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다시 경제계를 압박하고 있다. 사망사고 등 산업재해 발생 시 기업과 경영자의 처벌을 강화한 해당 법은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계는 그간 중대재해법이 산재예방 효과가 없는 데다 모든 사업주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다며 반대해왔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거대 여당의 일사천리 입법 과정에서 거의 반영되지 못했고, 내년이면 본격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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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선서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사진=워싱턴 AP·연합뉴스]
재계 일각에서는 ‘한국은 정말 기업 하기 힘든 나라’라는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새로 들어선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새삼 우리 기업들의 구미를 당길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메이드 인 올 오브 아메리카(Made in All of America)’라는 경제 슬로건을 내세웠다. 미국 내 공장에서, 미국인 노동자가 만든 첨단 제품이 더 많아질 수 있게 하려는 조치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기업의 본국 회귀를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뿐만 아니라 외국기업이 미국 내 생산시설을 짓는 투자를 단행할 때도 세액공제 등 과감한 혜택을 예고했다.
한국 기업으로선 매력적인 제안이다. 대규모 부지에서 막대한 생산이 가능한 제조기지를 갖추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북미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대규모 미국 투자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2일부터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잇달아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설비 증설을 위해 최대 18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아직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나, 오는 28일 실적 발표 등을 통해 구체화할 전망이다.
문제는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미국행이 한층 더 빨라질 것이란 점이다. 반도체 기업의 경우 미국에 제조시설만 짓는다면 외국기업이라도 최대 40%의 투자세액을 공제해주는 일명 ‘칩스 법안’이 이미 지난해 6월 상하원에서 발의됐다. 기업으로선 미국 정부의 ‘인센티브 러브콜’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내수 시장이 큰 미국에서 생산 전진기지를 구축하면 장기적으로도 유리할 것이란 판단도 크다. 업계 일각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외국기업에도 이처럼 과감한 유인책을 쓰는 반면 우리 정부는 되레 자국기업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란 비난도 나온다. 앞서 언급한 기업규제 3법과 중대재해법에 대한 불만만 해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1위 기업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계는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사인 대만 TSMC가 미국 생산설비 구축과 올해만 30조원 투자를 추진하는 반면 삼성은 총수 부재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 상황을 우려한다. 지난 25일 변호인 측과 검찰 모두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이 부회장은 내년 7월까지 영어(囹圄)의 몸이다. 이 부회장은 26일 삼성그룹 사내 통신망을 통해 “제가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삼성은 가야 할 길을 계속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런데 과연 그가 말한 계속 가야 할 길이 한국행인지, 미국행인지는 예측불허다. 삼성의 다음 행보가 궁금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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