하는 대공협 회장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닥친 일이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공보의는 공중보건업무 종사를 위해 병무청장에 의해 편입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다. 이들은 지난 1년간 코로나19 대응에서 현장 최전선에 동원된 의료인력으로 꼽힌다.
20일 대공협에 따르면 차기 협회 회장직에 지원한 후보자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후반 대공협이 생긴 이후 전례가 없던 사상초유의 일이다.
김형갑 대공협 회장은 “(중앙회장은) 정부 지침을 각 지역대표에 전달하고, 현장의 문제점을 정부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또 각 지역별 대치사항이 있을 때 의견을 조율하는 업무를 맡는다”고 설명하면서, “앞으로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도 공보의 업무가 될 수 있는데, 대공협 회장직 부재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러 사항을 정부에 전달하는 창구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 회장이 연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김 회장의 임기는 오는 2월까지만, 그때까지 회장직이 선출되지 않는다면 김 회장이 3~4월 두 달간 업무를 이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4월 이후엔 전역이라 더이상 공보의 신분이 아니게 된다.
공보의들은 회장직 기피 이유로 과중한 업무 부담을 지적했다. 수원 지역 내 근무 중인 한 공보의는 “코로나 대응으로 공항, 선별진료소 등에 수시로 파견 나간다”며 “공보의 업무만으로도 바빠 협회 활동은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1일 기준으로 코로나19 방역에 투입된 공보의는 총 1910명으로 그해 전체 의과 공보의 1917명 중 99.6%에 달했다.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9.85시간이었고, 10시간 이상 근무했다는 공보의는 18%로 조사됐다. 대공협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공보의 민원은 10배~15배 정도 늘어으며, 3·4월 두 달간 민원은 1500건이 넘었다.
대공협에 몸담았던 전직 임원들은 “공보의의 의견수렴을 위한 대표 조직 부재는 결국 환자 안전과 직결된다”며 “공보의들이 선거 입후보에 관심을 가지도록 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중현 대공협 전 회장은 “과거 대공협 회장 선거는 단독 입후보가 아닌 경선으로 치러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만큼 관심이 쏠리는 선거였다”면서 “후보자가 없는 것이 요즘 공보의들이 다른 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듯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공보의 민원은 단순 민원이 아니라 의료민원이다. 회장직 공백으로 공보의 현장 상황이 정부에 전달이 안 되면, 이는 자칫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회장직은 공보의 업무를 수행하며 대공협 일을 한다.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만이라도 (정부가)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등 방법을 강구해 공보의들의 관심을 유도해야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공보의 숫자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대공협에 상근을 두는 등 여유 있는 인력 운영은 어렵다”면서 “좀 더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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