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삶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를 꼽으라면, 나는 신문, 방송, 잡지에서 일본경제신문, NHK, 그리고 문예춘추를 꼽는다. 평균적인 일본의 샐러리맨을 상상한다면, 그는 아침 출근길에 일본경제신문을 읽고, 퇴근하여 집에서 NHK뉴스를 보며, 주말에는 문예춘추의 정치평론기사를 읽을 것이다.
일본경제신문
일본경제신문은 1876년에 ‘중외물가신보’(中外物価新報)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일일신문이다. 15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이 신문은 오늘날 290만명 이상의 유료구독자와 460만명 이상의 온라인회원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니케이(日経)라고 불리는 이 신문을 발행하는 주체는 주식회사 일본경제신문으로 주축인 일간신문을 위시하여 산하에 46개 법인을 거느리는 거대한 그룹이다. 이 회사의 소개자료를 보면 “신문을 핵심으로 하는 회사로서 잡지, 서적, 전자 미디어, 데이터베이스 서비스, 속보, 전파, 영상, 경제·문화 사업 등을 전개”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경제와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일간지이지만 일반인도 찾아보는 이 신문의 유명한 칼럼의 한 예로 ‘나의 이력서’를 꼽을 수 있다. 1956년에 시작한 이 연재칼럼에는 선별된 인사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연재를 하게 된다. 연재 스타트를 끊은 인물은 1956년 당시 일본사회당 당수이던 스즈키 모사부로 (鈴木茂三郎)라는 인물이었다. 일본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저명인사들이 이 코너에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였다. 한 사람에 30회 정도가 이어지는 이 코너는 타이틀을 본인이 붓글씨로 제시한다. 이 시리즈는 같은 타이틀의 책으로 출판되는데 해당인사의 진술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일본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일본경제신문사가 제공하는 정보는 신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의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위한 분야별 전문잡지는 30개가 넘는다. 니케이비즈니스라는 종합경영잡지를 비롯하여 IT, 의료, 기계, 건설, 건강 등 다양한 분야의 잡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NHK
국영 도쿄방송국이 1925년에 라디오시험방송을 시작한 것은 NHK의 시작이자 일본방송의 시작이었다. 이 도쿄방송국은 1950년에 방송법에 의거한 '공공방송'으로서 일본방송협회 (Nihon Hosou Kyokai=NHK)로 재탄생한다. 이 법의 취지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성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NHK의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재해방송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진, 해일, 태풍 등이 많은 일본의 특성상, '재해대책기본법'에 의거하여, 재해보도기관으로서 유일하게 국가지정공공기관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NHK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광고를 하지 않으며, 그 수입은 시민이 내는 수신료가 기본적인 수입원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정부의 간섭배제와 함께 방송의 자율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 요인이 된다. 전국의 시청자로부터 수신료를 받는 NHK가 ‘지역밀착’성이 높은 방송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NHK는 일본 전국에 54개 방송국과 31개 해외지국 등 취재거점을 가지고 있다. NHK에 입사하는 신입사원은 자신의 연고과 관계없는 지방에서 근무하는 것을 숙명으로 삼아야 한다.
NHK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이 방송사가 제작하는 대하드라마이다. 이는 NHK, 나아가서는 일본 드라마의 대표격으로서 일본인의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의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작품내용은 일본의 역사를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리는 일대기가 대부분이다. 1963년에 시작된 이 시리즈에서는 역사소설가의 작품을 바탕으로 극화하여, 매주 일요일 저녁에 45분씩 일년간 방영한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작품의 베이스가 된 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郎)의 작품 6개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의 작품이 6년 동안 매주 일요일 저녁에 드라마로 방영된 것이다.
NHK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연말이면 벌어지는 최고인기가수의 남녀대항전이다. 흔히 코하쿠(紅白)라 불리는 NHK홍백가요전(紅白歌合戦)은 일년의 마지막 날 저녁에 방송되는 잔치이다. 가족이 모여서 여성의 홍팀(紅組)과 남성 백팀(白組)의 가요대결을 보면서 한 해를 끝내는 것이 일본가정의 풍경이다. 1963년의 홍백전은 시청률 81%라는 사상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이 프로그램에는 패티김, 계은숙, 김연자 등 많은 한국의 가수가 등장하였다.
문예춘추
文藝春秋. 문예라는 이름에 봄과 가을의 계절이름이 붙으니 문학잡지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잡지는 정치이슈를 중심으로 하는 종합오피니언잡지이다. 지금의 월간잡지 문예춘추를 발행하는 곳은 주식회사 문예춘추이다. 1923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신문을 발행하지 않고, 오직 잡지만을 만든다. 이 회사가 내는 잡지는 종합월간지 문예춘추 이외에, 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 월간문학잡지 문학계(文學界)를 포함하여 총 11종이다.
이 회사가 발행하는 잡지는 월간이나 주간을 불문하고 성향에 있어 극우에 가까운 보수이다. 사진에 들은 예는 2019년 10월호의 표지이다. 한국과 일본이 지소미아 연장중단으로 한창 갈등하고 있을 때였다. [일한단절]이라는 [총력특집]의 구성기사 타이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과 한국의 ‘국가의 품격'’’, “군사협정파기한 문정권은 외교전에서 패했다,” “전부산총영사의 독점수기: 한국을 뒤덮는 위험한 ‘낙관론’의 정체.”
문예춘추가 처음부터 정치잡지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이 잡지를 창간한 사람은 기쿠치칸(菊池寛)이라는 소설가였다. 기쿠치가 문예춘추를 창간한 것은 1923년으로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문예춘추라는 표제는 당시 기쿠치가 신조(新潮)잡지에 기고하던 문예비평칼럼의 타이틀이었다. 기쿠치가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서 만든 문예춘추의 당시 정가는 10전으로, 당시 이미 있던 월간지 중앙공론이 1엔, 신조(新潮)가 80전이었던 것에 비하여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이때 권두를 장식해 준 것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글이었다. 잡지의 성공에 큰 도움을 준 아쿠타카와가 자살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에서 기쿠치는 문학상을 만든다. 지금 일본을 대표하는 신인작가상인 아쿠타가와상(芥川賞)과 나오키상(直木賞)을 문예춘추사가 주관하는 연유는 여기에 있다. 매년 3월과 9월에는 이 두 문학상의 수상작품 전문이 문예춘추에 게재되는데, 이때는 판매부수가 백만부를 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초기에 수필문학잡지였던 문예춘추는 1926년에 종합잡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문예춘추의 보수성이 자리를 잡았다. 이를 알 수 있는 한 증거는,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사령부가 전쟁 책임을 물으며 많은 인사들을 공직에서 추방하게 되는데, 기쿠치도 그 처분을 받으며 문예춘추도 일시폐간하게 된다. 그 후 다시 만든 회사가 현재의 문예춘추신사로 新이라는 이름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일본잡지협회가 2019년에 공표한 자료를 보면 이 월간지의 발행부수가 39만8천부이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월간잡지 발행부수를 보면 월간조선, 신동아, 월간중앙의 3대 월간지 합계가 5만6천부 정도이다. 한국의 인구가 일본인구의 40%이니, 문예춘추가 한국에서 발행된다면 16만2천부가 발행되는 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월간잡지의 독자수를 합한 것의 3배가 되는 독자를 가진 잡지가 한국에 있다고 가상하면,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예춘추와 경쟁하는 월간잡지는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종합정보지’라고 하는 WEDGE라는 잡지가 발행부수 13만, 종교단체인 창가학회가 발행하는 잡지 우시오(潮)가 12만부로 뒤를 잇고, 문예춘추와 경쟁관계에 있는 종합시사월간지 중앙공론(中央公論)이 2만4천부 발행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3대잡지가 보수우파인 것과 마찬가지로 문예춘추와 중앙공론 모두 우파 잡지이다. 출판사 이와나미서점이 발행하는 세카이(世界)가 대표적인 리버럴한 월간잡지라고 할 수 있는데 공식통계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발행부수가 적다.
최근에는 독자층이 고령화하여 판매부수가 감소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는 대책으로 소화시대(1926~1989)의 역사를 다루는 회고조의 글이 많이 실리는 경향이 있다. 세계적으로 활자매체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가운데에서 문예춘추가 고정독자층을 비교적 잘 확보하는 비결 중의 하나는 30개 정도가 되는 고정연재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의 경우, 도쿄의 도서관에 간다면 반드시 챙겨보는 연재칼럼이 있다.
하나는 아카사카 타로라는 이름의 익명필자가 쓰는 ‘정국다큐멘트’이다. 이는 문예춘추사의 정치부기자들이 쓰는 익명의 칼럼으로 일본정권 수뇌부 동향을 파악하는 데 참고가 된다. 또 하나는 ‘가스미가세키 콘피덴셜’이다. 가스미가세키는 일본행정부 관청들이 모인 구역을 말한다. 이 칼럼은 기자들이 주요 정치가와 관료들의 동정을 보도한다. 세 번째는 ‘마루노우치 컨피덴셜’이다. 마루노우치는 일본 재계, 금융계의 집합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칼럼은 일본 재계와 금융계 동향을 기자들이 무기명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하나는 아카사카 타로라는 이름의 익명필자가 쓰는 ‘정국다큐멘트’이다. 이는 문예춘추사의 정치부기자들이 쓰는 익명의 칼럼으로 일본정권 수뇌부 동향을 파악하는 데 참고가 된다. 또 하나는 ‘가스미가세키 콘피덴셜’이다. 가스미가세키는 일본행정부 관청들이 모인 구역을 말한다. 이 칼럼은 기자들이 주요 정치가와 관료들의 동정을 보도한다. 세 번째는 ‘마루노우치 컨피덴셜’이다. 마루노우치는 일본 재계, 금융계의 집합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칼럼은 일본 재계와 금융계 동향을 기자들이 무기명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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