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이 오는 3월 구글의 인공지능(AI) 연구원을 교수로 임용한다. 민간 기업 연구원을 겸직하는 최초의 서울대 교수 채용 사례가 될 예정이다. 혁신적인 연구가 이뤄지려면 온갖 '경계'를 허물고 유능한 해외 인재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해온 국내 AI 분야 석학,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24일 본지와 만난 차 원장은 폭넓은 다학제적·글로벌 인재 유치와 함께 산업계와 학계를 아우르는 네트워크 확보만이 대한민국을 포스트코로나 시대 선진국으로 나아가게 할 동력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구글 '알파폴드2' 홍보의 이면을 지적했다.
"AI가 과도한 기대를 받다 보니, 성과를 과대포장한 측면이 있다고 봤다. 특히 딥러닝 기반, 뉴럴넷 기반 AI는 누구나 한계를 인정하는 상태까지 왔기 때문에, 다음 단계 연구를 해야 한다. 미래가 계속 밝은 것처럼 얘길 해야 연구비가 나오니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과거 실패했던 초기 AI 기반 연구 분야들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설명 가능한 AI를 위해 어떻게 상식을 갖게 할지 연구하는 상식추론 분야나, 어떤 결과와 데이터 간의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것 등이다. 다만 지금 한국은 순수 AI와 AI+X(응용)를 구분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이처럼 구분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다. 헬스케어든, 스마트 시티든, 스마트 제조든, 이런 특정 분야의 도전과제를 접했을 때 AI가 거기에 뭘 해야 가치가 있을지를 봐야 한다."
-순수 AI와 응용 연구를 구분하지 말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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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순수 AI고 뭐가 응용인지보다는, AI의 새로운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풀 거냐가 더 중요하다. 문제를 풀기 위해 경계를 무너뜨리고 돌파구를 찾는 게 '퍼스트무버'다. 경계를 엄격히 나누는 순간 남이 파 놓은 자리에 들어가 '팔로어'가 된다. 모든 것을 하나의 지평선에서, 어떤 분야에 해법이 필요한지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제조AI' 같은 분야에서 다른 연구자들이 그렇게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 같지 않고, 내가 하면 남들보다 앞설 수 있겠다 싶으면 그쪽에서 문제와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미 AI 연구에 투자가 많이 이뤄졌는데.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돈이 필요한 쪽으로 가도록 투자의 어떤 임팩트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부가 역할을 한다면 고급 인력들이 늘도록 유도할 인프라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너무 숫자에 연연한다. 사람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돈을 쓰는 데는 사실 별로 없다. 과거 사례에서 벗어나는 투자 방식을 두려워한다. 교수의 기업 겸직 제도가 대표적이다. 서울대에서 이걸 허용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근거를 담은 지능정보화기본법이 작년 5월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관련 시행령이 마련되기까지 몇달이 걸렸다. 서울대가 학교 규정 개정을 미리 준비하지도 않았다. 외부에서 비판을 하니까 지금 겨우 고쳐져서, 3월에 첫 겸직 사례가 나오게 됐다. 구글과 서울대가 겸직 인력 월급을 50대50으로 지급한다. 채용된 인력이 서울대 월급만 받으면 그가 구글에 있는 데이터, 컴퓨팅 자원, 문제(연구과제) 풀, 동료 네트워크, 그런 것과의 연결이 다 끊어지는데 그걸 유지하면서 서울대 교수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인력을 통해 구글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민간 기업들도 투자를 하지 않나.
"(인재 육성 결과로) 민간이 덕을 보는 것이니까, 민간의 세력·혁신가들이 인적 자원을 늘리기 위해 더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네이버나 카카오도 하청 수준 프로젝트만 주고 근본적인 투자를 안 한다. 기업에 있는 사람들도 공무원처럼 생각한다. 경계를 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민간 기업이 회사의 뭔가를 확보하기 위해 무슨 프로젝트를 하는 것 말고, 사람을 더 키우기 위해 대학의 연구환경을 기업이 같이 조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석좌교수직 기금을 내고 '삼성-SNU 프로페서'나 'SK-SNU 프로페서'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은 웬만큼 좋은 대학의 정교수들 대다수가 석좌교수인데, 이런 관행이 우리나라엔 없다."
-어떤 AI분야 인재를 키우려고 하나.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은 전공과 무관하게 사람을 받고, 그들을 (AI분야) 핵심인력이 되게 바꾸는, 전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규모가 더 커져야 한다. 사회대학 등 문과나 경제·경영학 전공자들 중 우수한 친구들이 낭비되는 인재들이다. 대부분 '고시'를 보러 가지 않나. 그들이 이쪽을 공부해 새로운 분야로 치고 나가도록 해야 한다.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 전공자는 모두 200명 정도인데 그들이 다 AI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머지 95%의 학생들이 데이터사이언스를 기본 소양으로 갖고 경제학, 의학, 생명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이렇게 데이터사이언스를 결합한 분야에서 앞으로 10년, 20년 뒤 노벨경제학상, 노벨생리학상이 나올 거라고 본다. 학문적 경계뿐 아니라 대학·민간·공공의 경계가 없어야 한다. 대학에 고립된 연구에서 파괴적 혁신은 나오지 않는다. 그건 경계 없는 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난다. '듀얼 멤버십'을 갖는 게 좋다. '대학의 교수는 이래야 하고, 기업은 이래야 한다'는 선입관이 많이 깨져야 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학의 역할은.
"느리게 진행되던 각국 디지털이나 바이오 분야의 격차 확대가 팬데믹에 의해 급격해졌다. 이런 흐름을 예견하고 앞서 투자한 곳과 그러지 못한 곳의 간격이 국가 간에도, 개인 간에도 점점 커질 거다. 이 문제의 궁극적인 솔루션은 미래에 각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대학의 인프라를 잘 살려서 해외 인재를 끌어들여야 한다. 유럽이 통합되면서 독일이 그렇게 혁신기반을 확보했다. 스페인이나 동구권의 우수한 인재들이 독일이나 근처인 스위스에서 공부하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우리도 다음 10년은 여기에 투자해 글로벌한 관점에서 해외 인재들이 우리의 생태계를 통해 성장하고, 함께 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게 우리가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한국이 돌파구를 만들 AI 유망 분야는.
"작년에 마이클 조던 UC버클리 교수가 국내 한 포럼에서 강연을 했다. 어차피 AI에는 한계가 있으니 작은 AI와 사람이 하나의 네트워크, 하나의 시장을 이뤄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상당히 공감한다. 그러려면 AI 연구자들의 학문적 배경이 다양해야 한다. 조던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경제학도 AI 연구에서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 수많은 독립적인 에이전트들이 있다는 전제로 문제를 푸는 분야니까. 이런 쪽 연구자들이 들어와야 한다. 컴퓨터공학이라는 제한된 영역의 학생과 교수들만 들어와서 하다 보면 세상과 멀어진다. 정부의 'AI대학원'은 너무 이쪽에 치우쳐서 걱정스럽다. 한국이 응용 분야에서 조금 치고나가면 솔루션을 만드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 독일·중국·일본과 함께 한국이 세계 4강에 드는 제조 분야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분야라고 본다. 또 병원의 데이터가 괜찮은 편이니까 전략적으로는 헬스케어도 유망하다. 산업적인 응용연구를 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파도록 해야 한다."
-제조분야 AI 경쟁력을 높이려면.
"제조업을 고도화하려면 공장 현장에 컴퓨터비전과 에지AI 같은 기술을 적용해 데이터를 쉽고 값싸게 수집·분석해줄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들이 그걸 직접 하긴 어려우니, 데이터를 가진 쪽이 그걸 클라우드에 올리면, 대학과 기업이 붙어서 도와주는 식으로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클라우드를 활용한 '제조 마이데이터' 프로젝트(KAMP)가 그렇게 한다. 이걸 한국 안에서만 하면 너무 작으니까, 독일에서 프랑스로 확대된 '가이아X'라는 비슷한 프로젝트와 연계해서 시장을 키울 수 있다. 독일 시장을 개척할 수도 있고,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나라와도 연계할 수 있다. 한정된 이 분야 인력들이 연결되는 시장을 만들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국내에서는 신림동 고시촌을 이런 AI 혁신 연구가 이뤄지는 'AI창업촌'으로 바꾸려고 한다. 기업 후원을 받고,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필요로 한다면 기숙사도 만들어서. 여기 들어온 사람들에게 일종의 시장을 형성해 주자는 것이다. 30~40명 규모의 혁신공동체 몇 개로 묶어 창업도 하고. 나중엔 서울대학원생들만 모일 필요도 없고 다른 소속 인력도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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