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국의 지도자라면,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이주토록 하고 하이테크와 전통 방식을 결합해 농업을 발전시킬 것입니다."
세계 미래학계의 대부인 짐 데이토(Jim Dator) 미국 하와이대 미래전략센터 소장이 2015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최근 통화에서 이 말에 동의했다. 인구 절벽 앞에 선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얘기다.
시간이 흘러 우리나라에서도 짐 데이토의 미래 예측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농촌진흥청이다. 취임 200일을 눈앞에 둔 허태웅 농진청장의 시선 역시 짐 데이토가 바라본 시대로 향한다. 허 청장은 "포스트 코로나, 4차 산업혁명시대 속에서 농업은 디지털 혁신을 장착하고 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며 "고령화된 농촌은 이젠 옛말이 될 것이고, 청년들이 돌아와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때가 머지않았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지난 2일 허태웅 농진청장을 만나, 미래 농업에 대한 비전을 들어봤다.
농업의 미래, 디지털 전환에서 답 찾다
농진청은 한국 농업 기술의 보고(寶庫)로도 알려진다. 전체 정원 1894명 가운데 연구·지도직 석박사만 1099명에 달해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농업분야 연구기관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만큼 기술 개발에도 굵직한 성과를 냈다.
1970년대 통일벼 개발로 주곡의 자급 달성, 1980년대 비닐하우스 농법 개발로 신선채소 연중 공급, 2000년 이후 세계최초 굳지 않는 떡, 알레르기 저감 밀 '오프리' 등을 개발하면서 디지털·바이오 첨단농업의 길로 향하고 있다.
허 청장은 "시설원예, 축산 분야에서 그동안 기술을 활용한 시설 중심의 스마트팜이 확대됐는데, 디지털 전환시대에서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해 고효율의 스마트 정밀농업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농진청은 지난해 11월 3일 '디지털농업추진단'을 출범시켰다.
허 청장은 "데이터 수집, 이용, 공유를 위한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고 AI를 활용해 생산·유통·소비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했다"며 "스마트폰 하나만으로도 제어가 가능한 농업 환경을 조성해 누구나 농사 짓기 쉬워지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그는 "노지 작물 등 농업 전반으로 데이터 수집·확대가 필요할뿐더러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생산성과 편리성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년들이여 농촌으로 오라"...농업 진출 플랫폼 지원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지난해 처음 감소했다. 농가인구도 1970년 전체 인구의 44.7%였으나 2019년 기준으로 4.3%로 감소했다. 65세 이상 농촌 고령화 비율도 1970년 4.9%에서 2019년 46.6%로 치솟았다.
한국농수산대 총장을 역임한 허 청장은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청년들이 농촌을 터전으로 한 기술 접목에 눈을 뜨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아버지의 전통적인 축산업에 IT 기술을 접목해 시대를 앞서가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사과를 만드는 등 종자 개량에 힘을 쏟는 청년들이 눈에 띈다"며 "등록금 부담이 없는 한농대에서 기술을 공부해서 농업에 접목하려는 청년들을 지켜보면, 그들은 새로운 농업 혁신을 위해 부단히 연구와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농업은 부모의 농축산업을 잇는 등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면 도전이 쉽지 않은 분야다. 귀농·귀촌을 원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지만, 기반 없이 농촌에서 성공하는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허 청장은 "딸기만 보더라도 성공한 농가에서 기술을 전수 받았다고 해도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똑같이 성공하기는 어렵다"며 "토양, 온도, 날씨 등 다양한 생육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고 전했다.
그는 "기반이 없더라도 자신이 시도하고 싶은 농업 분야에 대해 최상의 조건을 알려줄 수 있는 플랫폼을 올해 준비중"이라며 "품종, 지역, 출하 네트워크, 지원사업, 규제 등 원하는 작물 분야를 선택하면, 실제 농사를 지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 기반이 없는 청년들도 농촌에 들어와 디지털 농업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최적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까지 청년농업인 1만명 육성이 그의 목표다.
"농산업으로 불러다오"...세계를 정조준한 K-농업
허 청장은 "지난 9년간 채소·화훼·과수·특용 4분야, 딸기·장미·키위·버섯 등 12작목의 주요 품종 국산화율이 향상돼 로열티 지불액이 크게 줄었다"고 강조했다. 실제 로열티 지불액은 2012년 175억7000만원에서 절반가량 줄어 지난해 97억1000만원을 기록했다. 국산화율도 2012년 17.9%에서 지난해 28.4%로 확대됐다.
그는 "지난해 농산물 수출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며 "먹을 것에 대한 시장의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보니,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품종 로열티를 줄일 수 있도록 국산화율과 종자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청장은 이어 "주요 품목별 종자 자급률을 보더라도 △(식량) 벼·보리·서류·식용콩 △(채소) 고추·배추·수박·오이·참외·잎상추·호박 △(화훼) 접목선인장 등은 100%를 달성할 정도"라고 뽐냈다.
그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국산 품종도 소개했다. 일본 국화를 대체하는 국화품종인 '백마'를 비롯해 일본 여자컬링 국가대표도 반한 딸기로 알려진 '설향', 균사 생장과 갓 색이 우수한 양송이품종인 '새한', 일본 품종보다 밥맛이 좋기로 유명한 쌀품종 '해들'이 대표적이다.
시장에서 인정받은 농산물을 토대로, K-농업에 대한 국제사회의 러브콜도 빗발친다. 허 청장은 "2009년부터 현지 맞춤형 농업기술을 개발·보급하기 위해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CIS(독립국가연합) 등 모두 22개국에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 센터를 설치한 상황"이라며 "KOPIA 에콰도르 센터에서 씨감자 보급 사업을 펼쳐 생산량이 65%나 증가한 사례가 상당히 알려져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벼 개발 파트너십 사업 역시 아프리카 식량문제 해결의 돌파구 역할을 하고 있어 K-농업이 국제사회의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허 청장은 재차 강조했다.
식량이 국력(國力)..."식량 안보를 지켜낼 때다"
미래학자들은 "코로나19를 1차 전쟁이라고 한다면, 2차 전쟁은 자연재해, 3차 전쟁은 식량전쟁이 될 것"으로 입을 모은다. 허 청장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그는 "쌀, 서류 이외 대부분의 밭작물은 생산기반이 취약해 국산원료곡 활용이 미급하다"며 "기계화·논재배적응·가공기능성이 강화된 밭작물 품종 개발과 보급으로 생산성을 향상하고 수입산과의 차별화를 추진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허 청장은 "기계화 재배양식 표준화를 비롯해 ICT기반 논·밭 정밀 물관리 기술, 노력 절감형 디지털농업 기술 개발로 정책사업을 지원하고 있다"며 "통합진단, 디지털 해충 예찰, 드론을 활용한 파종이나 방제, 블록체인 활용 공급 등이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논 이용 밭작물 생산을 위한 다모작 작부체계 기술 개발, 산업체와 연계한 생산단지 확대 역시 식량 안보를 지켜낼 수 있는 방안이라고 허 청장은 손꼽았다.
우주 기술 활용해 도약하는 K-농업
허태웅 청장은 "미래 과학이 집약된 우주 기술이 K-농업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차세대 중형위성(농림위성) 사업을 소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농진청·산림청이 공동 참여해 오는 2023년 우주로 쏘아올리는 농림위성 2단계 개발사업은 광역 농지 및 산림에 대해 신속·정확한 정보를 취득해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줄 것으로 기대된다.
허 청장은 "관측폭이 120㎞이고 해상도가 5m급인 광역전자광학카메라가 탑재된 농림위성을 농업 발전에 활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농업위성정보활용센터 구축 사업으로 오는 위성이 발사되기 전까지 위성영상 수집·생산·관리·공급 인프라를 구축하는 내용이다.
그는 "농림위성으로 확보된 영상으로 국가 단위 재배면적에 대한 전수조사가 가능해지고 들녘·시군·국가 단위 농경지 작황 모니터링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국외 주요 곡물생산지역 및 북한 등에 대한 시의성 있는 작황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재난·재해와 관련한 시군단위 피해현황 분석 정보도 받아 신속한 농가 피해 대책 마련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태웅 청장은 "농업은 현재 위기일 수도 있으나, 기회일 수도 있어 어떻게 디지털화하느냐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며 "국가의 미래 산업이자, 안보 산업이 될 농산업은 확고한 국가 경쟁력으로 자리잡을 것이며 종사자 역시 희소가치가 있다보니 앞으로는 주목받는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태웅 농촌진흥청장은 누구?
1965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허태웅 농촌진흥청장은 서라벌고,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환경보건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경상대에서 축산과학 박사를 수료했다.
제23회 기술고시에 합격한 뒤 1989년 농림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농림부 협동조합과장, 과학기술정책과장, 정책기획관, 대변인, 유통소비정책관, 대통령비서실 농축산식품비서관, 한국농수산대학 총장 등을 거쳐 현재 제29대 농촌진흥청장을 맡고 있다.
농식품부 대변인 경력을 통해 공직생활 안팎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기를 수 있었으며, 한농대 총장 경험을 토대로 청년 농업인 육성을 위한 정책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